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보르투스 만수르 사무총장의 기고글인 ‘전쟁의 시기에 두바이에 머물며 기록한 일곱 가지 성찰’(Seven reflections from Dubai, stranded in a time of war)을 6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보르투스 사무총장은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의 사무총장으로 섬기고 있으며 히브리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해 변호사로 활동했다. 나사렛 침례학교 총괄 디렉터와 교회 지도자로 섬기면서 이스라엘과 성지 지역의 복음주의 교회 연합 및 국제 기독교 단체에서 다양한 리더십 역할을 수행해 왔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필자는 2026년 2월 28일 토요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Movement Day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이후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이스라엘과 두바이의 영공이 모두 폐쇄되었고, 컨퍼런스에 참석했던 외국인 참가자들과 100명이 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우리는 며칠 동안 그곳에 발이 묶인 채 지내야 했다.
그 며칠을 보내는 일은 매우 비현실적인 경험이었다. 참가자들 대부분은 아랍 남녀였고, 여기에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복음을 섬기는 중요한 지도자들이었는데,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들, 복음주의 연맹 지도자들, 그리고 국제 기독교 단체의 책임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속에서 4일 동안 함께 머물게 되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기도 모임을 갖고, 함께 예배하며, 설교를 들었다. 또한 교제의 시간을 나누고 휴식을 취했으며, 가끔 호텔 주변을 짧게 산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두바이 자체가 공격의 잠재적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컸다. 우리는 귀국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필자는 결국 예정된 귀국일보다 4일 늦게 요르단을 거쳐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기회가 생기는 대로 며칠 뒤 차례로 떠났다.
Movement Day Dubai의 주최 측은 매우 친절했고, 그 불확실한 기간 동안 우리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것을 해 주었다.
이란은 자신들을 공격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뿐 아니라 걸프 지역의 미국 동맹국들도 공격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 가운데 두바이도 있었다. 화려함과 번영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이 도시는 갑자기 가장 취약한 지점을 공격받게 되었다. 사실 두바이가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사이렌과 대피소가 일상적인 대비 체계의 일부이지만, 두바이에서는 많은 건물에 대피소가 없었고 경보 사이렌도 울리지 않았다.
그 특별한 며칠 동안 필자는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그 가운데 일곱 가지를 나누고자 한다.
1. 전쟁이 남기는 깊은 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온 우리에게 그리고 아마 중동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또 하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은 깊은 고통과 낙심을 가져왔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의 여파에서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그 전쟁은 많은 삶을 멈추게 했고, 특히 가자지구에는 여전히 깊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분쟁의 땅을 잠시 떠나 평화롭고 화려한 도시에서 다른 신자들과 함께 머물고 있었기에 그 대비는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두바이에서 함께 기도하는 동안, 고향에서는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그럴 때 우리는 성경의 약속을 붙든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편 34:18).
2. 기도의 대상이 되는 경험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전 세계 친구들로부터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상황을 묻고, 우리와 우리의 가족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필자의 첫 반응은 스스로도 놀라웠다. 필자는 기도의 제목이 되는 것이 지쳐 있었다. 오히려 누군가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기를 원했다. 물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는 신실한 기도자들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 작동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바울은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는다”(고린도전서 12:26)고 말했다. 어떤 때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을 떠받치고, 또 어떤 때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기도에 의해 떠받쳐진다.
3. 편안함과 그리움의 역설
우리의 상황에는 아이러니가 있었다. 우리는 편안한 호텔에 머물고 있었고, 모든 비용은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부담했다. 발이 묶인 방문객들을 돌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루 세 번 풍성한 뷔페 식사를 했고, 넓은 객실과 세심한 서비스도 제공받았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집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아무리 편안해도 우리는 가족들과 함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비록 중동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집”이란 사이렌과 불확실성, 그리고 위험을 의미할지라도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위협 속에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 경험은 집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난민이나 피난민들이 느끼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해 주었다.
4. 권력과 번영의 연약함
두바이는 세계적인 번영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명품 브랜드, 화려한 건축물, 끊임없는 활동으로 가득한 도시다. 그러나 그 며칠 동안 도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도시의 일부 지역이 그렇게 조용한 모습은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매년 약 9천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하는 공항도 거의 비어 있었다. 우리가 목요일 새벽에 출발했을 때 활주로는 마치 텅 빈 들판처럼 보였다.
그 순간 다윗의 말이 떠올랐다: “어찌하여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는가”(사무엘하 1:25). 아무리 인상적인 도시라도 취약할 수 있다. 인간의 성취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5. 속도를 늦추는 선물
우리 그룹에 있던 많은 목회자와 지도자들은 매우 체계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프로그램과 예배, 회의와 컨퍼런스로 가득 찬 일정 속에서 항상 결과와 활동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고립은 우리를 천천히 살도록 강요했다. 빽빽한 일정이 사라지자 우리는 오랫동안 교제하고, 개인적으로 기도하며, 자연스럽게 예배 모임을 갖는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순간들이 컨퍼런스 전체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교제와 기도에 힘썼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사도행전 2:42). 이러한 속도 조절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주고, 공동체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더 효과적으로 감당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6. 평화를 만드는 사명
우리 지역에서 반복되는 전쟁의 계절은 필자에게 한 가지 확신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평화를 이루는 일이 기독교적 증언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화해라는 복음을 전한다면, 사람들 사이의 화해의 필요를 외면할 수 없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라 불리며,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라”(마태복음 5:9). 복음주의자들은 대화를 장려하고, 가능한 곳에서 화해를 추구하며, 복음이 영원한 삶뿐 아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
7. 끊임없이 아는 것의 부담
많은 사람들은 휴대폰에 특정 앱을 설치해 두는데, 고향에서 사이렌이 울리면 알림이 오도록 되어 있다. 해외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두바이에 있는 동안에도 그 알림은 계속 울렸다. 때로는 새벽에 날카로운 알림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다. 고향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대피소로 달려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앱을 삭제할 수도 있었겠지만, 누가 그렇게 하겠는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몇몇 사람들은 호텔 밖으로 나가 활동하기도 했다. 그들은 멀리서 폭발음을 듣기도 했지만,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일상을 이어 갔다. 역설적으로 끊임없는 알림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평안해 보였다.
물론 경고를 무시하거나 무모하게 행동하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불안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결론
돌이켜 보면, 그 예상치 못한 고립의 시간은 일종의 예상치 못한 영적 수련회와도 같았다.
끊임없는 회의와 행사, 책임 속에서 살아가던 지도자들이 어쩔 수 없이 속도를 늦추게 되었다. 상황에 대한 통제력도, 끊임없는 정보도 줄어든 가운데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로 돌아갔다. 기도하고, 예배하고, 교제하며, 하나님을 기다리는 삶이다.
끊임없이 더 많은 정보와 더 많은 활동을 요구하는 세상 속에서, 이 경험은 성경의 지혜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편 46:10). 역설적으로 덜 알고 더 맡길 때, 우리는 새로운 힘과 분명한 시야를 얻게 된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가운데 우리의 연합은 더욱 깊어졌고, 우리의 시선은 다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속도를 늦추고, 더 깊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내려놓음에서 오는 힘을 다시 발견하라고 초대하고 계시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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