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주력 산업의 호조에 힘입어 사상 처음으로 7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미국발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글로벌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달성한 역대 최고 성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다만 올해를 바라보는 전망은 낙관과 경계가 엇갈리고 있다. 미국 관세 정책의 향방과 미·중 무역 갈등의 변화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일 발표한 ‘2025년 연간 및 12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은 전년 대비 3.8% 증가한 7097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대 실적이자, 사상 처음으로 연간 수출액이 70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수출 증가에 힘입어 무역수지 역시 전년보다 262억 달러 늘어난 780억 달러 흑자를 나타냈다. 무역수지 흑자 폭은 지난 2017년 이후 8년 만에 최대 수준으로 확대됐다.
◈반도체·자동차가 이끈 수출 기록 경신
지난해 수출 호조의 중심에는 반도체 산업이 있었다.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22.2% 증가한 1734억 달러로 집계되며 연간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을 새로 썼다. 월별로 살펴봐도 지난해 4월 이후 9개월 연속으로 월 기준 최대치를 경신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글로벌 인공지능(AI) 수요 확대와 고부가가치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수출 증가가 전체 실적을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자동차 수출 역시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지난해 자동차 수출은 1.7% 증가한 720억 달러로 집계되며 반도체와 함께 연간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최대 시장인 미국을 향한 수출은 관세 부담 등의 영향으로 일부 감소했지만, 하이브리드 차량과 중고차 수출이 늘어나며 전체 실적을 뒷받침했다. 반도체와 자동차라는 양대 주력 품목이 동시에 성장하며 수출 증가세를 견인한 것으로 분석됐다.
◈2025년 수출 전망, 커지는 불확실성
문제는 올해 수출 환경을 마냥 낙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13대 주력 산업의 수출이 전년 대비 0.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수요가 일정 부분 증가세를 이어가고는 있으나, 미·중 무역 갈등과 미국의 품목별 관세 확대 가능성이 우리 수출의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지난해 반도체 수출 호조가 관세 조치 이전에 재고를 확보하려는 선주문 수요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향후 수요를 미리 당겨 사용한 만큼, 올해에는 반대로 수출 증가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철강과 자동차 산업에서도 관세 부과가 예고된 직후 단기적으로 수요가 급증했다가 이후 조정 국면을 겪은 전례가 있었다.
◈미국 관세 정책과 미·중 갈등의 향방
미국은 지난해 4월부터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시사해 왔다. 이에 우리 정부는 관세 협상을 통해 경쟁국인 대만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최혜국대우를 확보하며 일정 부분 불확실성을 완화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정부가 중국산 반도체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보류하면서 통상 환경은 이전과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미·중 갈등 완화 기류가 감지되면서 미국의 추가적인 관세 조치 가능성이 다소 낮아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분석에서 4월 ‘해방의 날’ 이후 주가 급락과 중국의 보복 가능성, 소비자 물가 상승 압박 등이 미국 관세 정책의 추진 동력을 약화시켰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 관세 변수 외에도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과 멕시코의 관세율 인상 등 새로운 통상 변수는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정부, 수출 7000억 달러 흐름 유지에 총력
대외 리스크가 확대되는 가운데 정부는 올해도 수출 7000억 달러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가용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한다는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M.AX(제조 AI 전환) 전략을 중심으로 산업 전반의 혁신을 가속화하고,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신산업 육성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우리 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미·중 통상 현안을 면밀히 관리하는 한편, 일본과 유럽연합(EU), 아세안(ASEAN) 등 주요 교역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해 통상 리스크를 분산해 나간다. 수출 기업을 위한 무역보험은 역대 최대 규모인 275조 원 수준으로 공급하고,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마케팅과 물류, 인증 등 수출 현장의 애로 해소에도 집중할 방침이다.
산업부는 이러한 정책을 토대로 2년 연속 수출 7000억 달러 달성은 물론, 지난해 기록한 역대 최대 실적을 다시 한 번 경신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해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수출 7000억 달러 시대를 열어준 우리 기업인과 노동자들의 헌신과 열정에 깊이 감사한다”며 “수출의 활기가 개별 기업에 그치지 않고 국내 협력사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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