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홀리데이 기자
사라 홀리데이 기자.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사라 홀리데이의 기고글인 ‘침묵 속의 위기, Z세대 자살률의 급상승’(The silent crisis: Rising suicide rates among Gen Z)을 최근 게재했다.

사라 홀리데이는 워싱턴 스탠드(The Washington Stand)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2014년부터 2024년까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젊은 세대가 정서적으로 고통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10년이라는 긴 시간이다. 그러나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다. 이 기사 제목은 이렇게 말한다: “자살,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은 Z세대의 생명을 앗아가다.” 이 사실은 Stateline의 분석을 통해 드러났다. 그들은 “이제 20대 후반에 이른 Z세대 성인들 사이에서 자살은, 10년 전 같은 나이대의 밀레니얼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남부와 중서부 지역의 흑인·히스패닉 남성들이 전체 증가의 약 85%를 차지했다. 히스패닉 청년들에게 자살은 두 번째로 많은 사망 원인이 되었고 아시아계에서는 자살이 사망 원인 1위로 올라섰다. 자살률이 특히 높았던 주는 조지아(65% 증가), 노스캐롤라이나와 텍사스(41% 증가), 앨라배마(39%), 오하이오(37%)였다.

Stateline은 “자살률이 가장 높은 주는 알래스카로, 2014년에도 1위였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34% 상승해 49건에 이르렀고, 그 뒤를 뉴멕시코와 몬태나가 이었다. 반면 자살률이 가장 낮은 주는 뉴저지로, 2014년 이후 31% 감소해 인구 10만 명당 6.9건을 기록했다.”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2025년의 통계는 더욱 냉혹하다. 올해 1~2월 두 달 동안 Z세대의 자살 건수는 1,148건으로, 전년도와 거의 동일한 속도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사망진단서 기반 데이터를 분석해 발표한 내용이다.

각 주의 대응과 변화

분석에 따르면 일부 주 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았다. 노스캐롤라이나, 미네소타 등은 연방 정부가 주도하는 흑인 청년 및 아동 자살 예방 이니셔티브와 보조를 맞춰 주별 정책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15개 주와 워싱턴 D.C.가 이 계획에 참여하고 있다. 자살률은 수십 년간 오르내렸지만, 2000년 전후부터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중년층의 자살률은 낮아졌지만, 젊은 세대의 고통은 계속되었다.

원인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 현상을 초래한 것일까? Stateline은 이렇게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자살 증가의 근본 원인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그들은 ‘치료받지 못한 우울증의 확산’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이는 모든 연령대에서 나타났지만, 특히 젊은 비백인 남성들 사이에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다.”

그 원인으로는 소셜미디어 괴롭힘, 경제적 절망, 정신건강 문제를 숨기려는 문화적 저항감 등이 꼽혔다. Z세대는 인터넷과 함께 자란 최초의 디지털 세대였기에, 그 영향은 더욱 깊다.

아메리칸대학교의 경제학자 데이브 마코트 교수는 “단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한 사람이 삶을 포기할 만큼의 절망에 이르게 되는 이유를 하나하나 규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누군가는 유서를 남기고, 누군가는 상담사에게 마지막 마음을 털어놓지만, 대부분의 경우 남겨진 이들은 “왜?”라는 질문만 남긴 채 고통 속에 서 있다.

한 가족의 기억

필자는 언니의 친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을 잊지 못한다. 그날, 필자와 언니는 형의 방에 함께 있었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왜 우리가 그 방에 함께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그 순간 언니 곁에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필자는 어린 동생으로서 그저 조용히 안아주고,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온 가족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슬픔이 가득한 방, 한 사람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 젊은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고,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필자조차 그를 몰랐지만, 눈물이 흘렀다. 그날의 슬픔은 수많은 이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현실의 단면이었다.

세월이 흘러, 필자 또한 그 어둠의 골짜기를 지나온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이 위기를 돌아볼 때, 한 가지 분명한 진리가 떠오른다. 그것은 바로 ‘죄’(sin) 이다.

죄로 병든 세상

우리는 타락하고 깨어진 세상 속에 살아간다. 이 사실은 굳이 상기시킬 필요조차 없을 만큼 명백하다. 고통, 죽음, 질병, 죄의 추악함이 세상의 모든 부분을 오염시키고 있다. 필자는 정치 현장에서 일하며, 많은 이들이 뉴스를 피하거나 세상의 무게에 짓눌리는 이유를 이해한다. 우리는 지금 영적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 전쟁은 그 어느 때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죄는 무자비하고, 잔혹하며, 파괴적이다. 그 목적은 단 하나, 우리의 영혼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다.

필자는 언니의 친구가 왜 그 선택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의 가족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이 깨어진 세상 속에 있었다. 우리가 이 땅에 머무는 한, 죄의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계속해서 세상의 무게에 짓눌리고, 영혼을 찌르는 실패의 아픔과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상처를 경험할 것이다. 빛이 없는 세상에서, 희망의 근거가 사라진 삶은 끝없는 절망의 터널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왜 살아야 하는가?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

절망 속에 갇힌 이들을 생각할 때, 우리의 마음은 찢어진다. 그러나 그 어둠 한가운데에서도 한 줄기 빛이 존재한다. “삶에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인생에는 의미가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어둠을 넘어서는 목적을 발견한다. 그분의 사랑과 희생은 절망을 이길 힘이며 고통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와 영원한 소망의 약속을 제시한다.

필자는 불신자나 회의론자와 대화할 때마다 이렇게 묻는다. “하나님 없이, 당신은 왜 여기에 존재하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없이, 왜 고통 속에서도 버텨야 하는지 말할 수 있습니까?” 세속적 세계관은 인생의 궁극적인 질문들에 충분한 대답을 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대답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그 대답이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통해 답을 얻는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동의해야 할 진리가 있다. 우리는 죄인이다. 우리는 구원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다. 그리고 그분이 부활하셨기에 회개하고 믿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이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로마서 1:16)

절망의 시대에 복음의 빛을

지금 우리는 Z세대를 비롯한 많은 세대가 ‘조용한 절망의 위기’에 직면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복음은 여전히 희망의 등불이다. 복음은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의 삶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은 어둠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삶을 지속할 이유이며 영원한 소망의 약속이다. 이 냉혹한 통계를 마주할 때, 우리는 가족과 교회, 공동체가 함께 일어나야 한다. 사랑으로 경청하고, 복음을 전하며 길을 잃은 이들의 삶에 빛을 비추어야 한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는 이 세대와 세상을 소망의 방향으로 이끌도록 부름 받았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진리 안에 굳게 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세상은 절박하게 생명의 끈(lifeline)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 끈은 우리 손에 쥐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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