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배안호 선교사.
배안호 선교사.

‘예수 그리스도, 이스라엘, 예루살렘’ : ‘대체신학은 비성경적’ “성경 핵심 키워드 3개는 창조부터 새 예루살렘까지 하나님의 빅 픽처를 한 눈으로 본다”

들어가는 말(서론): ‘독수리 시각으로’ 성경 전체를 통해 조망(眺望)해 주는 책
‘이스라엘 민족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 ‘한 새 사람’,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 새 땅’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큰 그림(Big Picture)’으로 보여주는 ‘믿음직스러운 책’이 있을까?”
성경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1,800번)의 스토리이다. 그 위대한 스토리의 두 축은 예수의 초림과 재림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택하신 한 민족, ‘이스라엘’(2,300번) 이야기이다. 성경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은 ‘예루살렘’(1,000번)을 중심으로 성취되고 완성된다.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성경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일곱 가지 주제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전략, 하나님의 도시, 하나님의 눈동자,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각 주제를 Q&A(Question & Answer) 형식을 빌려 성경 전체를 연구하고 하나님의 빅 픽처를 보고자 합니다.”(저자 서문, p. 25, 전체 269개의 Q&A가 압권이다)

서평자는 지난 50년간 성경을 연구하면서 신구약 성경을 관통하는 ‘큰 그림의 책’을 찾고 있었다. 교리와 신학의 다름을 넘어서 하나님의 빅 픽처를 조망하는 책! ‘대체신학’의 뿌리와 그 실체를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오랜 시간 필자가 찾던 그 책이 바로 본서이다.

“신학적인 관심을 가진 독자들을 위하여 부록에서 ‘대체신학과 회복신학’을 다루었습니다. (중략)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주장은 오늘의 역사적 사실과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독립 전까지는 이스라엘이 빠진 신학을 했고, 예루살렘 회복 전까지는 예루살렘이 빠진 신학을 했다면, 이제는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실재를 전제하는 신학을 해야 합니다.”(저자 서문, p. 26, 대체신학의 실체와 대안을 멋지게 제시하였다)

‘성경, 빅 픽처를 보라’(김인식, 두란노, 2021)의 저자는 장로회신학대학원(M. Div), 미국 풀러신학교(Th.M, D. Miss), 미주장로교신학대학교(Ph. D). 1985년 캘리포니아, 밴나이서 웨스틀힐 장로교회 개척. 33년간 목회. 해외한인장로회(KPCA) 33대 총회장 역임. 2016년 킹덤월드미션(Kingdom World Mission)설립 대표. ‘이스라엘 목회자/선교사 세미나’를 미국과 한국과 예루살렘에서 개최. 미주장로교신학대학교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역사’ 강의. 저서로는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 <이스라엘의 회복과 종말>이 있다.

서평자는 저자가 선정한 7개의 핵심주제들, 1-7장을 먼저 살펴본 후에, 본서에서 부록으로 다룬 ‘대체신학교과 회복신학’(36개의 Q&A) 부분을 중심으로 서평을 할 것이다.

1. 하나님의 비전과 전략; ‘에덴에서 새 에덴으로’//성경은 하나님의 언약성취의 기록!

도서 ‘성경, 빅 픽처를 보라!’
도서 ‘성경, 빅 픽처를 보라!’ 표지 이미지.

“하나님의 처음 비전은 하나님의 최종 비전이다. 그러나 성경은 처음보다 포괄적 최종 비전을 밝히 드러낸다” (p. 30). 성경의 결말은 하나님의 마스트 플랜(master plan)인 새 예루살렘에 수렴(收斂)된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은 이스라엘 땅(겔31:8-9)이다. 하나님의 비전은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백성과 더불어 영원히 함께하며 다스리시는 것이다. 새 예루살렘은 부활한 우리의 궁극적 목적지요 영원히 살곳이다.

하나님의 마스트 플랜을 성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은 하나님의 언약(言約, 베리트)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나타내 준다. 역사(歷史)는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이 성취되어 왔음을 증언한 기록이다. ‘이스라엘이 온 인류의 축복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 아들 내 장자”(출4:22)라 부르셨다. 그들에게 언약을 주셨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거하심으로 그들을 세상민족 가운데 뛰어나게 축복해 주셨다.

“실제로 유대인은 수 많은 발명의 업적을 남겼고, 노벨상 25%, 미국 최상위 대학교수 20%, 미국 억만장자의 삼분의 일, 가장 부유한 미국인 상위 40명 중 40%, 뉴욕과 워싱톤 D.C.의 선도적 법률회사들의 파트너 40%를 차지하며,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로 살아가고 있다” (pp. 87, 88, 예배로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으로 탄생하셨다)

‘예루살렘 언약’(겔16장)은 무엇인가? 예루살렘 언약은 언제 성취되는가?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이 배반한 언약은 모세 언약으로, 어렸을 때 세운 언약을 아브라함 언약으로, 그리고 영원한 언약은 새 언약으로 본다. 그러나 에스겔 16장은 예루살렘 장이기 때문에 마지막 결론 부분을 새 언약으로 보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새 언약이라면,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할 일”(겔16:63)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언약이 성취될 때는 입을 열지 못할 정도로 놀랍고 엄청난 일이 있을 것이다.” (pp. 98-99)

예루살렘 언약은 그간 필자(서평자)가 잘 모르고 있었다. “멸망받아 마땅한 수많은 죄악을 범한 가증한 예루살렘 도시가 용서받고, 그곳에서 하나님이 왕이 되시니 이 엄청난 축복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이 놀라고 부끄러워서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이다.” (p. 100) 이사야 24장 23절의 문자적인 성취인 것이다.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 할 놀라운 일이다.

예루살렘 언약은 장차 이스라엘의 종말적인 민족적 회개와 각성, 구원 이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다시 세우실 영원한 언약이다(겔16:59-60). “아브라함 언약부터 예루살렘 언약까지 모든 언약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메시아 왕국에서 통합되며 성취된다. 예루살렘이 수도가 되는 메시야 왕국 때와 그 이후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이 도래했을 때 마침내 온전히 실현될 언약이다” (사65:17-18). 이 언약이 성취되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 기쁨의 성으로 재창조되며 하나님은 자기 백성 가운데 영원히 거하시게 된다.” (p. 100)

“아브라함 언약, 이스라엘(가나안) 땅 언약, 모세(시내산) 언약, 다윗 언약, 새 언약 그리고 예루살렘 언약의 통합적 성취를 메시아 왕국(천년왕국)에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 언약은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임함으로 완성될 것이다”. (p. 101)

2. 이스라엘; ‘하나님의 눈동자’(슥2:8), ‘내 아들 내 장자’(출4:22)

하나님은 아브라함/이삭/야곱의 하나님,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 아들 내 장자’라 부르셨다.(출4:22)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눈동자’로 여겨(슥2:8) 보호하고 지키신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축복의 통로로 삼으셨다(창12:3).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핍박하는 것(반유대주의)은 이스라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최근에도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반유대주의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성경의 중심 작은 나라, 이스라엘(땅)은 오래전부터 전세계의 뉴스의 중심이 되어왔다.

유대인들이 지속적으로 잔인하게 핍박 받는 원인의 무엇일까?. 반유대주의는 뿌리는?

서너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유대인의 뿌리깊은 선민의식과 배타성과 우수성 때문이다. 예수님을 죽인 죄인이라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영원히 거부되었다는 잘 못된 믿음으로 인한 미움을 받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도 무섭고 끈질긴 핍박의 원인은 유대인 메시아 예수님이 오시면, 사단이 무저갱에 갇히게 되고 결국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pp. 138-39, 반유대주의 배후는 사단, 그 뿌리는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때문이다).

반유대주의자(Antisemitism)자들에 둘러싸인 사면초가(四面楚歌)의 불쌍한 이스라엘

반유대주의자들은 너무나 많다. 무슬림 반유대주의/나치 반유대주의/인본주의 반유대주의/기독교 반유대주의/유엔 미디어 정치/과학 등 기타 여러 분야에서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이 진행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반유대주의자들의 사면초가상태다. 그 중에서 기독교 반유대주의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 까? 그 중심에는 대체신학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기독교 반유대주의는 대체신학을 낳았고 대체신학은 기독교 반유대주의를 강화시켰다. 대체신학은 교회가 전적으로 유대인들에 의해 세워졌지만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그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파기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인해 교회가 그 모든 언약들을 받을 자격을 얻었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 땅이 회복될 것이라는 언약에 대해 도리어 그것이 교회가 받을 축복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p. 146, 이런 엉터리가 대체신학이다)

대체신학은 결국은 이율배반(二律背反)이요,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사실상, 서평자도 오랫동안 대체신학이 정통신앙의 신학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 신앙서적과 설교를 수 없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지나간 기독교 역사속에서 우리가 익히 아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과 탁월한 신학자들이 한결같이 반유대주의에 앞장섰다. 이그나티우스, 터툴리안, 오리겐, 유세비우스, 콘스탄티누스, 크리소스톰, 제롬, 어거스틴, 마르틴 루터가 반유대주의자들이었다. 아마도 이 서평의 독자들 중에 상당수는 놀랄 것이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하였다.

“<유대인들과 그들의 거짓말>(1543년)에서 회당을 불태우라. 집들을 파괴하라. 기도책/탈무드를 몰수하라. 랍비가 못 가르치게 하라. 어기면 처형하라. 통행권을 박탈하라. 고리대금업을 금지하라. 강제노동을 부과하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을 이어받은 이가 히틀러다. 600만 유대인의 죽음을 가져온 홀로코스트는 인간의 잔혹함을 처절하게 보여 주고 있다. 반유대주의가 기승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무궁한 사랑으로 이스라엘 국가를 재탄생시키셨다” (p. 148, 루터는 이토록 유대인들을 미워하는 반유대주의자였다)

이들 반유대주의는, 이스라엘을 미워한 것은, 결국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적한 것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사랑과 언약관계는 영원한 것이 맞지 않은가?

“하나님이 그의 무조건적인 영원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버리실 수 있다면, 하나님은 교회도 버리실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스스로 조건 없이 일방적으로 하신 언약을 버릴 수 있다고 믿는다면, 교회가 지탱할 발판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셈이 된다.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소망이 하나님께서 언약한 것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이지 않는가.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p. 150)

3. 하나님의 백성; ‘한 새 사람’의 성취를 방해하는 반유대주의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후 성령의 강림으로 교회가 탄생하였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다(벧전2:10).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믿는 유대인과 믿는 이방인이 연합하여 온전해진 성도의 무리, 곧 ‘한 새사람’을 이룰 것(엡2:15)을 명령한다. 교회의 완성은 ‘한 새 사람’의 성취이다. 한 새사람의 목적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완성시키는 것(엡2:22)이다.

참으로 역사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중세의 암흑기를 깨치고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마르틴 루터(1483-1546)가 “가혹한 대체신학 입장을 촉진시켰다. 예루살렘은 루터시대까지 파괴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엄연한 현실을 루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리셨다는 증거로 보았다. 루터의 잔인한 반유대인적 진술은 훗날 히틀러의 유대인 600만 학살의 정치적이고도 사회적인 명분을 제고하기에 충분했다.” (p. 216, 오호 통재라!)

오늘날 ‘한 새 사람’의 성취를 방해하는 반유대주의의 모습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지난해(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대규모 침공을 감행하며 시작된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전쟁은 지금도 계속 중이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마귀가 미워하듯, 유대인들에 대한 마귀의 증오는 끈질기다. 마귀는 메시아의 초림을 막으려 했으나(마2:13, 20) 결국 실패했다(21절). 마귀는 자기 운명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재림을 방해하고 있다. 마귀는 홀로코스트(hotocaust)에 대한 기억을 70년이 지나는 동안 희미해지게 만들고 있다. 대다수의 젊은이 들은 홀로코스트의 끔직한 역사를 모르고 있다. 어떤 이들은 거짓정보 혹은 음모론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더구나 대한민국과 같은 해(1948년)에 이스라엘 국가의 재탄생(5월 14일)과 예루살렘 회복을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국가를 점령국가, 인종학살, 인종차별 국가로 인식하고 공격한다. 그리고 마귀는 아직도 다수의 기독교인들이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하고, 하나님이 더 이상 현대 유대인들을 위한 어떤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게 한다. 교회는 대체신학을 회복신학으로 바꾸고 유대인들에 대한 과거의 죄악을 회개하며, 유대인에 대한 증오에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 그럴 때 한 새 사람 성취에 불을 붙이게 될 것이다.” (p. 218, ‘대체신학에서 회복신학으로 전환’은 시급하고 절박한 상황이다)

4. 대체신학을 극복하고, 반드시 ‘회복신학’이 필요하다.

서평을 마치기 전에 대체신학에 대해 조금 더 들여다 보고자 한다. 상당수의 본 서평을 읽는 독자들은 혼란스러워 할 듯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서평자도 이번 기회에 대체신학과 건강한 개혁신학이 어떻게 차별되는지를 확실히 해 두고자 한다). 대체신학의 출발은 2,000년 전, 반유대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수님의 초림을 방해하였던 사단이 대체신학의 뿌리인 셈이다. 사단은 유대민족을 증오한다. 반유대주의의 열매가 대체신학이기 때문이다.

4.1. “대체신학(replacement theology) 혹은 대체주의(replacement theory)”란?

“유대인들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이 기독교로 이전 되었다고 가르친다. 교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스라엘을 대체한다. 유대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장래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갖고 계시지 않다. 오히려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이다. 오순절 이후 신약에서 ‘이스라엘’은 오직 교회를 가리킨다. 이스라엘에 주어진 언약들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목적, 약속은 이제 교회 안에서 성취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들은 많은 부분 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도 대체신학은 기독교 교회가 축복받으리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p. 335, 구구 절절이 맞는 같지 않은가? 상당수의 보수주의 기독인이 이렇게 믿는다)

유대인은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은 민족이라 저주와 심판 아래 놓였고, 하나님의 백성은 교회로 대체되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로마 통치자와 이방인 그리고 유대인이다(행4:27). 예수님은 유대민족의 죄 뿐 만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 이런 논리라면 교회가 범한 죄도 유대인 못지 않은 악을 행하였기에 버림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보여주기 위한 모형인가?
“이스라엘에 주어진 언약들의 최종 성취란 측면에서 모형적(typical)이지만, 이스라엘 자체가 그 대형(antitype)으로 대체된다고 묘사된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과 약속의 본질상 이스라엘은 모형이 될 수 없다”. 예레미야서 31장 35-37절은 해와 달과 별이 없어지지 않은 한 이스라엘 국가는 지속될 것이고, 이사야서 66장 8절은 한 순간에 이스라엘이 태어날 것이라 말한다” (pp. 338-39, 이 밖에도 이스라엘의 미래를 말해 주는 성경구절, 마19:28, 23:39, 눅21:24, 행1:6, 롬11:26, 계7:4-8. 결코 이스라엘 국가는 모형의 기준이 아니다. 신약성경에 이스라엘과 교회는 공존하여 등장하나, 엄격히 구별하여 사용되었다).

대체신학;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르치는가?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명백하게 가르친다. 예레미야 31:35-37 말씀이 확실한 증거다. “낮이 빛을 내는 해를 주시고 달과 별들의 질서를 정하셔서 밤을 비추게 하시며, 바다를 휘저어 성난 파도를 일으키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은 전능하신 여호와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이런 자연 질서가 지속되는 한 이스라엘도 언제까지나 나라로서 존속할 것이다. 하늘이 측량되고 땅의 기초가 탐지된다면 몰라도 그런 일이 있기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내가 그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 필자 강조)

신약성경은 사도들이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다스릴 것(눅22:30)을 말씀한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때 보상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 회복을 전제한 것이다. 무엇보다 로마서 9-11장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단호하게 지지하는 성경말씀이다.

4.2. 대체신학의 모순(矛盾), 자가당착(自家撞着)

예수님의 초림이 구약 성경에 약속된 말씀의 성취(눅24:44)라면서, 이스라엘에 관한 말씀들을 상징으로 볼 수 있는가? 구약이 예언한 예수님의 초림이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믿는다면,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의 말씀들도 문자적으로 믿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은 문자적으로 믿으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의 말씀들은 상징으로 보는 것은 모순이요, 자가당착이다. 주님의 재림도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목적에 있어 중요하다.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체하거나, 이스라엘 나라를 부적절하게 만들지 않는다. 교회는 메시아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이 시대에 선포하는 하나님의 도구이다. 이스라엘이 여전히 불신 속에 머물러 있으나, 앞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받으면,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왕국에서 다른 나라들을 섬기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성경의 줄거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교회 모두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p. 379)

나가는 말(결론): 성경, 세상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큰 그림(Big Picture)!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한 하나님의 큰 구원역사, 마스트 플랜(Master Plan)!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시122:6)

성경은 분명히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마25:40)는 먼저는 유대인(이스라엘)들을 말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롬11:25-27). 교회는 지난, 2,000년 동안의 반유대주의를 회개하고 대체신학을 회복신학으로 바꾸어야 한다. 반유대주의는 하나님의 성품을 대적하며 유대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거부하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품과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선교)는 빛과 어둠과의 전쟁이다. 성경적 믿음과 가치관이 주도하는 빛의 나라들을 세워 나가도록 기도해야 한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화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메시아 이신 예수님에 대한 공통된 믿음을 갖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없다면 평화도 없다. 구원받은 이방인들의 수가 충만하게 차기 시작 할 때(롬11:25), 더 많은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받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성경은 메시아의 초림보다 재림에 관한 말씀이 훨씬 더 많다. 메시아의 초림이 모두 문자적으로 성취된 것 같이, 재림도 문자적으로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한민족에게 특별한 사명: “아버지! 한국교회를 깨우소서! 마24:14 말씀대로 이루소서!!
이사야 55장 5절에서는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 2번이나 언급하였다. 오늘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국 중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 즉 유대 공동체와 함께 살아본 경험이 없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100여개국에 살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은 유대인에 비유할 수 없지만 민족적 수난을 경험한 역사적 유사상이 있다. 최근에 유대인들은 한류에 영향과 함께 유대인 교회와 유대인 단체들의 협력요청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선교의 하나님이 대한민국 교회를 부르시는 소리로 보아야 한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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