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브 애덤슨(Barb Adamson)
바브 애덤슨(Barb Adamson). ©Christian Post

낙태 결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 효과적인 생명 존중 메시지를 개발하는 미국의 비영리단체 비태재단(Vitae Foundation)의 디지털 미디어 코디네이터 바브 애덤슨(Barb Adamson)이 크리스천포스트(CP)에 "낙태에 대한 진실이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지는 않는다: 설득을 위한 5가지 전략"이란 글을 기고했다.

그녀는 미주리 센트럴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 석사, 트루먼 주립대학교에서 영어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지역 여성 사역에도 헌신하고 있다. 다음은 그의 글 전문이다.

◈온라인 논쟁에서 배운 교훈

인터넷이 처음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시기, 필자는 갓 성인이 된 젊은이였다. 온라인 세계를 탐색하면서 필자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수많은 세계관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페이스북 게시물이나 블로그 글처럼 동의할 수 없는 글을 접할 때마다, 필자는 요즘 말로 "키보드 워리어"로 변신했다. 당시엔 그 일이 의롭고 정당하게 느껴졌다. 필자는 진실과 논리만 제시하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특히 '신무신론(New Atheism)' 운동이 확산되던 시절, 필자는 오랫동안 온라인 공간에서 기독교를 옹호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필자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아무리 명료하고 공손하게 진실을 전달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현재 필자는 비태재단에서 디지털 미디어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여전히 같은 상황을 자주 목격하고 있다. 열정적인 생명 존중 옹호자들이 태아의 발달 정보, 성경 구절, 의학적 자료 등을 제시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무반응이거나 무시, 혹은 노골적인 적대감일 때가 많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은 단지 사실을 들었다고 해서 쉽게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인식과 마음의 변화는 감정적 안정감, 정체성, 신뢰, 그리고 공감과 이해를 촉진하는 이야기 속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낙태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감정적, 관계적, 경제적으로 복잡한 현실 속에서 고민하며, 임신한 여성의 상황에 따라 낙태의 도덕성을 판단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누군가의 시선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논쟁이 아니라 이해로 시작해야 한다.

◈설득을 위한 다섯 가지 전략

1. 감정을 절제하라

사람들은 안전하다고 느낄 때에만 자신의 신념을 되돌아볼 수 있다. 당신이 공격적이거나 냉소적, 혹은 대립적으로 보인다면 (설령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즉시 방어적으로 변하고 마음을 닫는다. 일단 방어적 태세에 들어서면, 그들의 마음에 씨앗을 심을 기회는 사라진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생명 존중론자들은 여성들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거예요”라고 말했을 때,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점 이해해요. 저도 여성들의 권리를 정말 소중히 여깁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네요"라고 차분하게 답해보자.

화려한 반격이나 상대를 이기는 데 집중한 논쟁은 오히려 사람을 잃게 만든다. 누군가 위협을 느끼는 순간,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뇌 영역은 기능을 멈춘다. 대화가 과열되는 순간, 당신의 메시지는 그에게 닿지 않는다.

2. 비언어적 표현에 주의하라

소통의 최대 90%는 비언어적 요소로 구성된다고 한다. 이는 대면 대화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적용된다. 말투, 문장 부호, 단어 선택 등이 모두 당신의 의도를 드러낸다. 얼굴을 마주한 상황이라면 몸짓과 표정이 최대한 위협적이지 않도록 해야 하며, 목소리를 높이거나 비꼬는 말투는 판단이나 공격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이는 방어 반응을 유발해 진지한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어떻게 아기 죽이는 걸 지지할 수 있죠?”라는 댓글 대신, “그건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 같아요. 어떤 계기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라고 물어보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3. 공감으로 시작하라

많은 이들의 신념은 그들의 사회적 정체성과 연결돼 있다. 그 신념을 도전받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공감은 그런 방어를 무장해제하고 반성과 대화를 위한 공간을 만든다.
예를 들어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이해돼요. 주변에 낙태 경험이 있는 분이 계셨다면 더 그럴 수 있겠네요”, 혹은 “이 문제에 대해 그런 시각을 갖게 된 경험이 있으신가요?”처럼 말해보자.

공감은 동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의 시선을 이해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마음이 관계의 다리를 놓고, 사람들은 그 다리를 건너며 대화에 나선다.

4. 이야기의 힘을 활용하라

이야기는 옥시토신이라는 공감과 신뢰를 증가시키는 뇌 화학물질의 분비를 유도한다. 사실은 정보를 전달하지만, 이야기는 마음을 움직인다. 누군가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진실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누구도 실제로 겪은 일에 대해 반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낙태는 생명을 끝내는 일입니다”라는 말 대신, “대학교 시절 낙태를 선택했던 여성을 만난 적이 있어요. 당시 그녀는 두렵고 외로웠으며,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다고 느꼈죠. 그녀가 지금도 그 결정을 자주 떠올린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라고 말해보자.

이 문제가 왜 당신에게 중요한지, 혹은 생명을 선택한 여성이 공동체의 지원 속에 새 삶을 살게 된 사례 등은 강력한 설득 도구가 된다. 이야기는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켜, 단순한 정보로는 전달할 수 없는 울림을 준다.

5. 열린 질문을 던져라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300개가 넘는 질문을 던지셨다. 그분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전제를 드러내고 스스로 진리를 성찰하도록 이끌기 위해 질문하셨다.

마가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려 하시고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 악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라고 묻는다. 바리새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질문 하나로, 예수님은 그들의 냉정한 율법주의와 인간 생명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내셨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낙태는 신체 자율권의 문제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정말 강력한 주장이에요. 임신 후기에 접어들면 그 자율권은 어떻게 적용된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어보자.

또는 “저는 낙태는 하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의 선택은 존중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면, “그럼 어떤 점에서 낙태가 당신에게는 옳지 않다고 느껴지시나요?”라고 질문해보자.
질문은 사람을 방어가 아닌 성찰의 상태로 이끈다. 우리의 목표는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씨앗을 심는 일이다.

◈마무리: 강요보다 온유함으로

필자는 고백할 수 있다. 단지 올바른 말을 한다고 해서, 누군가의 깊은 신념이 즉각 바뀌는 일은 없었다고. 낙태에 대한 마음의 변화는 복음 전도와도 같아서, 당신이 그 열매를 직접 보지 못할 수는 있지만, 분명 씨앗은 뿌려질 수 있다.

좋은 소식은 여전히 많은 이들이 진리, 의미, 관계를 갈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님이 그러셨듯, 우리가 공감과 사랑, 그리고 열린 질문으로 생명에 관한 진리를 전한다면, 누군가가 진리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진리는 온유함으로 전할 때 가장 강력하게 전달된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크리스천포스트 #기독일보 #기독일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