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질 L. 워커
버질 L. 워커.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버질 L. 워커의 기고글인 ‘LA 폭동: 혼란이 정책이 될 때’(LA riots: When chaos becomes policy)를 17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워커는 G3 미니스트리의 운영 담당 전무이사이자 작가, 컨퍼런스 연사, Just Thinking Podcast의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로스앤젤레스에서 전해지는 영상은 충격적이고 분명하다. 복면을 쓴 폭도들이 연방 이민 당국자들에게 돌을 던지고, 교차로에서는 차량이 불타며, 미국의 거리 위로는 외국 국기가 도전적으로 휘날리고 있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것은 단순한 사회 불안이 아니라, 수십 년간 ‘자비’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도덕적 혼란이 낳은 논리적 결말이다.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불법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로마서 13장 1-2절은 협상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는 심판을 자취하리라.”

“정당화된 폭력”이라는 거짓말

로스앤젤레스는 폭력과 파괴의 폭동에 있어 부끄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 1965년 왓츠 폭동, 1992년 로드니 킹 사건,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태. 매번 우리는 “근본 원인”을 이해하라는 말을 들었고, “억눌린 목소리”에 공감하라고 교육받았으며, 폭동은 “들리지 않는 자들의 언어”라고 포장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설명은 틀렸다. 매번 그랬다. 무고한 이들을 향한 폭력은 죄다. 재산을 파괴하는 것은 도둑질이다. 법 집행자를 공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향한 반역이다. 누가 어떤 불의에 항의한다고 해서, 불법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반복적으로 보상된 반역

이번 폭동에서 특히 우려되는 점은, 폭도들이 이제는 정의조차 구하려는 척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국 법 집행자들을 향해 화염병과 폭죽을 던지며 외국 국기를 흔드는 사람들은, 미국이라는 주권 국가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반역이 효과적이라고 가르쳐왔다.

왓츠 폭동 이후 수십억 달러가 도시 재건에 투입되었다. 로드니 킹 사건 이후 경찰 개혁과 민감성 훈련이 도입되었다. 조지 플로이드 사태 이후에는 대기업들이 수십억 원을 운동 단체에 기부하고, 정치인들은 무릎을 꿇으며 경찰을 “재구상”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메시지는 일관되게 전달되었는데 그것은 불태우면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폭력을 통해 보상을 받는 세대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폭도를 보상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들을 막으려 한 이들을 처벌했다는 것이다. 재산을 지키려 한 상인들은 조롱당했고, 질서를 유지하려 한 경찰은 예산이 삭감되고 직장에서 쫓겨났다.

동시에, 전국 도시의 검사들은 폭도, 낙서범, 약탈범을 기소하길 거부했다. 그 결과, 새로운 세대는 법이 자기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사실, 그게 사실이다.

도시가 연방 이민법을 공공연히 무시하고, 시장이 폭동 중 경찰에게 철수 명령을 내릴 때, 그들은 시민과 범죄자 모두에게 법은 선택 사항이라고 가르친다.

도덕적 혼란이 낳은 결과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과 LA 시장 캐런 배스는 이 혼돈을 만들어낸 정책적 결정의 중심에 있었다. 이들은 질서보다 이념을 우선시하는 선택을 반복했다.

2017년 캘리포니아가 ‘피난처 주’가 된 이후, 뉴섬 행정부는 이 정책을 주 전역에 강제로 적용했다. 지방 당국에게 연방 이민 당국과 협조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고, 범죄 경력을 가진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하려는 ICE의 단속을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주 정부가 법을 어기는 자들을 위한 방패막이가 된 것이다.

배스 시장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 폭력 사태에 대해 명확하게 비난하기는커녕, 트럼프 행정부가 “폭력을 유발했다”고 말하며 이민법 집행이 폭력의 원인인 것처럼 주장했다.

그러나 도덕적 혼란은 단순한 정책 입장 이상의 문제다. 이 두 지도자는 한 세대 전체에게 미국은 충성을 받을 자격이 없으며, 미국의 법은 정당하지 않으며, 권위에 대한 저항은 오히려 칭찬받을 일이라고 가르쳤다.

뉴섬이 연방 방위군 배치를 “불법”이라 칭하며, 폭도들이 연방 경찰을 공격하고 있을 때조차 이를 반대했다. 배스가 법 집행관에게 폭탄을 던지는 자들의 폭력을 트럼프 탓으로 돌릴 때, 그녀는 범죄가 아닌 경찰이 문제라는 인식을 강화했다.

가장 충격적인 순간은 뉴섬이 LA에 도착해 “지방 경찰만으로 충분하다”고 선언했을 때였다. 그의 뒤편에서는 최루탄이 터지고 있었고, LA 경찰청장은 “우리는 압도당했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문명이 무너지는 방식이다. 지도자들이 질서와 혼돈, 정의와 불법, 시민 보호와 범죄자 보호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할 때 문명은 끝을 향한다.

“자비”를 왜곡한 결과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자비.” 우리는 자비라는 이름으로 불법을 용납했다. 자비라는 이름으로 법을 무시했다. 자비라는 이름으로 악을 정당화했다.

이 말은 자비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적 전통에서 자비란, 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자비는 회개와 용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반역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지만, 그 긍휼은 죄를 덮어주는 핑계가 아니라, 죄를 깨닫고 돌아서게 하는 힘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진정한 회개나 책임 없이도 자비를 베풀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 결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세대가 탄생했고, 권위는 불의로 인식되며, 법은 불공정한 억압의 도구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자비는 결국 가장 약한 자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안겼다.

누가 이번 폭동의 피해자인가? 자신의 가게를 지키려다 돌을 맞은 이민자 상인들, 폭도들의 길을 막으려다 다친 경찰관들, 약탈 후 폐허가 된 거리를 다시 걸어야 하는 주민들이다. 그들은 단지 평범한 삶을 원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법을 어긴 자들을 감싸는 데 집중하느라, 그들의 고통은 외면했다.

법의 복원 없이는 회복도 없다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한쪽 길은 법의 복원을 의미하고, 다른 한쪽은 무질서의 지속을 뜻한다. 회복은 법을 바로 세우는 것에서 시작한다. 법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불법에는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경은 지켜져야 하며, 권위는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 사회는 법과 권위가 단지 억압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에 속한 선한 기초라는 것을 회복해야 한다. 로마서 13장의 가르침처럼,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며, 그 권위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자이다.

우리의 도시와 문화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지도자들이 용기 있게 질서를 선언하고, 교회가 공공의 정의와 도덕에 대해 목소리를 내며, 시민들이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의 책임

이러한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단지 온유한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진리를 말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불의를 외면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와 질서를 외치도록 부름받았다.

사랑은 혼돈을 용납하지 않는다. 자비는 불법을 미화하지 않는다. 정의 없는 자비는 진짜 자비가 아니다.

우리는 불법 이민에 대한 동정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동정심이 법을 무시하고, 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을 정당화하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진리 없는 사랑은 자기기만이다.

이번 로스앤젤레스 폭동은 경고다. 만일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권위, 세상의 질서, 그리고 인간의 책임을 무시한다면, 이런 폭동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될 것이다.

정의 없는 자비는 폭력으로 귀결되고, 책임 없는 동정은 혼돈을 낳는다. 회개 없는 용서는 기만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더 이상 혼돈을 정상이라 부르지 않기로,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를 온전히 따르기로. 그리고 다시, 질서 있는 자유의 나라를 세우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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