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
도서 「낮은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위로, 더 높이 오르기를 강요받는 시대를 살아간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올라야 인정받는 세계 속에서 ‘낮아지는 삶’은 종종 무능과 패배로 간주된다.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기고, 타인은 그에게 ‘덜 노력한 대가’라는 낙인을 찍는다. 심지어 교회마저 구원을 철저히 개인화하며 이웃의 고통보다 자신의 형통을 우선시하는 풍조 속에서, ‘낮아짐’이라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가치는 점점 더 희미해져간다.

이런 시대 정신을 향해 신학자이자 저자 구미정 교수(숭실대학교)는 깊은 사유와 성찰로 도전장을 내민다. <낮은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은 성경 속 인물 14명의 삶을 통해, “하늘은 낮은 자리에 임하신다”는 복음의 메시지를 새롭게 들려준다. 첨탑 위 고공농성을 벌이는 노동자에게서 유두고를, 자아가 산산이 부서진 후 비로소 참된 사명을 발견한 삼손을, 보잘것없는 포로소녀였지만 나아만 장군의 구원을 이끈 이름 없는 소녀를, 로마 제국의 권력 한복판에서 신앙을 지킨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통해, 저자는 ‘하향성’이라는 영적 지향이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여는 길임을 힘주어 말한다.

구 교수는 성경 속 ‘어제’의 장면들을 ‘오늘 여기’ 우리의 현실로 소환해 낸다. 자칫 박제된 신앙 영웅들의 이야기를 오늘날의 노동 현장, 젠더 불평등, 사회적 낙인, 전쟁과 갈등의 현장 속으로 끌어들여, 하나님의 시선이 향하는 곳, 가장 밑바닥, 가장 눈물 많은 자리가 바로 그분의 구원이 시작되는 자리임을 깨닫게 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은 그 자체로 시대를 거스르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예컨대 삼손은 힘을 상실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능력이 하나님의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의 절절한 기도, “주 하나님, 나를 기억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는 자아가 산산이 무너진 자리에서 탄생한 고백이다. 또한 나아만 장군은 신분과 자존심을 벗어 던지고 요단강에 몸을 던진 후에야 치유의 은총을 경험한다. 그 놀라운 사건의 시작은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한 포로소녀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였다.

그뿐 아니다. 민초들의 아픔을 대변하며 복수보다 화해를 노래한 리스바, 초라한 야곱의 인생에 찾아온 하나님의 언약, 드보라 이야기의 핵심을 ‘시스라의 어미’가 선 자리에서 도려낸 하나님 눈물로 포착하는 저자의 시선은, 기존의 영웅 중심 성경 읽기를 전복하고, 가장 보잘것없는 자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거룩한 전환을 정조준한다.

특히 인상 깊은 대목은 마리아에 대한 묘사다. 그녀는 부활의 첫 증인이었으며, 예수의 죽음 앞에서도 떠나지 않은 제자였다. 예수의 발 곁에 앉아 말씀을 들었던 마리아는, 이미 그 순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이다.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서 어찌 사랑을 노래하랴?”라는 저자의 질문은, 성경을 넘어 독자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든다. 결국 저자는 말한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낮아지고, 무너지고, 버려지는 그 자리가 은총의 통로가 되는 순간, 세상은 비로소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낮은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은 단순한 성경 인물 에세이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한국 사회, 신앙 공동체, 나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영적 성찰서이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격려와 도전, 그리고 깊은 위로를 건네는 책이다. 성경을 새롭게 읽고 싶은 이들, 신앙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 사회 속에서 기독교적 증언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오래도록 곁에 두고 음미할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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