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게 뒤늦게 알려지면서 정부의 늦장 대응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한·미 관계에 새로운 변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바이든 정부 말기에 전통적인 우방국인 우리나라를 아무런 예고도 없이 리스트에 올려놓았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다.
‘민감국가’란 미국이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특별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분류하는 국가를 말한다. 그 규제 정도에 따라 △테러지원국 △위험 국가 △기타 지정 국가로 분류된다. 우리나라는 이번에 가장 낮은 등급인 ODC(Other Designated Countries)에 포함됐다.
미국은 이 리스트에 러시아와 중국은 ‘위험국가’로, 북한과 이란은 ’테러지원국‘으로 분류해 놨다. 1954년 처음으로 이 개념을 도입한 이후 미국 정부는 해당 국가들과의 원자력·과학기술 교류를 단절한 바 있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민감국가’ 목록에 올렸다고 해서 당장 외교 안보 분야에 악영향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전통적인 우방국이자 안보동맹 관계인 우리나라를 그 대상에 포함했다는 것만으로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처지다.
궁금한 건 왜 미국이 우리나라를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시켰느냐 다. 아직 이유가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미루어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다.
정치권, 특히 야당에선 트럼프 재집권 이후 국내에서 안보 불안을 이유로 자체 핵 무장론이 비등했던 것을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계엄 이후 대통령이 탄핵되고 대행인 국무총리까지 야당의 탄핵으로 권한이 정지된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론을 진지하게 고려했을 리 만무하다. 더구나 다른 주요 장관들까지 줄줄이 직무가 정지된 마당에 미국이 한국의 독자 행동을 경계해 민감국가로 지정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가장 심증이 가는 게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야당의 대통령과 국무총리 탄핵으로 초래된 행정부의 기능 공백이다. 비상계엄 이전부터 이미 야당의 줄 탄핵으로 정치·사회가 극심하게 양분돼 미국으로선 한국에 믿고 신뢰할 만한 대화 파트너가 실종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가능성은 미국이 한국형 원전 기술을 견제하려는 것일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으로 폐기한 원전 기술을 중동과 동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세일즈에 나섰다. 이로 인해 한국형 원자로 수출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미국과 묘한 경쟁 구도를 형성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과제는 미국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느냐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미국의 ‘민감국가’ 지정이 우리 안보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는 게 급선무다.
미국 정부에 의해 ‘민감국가’로 지정되면 최첨단 미래 기술이나 국가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군사정보, 원자력 관련된 기술 협력이 제한받게 된다. 정치권 일각에서 앞으로 우리나라가 미국과의 군사정보나 핵 원자력 기술 교류의 길이 막히는 게 아닌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미국이 당장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현재 같은 등급인 이스라엘의 경우 이 문제로 인해 양국 군사안보협력 관계에 어떠한 변화의 조짐도 감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일부 언론에서 당장 우리나라가 핵 원자력에서 미국의 불이익을 당하거나 한미동맹에 금이 가는 일이 벌어질 것처럼 소란을 떠는 건 국익 차원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지금 정치권은 정부의 늑장 대응을 비판하면서 여야 간에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정부의 책임이 크지만, 탄핵 정국이 아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안이란 점에서 정부에게만 책임이 있진 않다. 만에 하나 야당이 미국통으로 정평이 난 국무총리를 탄핵시키지만 않았어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민주당의 줄 탄핵이 현재 이 문제를 해결할 정부의 능력을 현저히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 외교가의 공통된 시선이다. 따라서 굳이 책임 소재를 따진다면 주무 부서인 외교통상부와 함께 탄핵으로 행정부 기능의 공백을 초래한 야당도 적지 않은 부분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다만 지금 와서 책임 소재를 따진다고 크게 달라질 게 없다. 중요한 건 이 리스트가 다음 달 15일 정식 발효되기 전에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거다. 이런 외교적 후폭풍을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헌재가 윤 대통령의 탄핵뿐만 아니라 한 권한대행 탄핵 문제를 서둘러 결론 내려야 할 것이다.
한 권한대행에 대한 야당의 탄핵소추는 탄핵 사유와 근거에 있어 중대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 중대한 헌법과 법률 위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지껏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미적대고 있으니 헌재가 특정 정파에 휘둘린다는 비판을 받는 거다.
다시 말하지만,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했다고 부산을 떨 일은 아니다. 하지만 리스트가 확정되기 전에 조속히 미국과 협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 문제의 소지를 없애는 게 제일 안전하다. 처음엔 다 작은 균열에서 시작한다. 절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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