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013년 WCC 부산총회

소기천 교수
소기천 교수

106회 총회의 에큐메니컬위원회는 한국교회가 유치한 부산총회 이후에 파생된 문제점을 알고 있다. 문제는 부산 총회 이후에 우리 교단의 대응이다. 유인물에 다음의 내용이 있다.

“2013년 부산 WCC 총회 이후, 목회 현장에는 여러 가지 불편한 공격과 일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어려움이 있었으며, 교단의 정체성까지 거론되는 위기가 있었습니다. 급기야 우리 교단이 WCC를 탈퇴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제99회 에큐메니칼위원회는 총회의 위임을 받아 ‘WCC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2015년 9월에 그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결론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 교단은 WCC 운동에 참여하여야 한다.’라는 것이었고, ‘힘들고 어려운 과업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 이 시대에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여야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일부 교단에서 공격하는 WCC의 신학이 우리의 신학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일에 적극 참여하는 이유는 우리 신학이 지향하는 목표와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이 긴 인용에 WCC 탈퇴 문제 그리고 WCC의 신학과 목표가 언급되어 있기에 비판적인 관점에서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1) WCC 탈퇴

이것은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2021년 10월 강릉노회는 WCC 탈퇴 헌의안을 가결하여 107회 총회에 올리기로 했다. 106회 총회에서 류영모 총회장이 ‘동성애를 옹호하면 탈퇴하겠다’라고 선언한 직후 통합 69개 노회 중에서 가장 먼저 WCC 탈퇴 헌의안을 가결한 것이다.

WCC 부산총회를 유치한 한국교회는 20억 원 부담금 전액을 명성교회에 커다란 짐으로 지우고, WCC 총회가 끝나자마자 명성교회를 공격하는 일에 장신대 임성빈을 비롯한 교수들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선의로 막대한 돈을 혼자서 담당한 명성교회로서는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지만, 한국교회는 명성교회에 감사하기는커녕 구약성경에 계승으로 세 번 언급된 목회 계승을 도리어 세습 반대라는 터무니없는 스티커를 붙여서 반대하였다. 지금까지 학생들을 선동해서 통합교단을 뒤흔들고 있는 김운용 총장, 박상진, 임희국 교수 등은 세습반대 교수 모임(세교모)의 공동대표로 아직도 공적으로 사과 한마디 없이 명성교회를 반대하고 있다. 그동안 명성교회가 장신대를 위해 기도하면서 성도들이 낸 헌금을 건축비, 장학금, 장기발전기금 등을 지원해 준 것이 어마어마한데, 불교식 ‘걷기도회’까지 하면서 장신대로부터 명성교회까지 시위하였다. 당시 피켓과 구호를 외치면서 행진하는 광경을 목격한 사진을 보면 불신자들에게 전도의 기회를 막는 형국이라 안타까운 일이다. 교회를 세우고 살려야 할 신학교가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계속하다 보니 은혜도 모르고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교회가 장신대를 떠나고 헌금과 후원을 끊으니, 장신대가 해마다 50억 원의 적자를 보는 안타까운 처지에 몰리지 않겠는가?

에큐메니컬위원회의 보고서에는 부지중에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을 말하는 것 대신에,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그 증거로 3.1운동을 예로 들면서 “비기독교 단체와도 얼마든지 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비난하게 되면, 1919년 삼일운동을 위하여 천도교나 불교도들과 연대하여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일을 옳게 해석할 수 없게 됩니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발언이다. 이것은 WCC가 추구하는 JPIC를 하나님을 대신하여 지상최대의 이념으로 숭배하는 논리적 자가당착에 빠진 모습이다. 교회의 본질은 복음이고 성경이다. 타종교와의 대화를 넘어서 타종교와 협력하고 연대하는 일에는 많은 제한과 제한이 있다. 이 점에서 에큐메니컬위원회가 한 다음의 발언은 위태롭게 여겨진다.

특히 에큐메니컬 선교 신학은 정의, 평화, 창조 질서의 보전(JPIC)을 강조한다고 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에큐메니컬 선교 신학은 인간의 영혼 문제보다 사회정의와 인권 문제를 더욱 강조하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고, WCC가 이념에 물들어서 무엇보다도 우선시해야 할 복음의 본질인 인간의 영혼 문제를 등한시하고 사회정의와 인권 문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KNCC의 이념에 동의하는 오류에 갇혀있다.

2) WCC의 신학과 목표

에큐메니컬위원회의 보고서에는 금주섭과 정병준 목사의 글이 나란히 실려 있는데, 거의 논지가 비슷하다. WCC의 신학에서 문제가 되는 내용을 직접 다루기보다는 WCC를 변호하기에 급급하여 ‘게는 가재 편’이라는 속담처럼 이미 각본대로 만들어 놓은 것을 두 사람이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에큐메니컬위원회가 「바아르 문서」(1990)을 언급하고 있지만, 과연 1990년에 스위스 바아르에서 발표된 바아르 선언문의 원문이나 제대로 확인하고 읽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에큐메니컬위원회가 “WCC 총회는 「바아르 문서」를 공식적으로 수용하지 않았습니다”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모인 바아르에서 채택된 선언문은 곧 WCC의 신학과 목표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므로, 현재 WCC는 바아르 선언문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 증거가 바아르 선언문의 서언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 이듬해인 1991년 호주 캔바라에서 모인 WCC 총회의 기초가 되었으며, 그때 정현경의 초혼제가 거행됨으로써 WCC는 무속종교까지 개회 예배에 끌어들이는 그야말로 종교다원주의의 행보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일부 교단에서 공격하는 WCC의 신학이 우리의 신학이 아니다”라는 선언이 사실이라면, 왜 에큐메니컬위원회는 WCC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두둔할까? 통합 교단이 지향하는 목표가 WCC와 같기 때문이다. 필자는 WCC가 지향하는 목표가 타종교와 대화 및 종교다원주의에 있다고 간주한다. 그럼 WCC의 신학과 목표를 보여주는 문헌은 어느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바아르 선언문과 종교 다원주의 정신을 뒷받침하고 있는 2002년 WCC 중앙위원회의 “종교의 다원성과 기독교인의 자기 이해”라는 문서이다. 두 문서는 WCC가 감추고 싶어 하는 문서이고, 에큐메니컬위원회도 극구 변명을 해보았지만, 너무 알려져서 소홀하게 여길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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