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수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생각하며 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순종하면서 그 분의 통치를 실현하려면 고난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대적하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을 매사에 인정하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려고 하면 많은 손해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선퀴스트는 “선교사의 실존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이란 죽음에 이르기까지 신실하기 위한 부르심이다. 연약하고, 가난하며, 고통 받는 종을 통해, 구원의 복음이 대부분 소통된다.” 라고 설파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가 세상의 죄 문제를 지적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하면, 사이더가 말한 대로 “교회가 세상의 악을 드러내면 세상은 분노에 찬 적개심을 품고 덤벼들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세상을 하나님의 영광에로 이끄는 증인의 삶은 고난을 포함하고 있다. 증인을 뜻하는 ‘마르튀스’라는 말이 ‘증인’이라는 뜻과 ‘순교자’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듯이, 증인은 하나님의 말씀과 행위의 증거자일 뿐 아니라, 그러한 증거를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도 바치는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노영상은 증인의 고난을 다음과 같이 그린다.

“[이사야서에서] 종의 노래에서 이사야는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고난과 부활을 그리고 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53:4). 샬롬을 향한 노력과 선교자의 소명 감당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교자의 헌신과 희생을 요구한다. 선교자의 고난은 철저히 남을 위해 받는 고난이기도 하다. 이사야가 말하는 고난은 개인적 경건을 완성하기 위한 고난이 아니며, 선교가 야기하는 고난이다.”

이처럼 선교는 필히 고난을 내포하기 때문에 오늘날 선교에 있어서 많은 문제 발생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을 피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든 자신은 손해와 고난을 최소화하고 인기와 영광을 얻으려하기 때문에 문제들이가 발생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정운은 “.... 나는 쇠하고 그리스도가 흥하는 선교가 되고 살아도 그리스도를 위하며 죽어도 그리스도를 위하면서 사나 죽으나 우리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진신으로 열망하는 선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형제를 위하여 그리스도에게서 저주를 받아도 가하다는 심정으로 사역하는 바울 선교와도 같은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는 영성에 의해서 시도되는 선교다.” 라고 언급한다.

그런데 그러한 고난은 결코 헛된 고난이 아니다. 물론 선교는 고난당하는 선교사들과 희생당한 성도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선퀴스트가 말한 대로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이야기의 흐름은 영광이다. 고난은 그 통로이다. 위대한 기쁨과 함께하는 영광이 그 끝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을 기꺼이 감수할 때 결국 영원한 기쁨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쁨과 영광이 선교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4.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며 동력을 제공받는 장으로서의 예배 수행

우주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고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어디서나 우리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느끼고 찬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역시 예배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예배를 통해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 자비, 신비, 능력을 직접 느끼고 목도하면서 하나님의 크신 영광을 발견하게 되고, 자연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이러한 영광을 보면서 성도들은 무한한 기쁨과 능력을 공급받게 된다. 이 영광이야말로 선교하는 성도들을 다시 세워주는 놀라운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라이트는 “선교사들은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영적인 전쟁에 사로잡히기 쉽고, 재정과 질병으로 괴로워하면서 희망을 잃기도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확실하고, 이것은 세계 선교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지표와 닻(anchor)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생각과 삶은 영광 가운데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비전에 의해서 빚어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지친 영혼들이 새로운 능력을 제공받는 장은 바로 예배의 장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예배는 선교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이런 점에서 파이퍼는 “세계를 품은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세계적인 목적이 영광에 완전히 사로잡힌 나머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세상을 가득 차게 하려는 (합2: 14) 하나님의 선교에 자기도 연합하기로 결심하는 사람이다.” 라고 말하면서, “세계를 품은 크리스천의 불타는 기도는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시 67:3)다.” 라는 표현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예배는 선교의 원동력이며 동시에 선교의 최종적인 지향점 임을 언급한다. 이런 점에서 김영동도 “교회는 ‘승자’나 ‘정복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의 참여자(partaker)다.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할 때 가지는 원천과 힘과 출발점은 예배 예전이다. 예배와 기도 가운데 살아 있는 하나님과 만남으로서 선교하는 능력을 교회가 얻게 된다.” 고 주장한다.

아울러 예배는 예배의 자리에 참여한 불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신비와 영광을 목도하고 느끼게 만드는 가장 적절한 장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예배는 불신자들을 위한 선교의 장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라이트는 "하나님의 찬송을 선포하는 공적 예배에는 전도하는 능력이 있다. 공적 예배가 개인 전도와 동일시 될 수는 없지만, 분명히 그것을 보완한다.“ 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존 딕슨의 주장을 따라서 ”공적 찬송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엿듣는 사람들에게, 아직 어두운 가운데서 그의 기이한 빛으로 불러냄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능력을 알린다.“ 라고 말하면서 예배가 전도의 주요한 장이 됨을 언급한다.

물론 모든 예배가 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교회와 미국 주류 교파 교회들은 오늘의 과학 시대에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종교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종교의 본질인 ‘성스러움’의 차원을 기독교에서 제거한 측면이 있다. 그리하여 초자연, 초월, 성스러움이 빈약하고, 그리하여 신비스럽지도 않고 경이롭지도 않은 종교로 전락한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들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영광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했으며, 지성적인 현대인을 끌어들이지도 못했다. 이원규는 그러한 이유에 대하여 “왜냐하면 그들은 ‘신비스러움’을 상실한 종교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고 분석한다. 결국 선교의 동력을 제공하고, 불신자들 위한 전도의 장이 되는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통한 성스러움과 신비로움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능력이 충만한 예배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최종적인 선교의 목표에 이르기 위해 기독교의 예배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더욱 충만해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V. 요약 및 전망

선교의 궁극적 목표를 복음화나 인간화를 넘어선 하나님의 영광으로 삼을 때 우리는 양 진영의 선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즉 하나님의 영광이 최종적인 목표가 될 때 전통적인 복음화 중심 선교의 잠재적 부작용인 잘못된 동기에 의한 선교, 업적 자랑식의 선교, 지나친 경쟁과 분열 등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보았다. 아울러 하나님의 영광이 최종적인 목표가 될 때 에큐메니칼 인간화 중심의 잠재적 부작용 즉 구원의 핵심을 놓치고 선교를 정치운동 혹은 사회 윤리 운동으로 왜곡 축소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최소화 할 수 있음도 보았다. 아울러 최종적 목표가 선명할수록 성취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통전적 선교의 지나치게 방만한 선교 목표 설정의 위험성이 있는데, 이러한 부작용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선교의 최종적 목표로 삼을 때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음을 보았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삼는 선교를 수행할 때 행해야 하는 주된 과제들로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라는 소식의 전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의 실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수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며 능력을 제공받는 장으로서의 예배 수행 등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특별히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과 신비를 직접 보며 체험하는 장으로서 성도들이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릴 뿐 아니라 선교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을 얻는 장이며, 불신자들도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회심할 수 있는 좋은 전도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결국 바람직한 선교의 방향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선교의 최종 목적을 선명하게 정립하고, 이 목적을 향하여 전도, 봉사, 거룩한 삶,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는 수난, 하나님이 임재가 체험되는 예배 등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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