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통전적 선교신학의 한계점 극복

안승오 교수
안승오 영남신대 선교신학 교수

통전적 선교신학은 복음주의 진영과 에큐메니칼 진영의 오랜 갈등 끝에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으로 복음주의 진영의 핵심 목표인 복음화와 에큐메니칼 진영의 핵심 목표인 인간화 중 어느 하나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둘 다를 균형감 있게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선교신학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양 진영이 완벽하게 일치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은 에큐메니칼 진영이 제시한 통전적 신학을 복음주의 진영 역시 일정 부분 수용하는 상황이다. 특별히 2010년 복음주의 진영의 ‘케이프타운 로잔 3차 대회’에서 복음주의가 그 동안 강조했던 복음전도의 우선성에 관한 언급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복음주의 진영이 통전적 선교를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통전적 선교신학은 양 진영이 모두 수용하는 신학으로서 한쪽으로 치우치기 쉬운 선교에서 균형감을 갖추도록 돕는데 기여하는 신학으로 평가된다는 점 등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통전적 선교신학은 균형감을 잡는 대신 여러 가지 중요한 점들을 잃는 문제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들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과제이므로, 일단 이 장에서는 통전적 선교신학의 기본적인 한계점만을 간략하게 분석하고,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관점이 어떻게 이런 한계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통전적 선교신학은 선교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과 선교의 모범이 되신 예수의 가르침과 부합되지 않는 면이 있다. 바벨탑 사건과 출애굽 사건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인간들이 단순히 인간화를 이루는 것에 있지 않고, 본래의 목적대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바르게 교제하며 사는 것에 있음을 보여준다. 특별히 출애굽 사건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씀은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출 7: 5, 17), “너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출 8: 10),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출 8: 22) 등의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주된 관심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애급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에 있지 않고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온 천하에 알리고 온 천하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시는 것임을 볼 수 있다.

또한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후 왕이 되어줄 것을 요구한 백성들의 요구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요 6: 27)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람들이 추구하여야 할 길은 영적인 삶임을 말씀하셨다. 아울러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 54-55) 라는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사역의 목표는 영생을 주는데 있음을 말씀하셨다. 물론 예수께서 떡을 주시고 병도 고쳐주시고 약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하지만 예수께서 지니신 최종적인 핵심 목표는 영생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선교에서 모든 것을 다 포함한 구원 개념을 지닌 통전적 선교가 과연 주님의 가르침과 부합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둘째, 통전적 선교는 너무 많은 목표를 설정함으로 말미암아 목표 자체가 흐릿해지고 그로 인해 성취 가능성이 매우 낮아지는 문제점을 지닌다. 한 손으로 무엇을 잡으려면 기존의 것을 놓아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통전적 선교신학은 자칫 한 손으로 모든 것을 잡으려는 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즉 통전적 선교신학은 ‘복음화’와 ‘인간화,’ ‘개인구원’과 ‘사회 구원’ 그리고 '인간구원‘과 ’모든 피조물의 구원‘ 등의 우선순위를 설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중요한 것으로 보면서 동시에 추구하는 신학이다. 이것은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사역을 세상의 다양한 기구들이 하는 사역과 동등한 것으로 만들면서 교회의 핵심 목표를 놓치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이것은 마치 한 병원이 급식소, 도서관, 복지센터, 환경개선센터 등을 하면서 그 모든 사역이 병원의 진료 사역과 동일한 중요성을 지닌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유사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자세는 결국 핵심을 놓치게 할 수 있고, 조 샘이 분석한대로 “.... 총체적 선교는 개념적으로 혼동을 일으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 총체적 선교의 경우에는 그 선교의 대상이 누구인가에 대한 혼동을 줄 수 있다. 잘못 생각하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선교라고 착각할 수 있다.”

셋째, 목표의 충돌 가능성과 선교의 핵심 기구인 교회의 약화 가능성이다. 전통적인 복음주의 진영이 말하는 ‘복음화’와 에큐메니칼 진영이 말하는 ‘인간화’는 서로 보완하는 측면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면 복음화는 성경에 우선순위를 두고 어떤 상황에서도 기본적으로 복음 전하는 것을 핵심사항으로 여기는 반면, 인간화는 상황과 인간 이성에 우선순위를 두고 평화와 공존을 핵심사항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점에서 두 관점은 서로 공존하기 어려운 면이 있고, 놀이터의 시소처럼 어느 한쪽이 강조되면 다른 쪽은 약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복음전도가 어렵고 핍박을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될 때 복음화를 강조하는 관점에서는 인간화가 약화되고, 인간화를 강조하는 관점에서는 복음화가 약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 관점에서는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면, 통전적 신학의 영향으로 여건이 되면 선교한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면서 결국 복음화가 약화될 수 있다. 그리고 복음이 약화되면 자연히 교회 또한 약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은 통전적 선교가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한계점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문제점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영광’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여진다. 즉 복음화와 인간화를 우선순위도 없이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최종적 목표를 두고, 그 목표의 빛 하에서 어떤 것이 이 목적 성취에 적절한 것인지를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이 최종적인 목적이 된다면,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선교의 중요한 과제가 되므로 복음전도가 우선적이고 핵심적인 과제로 인식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성도의 윤리적이고 거룩한 삶이 또한 하나님 영광에 중요한 사항이므로 에큐메니칼 관점 역시 부가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통전적 선교의 한계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궁극적인 목적이요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계속)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선교학)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안승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