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기간은 단순 노동 아닌,
타락한 세상에 회개 메시지 던진 시간...
노아는 비난과 고통 감내하고,
기도로 엎드릴 때 방주에 대한 구체적 지시 받았을 것

원유경 목사
포드교회 원유경 목사 설교 모습. ©영상 캡쳐

Pod(Parade of David) 교회, 원유경 목사가 2024년 첫 주일예배에서 말씀을 전했다. 그녀는 교회의 2024년 시작점에서 ‘노아의 방주’를 주제로 설교하며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120번 엎드리며 하나님의 구체적인 지시를 받았을 것”이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까지, 기도하고 두들기며, 신실하게 매일의 삶에서 구체적인 순종을 이룰 것”을 강조했다.

원유경 목사는 “새로운 해가 되면 여러  전문가들은 한 해의 변화를 예측한다. 사람들은 금융, 경제, 국제 정세 등 알 수 없는 변화를 예측하고 싶어하고, 이를 통해 다른 이들을 앞지르고 싶어 한다”고 했다.

이어 미국의 사업가로 백만장자인 ‘제프 베조스’가 포브스지와의 인터뷰에서 ‘10년 후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10년 후에도 바뀌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한 질문”이라고 대답한 것을 언급하며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고 아낌없이 투자하거나 변화에 발맞추기 급급하기보다는, 멀리 보고 조급하지 않게 가되 지금 내딛는 한 발은 맹렬하게 내딛을 것이 중요하다”며, 즉 “이것은 변하지 않는 가치를 붙잡고 하루하루 맹렬히 걷는 것이며, 궁극의 가치를 붙잡고 순종과 믿음으로 걷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노아의 시대에는 창조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없어지고, 아무것도 아니어지는 변화였다. 그는 이 모든 것이 변화는 사회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붙잡고 살았다”며 “그는 120년 방주를 짓는 가운데 세상의 비웃음과 조롱에 맞서야 했다. 그는 매 순간 요구되는 순종을 이뤘고, 이는 하나님의 구원을 예비했다. 그의 믿음은 ‘이론도 관념’도 아니였다. 매 순간의 결정과 분투”였다고 했다.

시작부터 다르게 하라.

편애에 가까운 은총 얻은 노아
혼탁한 세상, 인생에 장기적인 관점 가져

원유경 목사는 “이 시기는 죄악의 관영했던 세상으로 영적인 무정부 상태 즉,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전면적으로 반항했던 시기로 우발적인 범죄만이 아니라, 주도 면밀한 의도적 범죄의 세상이었다”며 “단순히 인간이 연약함으로 죄를 지었던 시기가 아니라, 인간의 태도와 방향성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양상으로 이것이 그들의 삶의 설정”이라고 했다.

이어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이들의 특징에 대해 완전히 물질주의적이고, 현세적 삶의 시각으로 표현하시며 ‘오직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을 세상의 전부로 여기는 모습’이라고 묘사하신다.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이것을 삶의 전부로 여기는 것”이라며 “하나님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영혼은 관심사가 아니고, 말씀은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원칙으로 심판은 그들에게 조롱거리가 됐다”고 했다.

그녀는 “이 죄악의 관영과 부패가 오늘날을 진단하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의 관심의 초점이 여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얼마나 사악하고 해롭고 부패한 삶의 방식인지 언제나 의식해야 한다”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윤택함과 일상의 풍요로운 행복에 우리가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이 선물을 누리면서도 영원을 위한 ‘장기적인 시각’을 소유해야 한다. 이것은 영원과 지금을 연결하는 것으로, 하늘과 땅을 연결해야 한다. 그러면서 지금의 한 걸음을 맹렬히 내딛는 것”이라고 했다.

원 목사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기뻐하셨지만, 그 후 죄가 관영한 인류를 보신 하나님은 극심한 고통을 느끼셨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시선에 노아가 등장한다”며 “누구도 죄악이 관영한 이 사회에서 하늘을 쳐다보지 않는 시기에 오직 노아만은 하나님을 쳐다봤다. 땅을 내려 보는 시각인 하나님과 이 땅에서 오직 하나님을 쳐다본 노아의 시선은 마주쳤다. 이것은 노아에 대한 하나님의 편애와 갖은 은총으로, 이것이 노아를 노아되게 하던 시작”이라고 했다.

이어 “사람들의 호의와 호감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아첨하고 노력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는 정작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 영적 소경된 사람들, 분별없고 어리석고 중심 없는 자들처럼 살면 안 된다. 우리는 이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 이 은총이 2024년의 시작점이 되야 한다”고 했다.

관통선이 하나님의 마음이 되게 하라.

“1000년 살은 므두셀라는 심판을 의미...
그 기간은 심판을 향해 경고하는 하나님의 기다림”

원유경 목사는 “히브리서 기자는 노아가 ‘아직 보이지 않은 일에 대한 경고를 받았다’고 말한다. 노아의 시대의 지구 환경은 안개가 지면에서 올라와 자외선을 차단하여 인간이 굉장히 긴 수명을 가지고 있던 때”라며 “아직 풍랑과 폭풍, 비 바람와 해일이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홍수가 모든 것을 쓰러뜨리고 강둑이 터지는 이런 일들을 경험하지 못한 시기로, 노아는 비와 홍수를 이전에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이 이 계획을 말씀하셨을 때, 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노아의 이성과 경험을 초월하는 믿음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제시하신 미래를 붙들었다”며 “그런데 사람의 미래란, 우리의 이성과 경험에 의해 지배당하기 쉽다. 그러나 노아는 믿음과 하나님의 약속에 붙잡혀 있었다. 노아는 그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일이었으나, 마치 이것을 보는 것처럼 믿었다”고 했다.

그녀는 “우리가 미래를 계획할 때, 우리가 기획하는 것은 나의 상처와 트라우며,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발목을 잡고, 연약함과 질병으로 미래를 제한하고 있다. 우리는 그분의 약속에, 나의 경험을 적용해서 보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말씀'이 기준이 되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드신다. 그분의 약속이 우리의 미래를 지배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왜 하나님은 노아가 방주를 완성하기 위해 120년 간 시간의 순종을 요구하셨을까? 이에 대해, 저명한 미국의 작가 유진 피터슨은 이런 말을 했다. ‘예수님이 목수일을 하다가 못이 구부러지면 성령의 능력으로 펴셨겠는가?’ 아니다, 예수님도 구부러진 못을 망치로 두드려서 펴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신성을 이런 것에 낭비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인간의 이성과 노동과 인과적 현실은, 하나님도 매우 존중하시고 소중하게 다루시는 질서”라고 했다.

원 목사는 “그러나, 단순히 이 노동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120년이 걸렸을까? 노아가 약 2500종 이상의 암수 동물을 방주에 태우는 일은 엄청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노아의 마지막 유언이, '저 코끼리 좀 잡아서 방주에 넣어' 이런 것일 수도 있었다. 거기다 암수를 쌍으로 맞춰어 넣어야 하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랬다면, 노아는 방주를 다 만들어도 디스크와 관절염 등 수많은 질병으로 인해 들것에 실려 방주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노아는 120년간 단순히 망치질만 한 것이 아니다. 베드로후서는 노아에 대해 '의를 전파한 노아'라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망치질이 아니라, 심판에 대한 눈물이었을 것이다. 창조세계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극심한 고통을, 노아도 이해했을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아파하고, 하나님과 함께 죄인들의 회개와 돌이킴을 기다리던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원 목사는 “아담의 족보에 등장하는 노아의 할아버지 ‘므두셀라’의 이름의 뜻은 ‘그가 죽을 때, 그것이 임할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의 할아버지가 죽을 때, 심판하실 것을 계획하셨다. 므두셀라가 사는 기간까지, 처음 세계가 존속되고 보존되는 기간이었다. 그의 수명은 세상의 심판에 대한 유예기간”이었다며, “므두셀라는 창세 이래 가장 오래 살았다. 거의 1000년 가까이 살았다. 그의 삶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길고 긴 기다림이었다. 그의 삶이, 곧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을 표현하신 것이다. 즉, 죄인들을 향한 심판의 유보와 그들을 돌이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어 “노아가 방주를 짓던 120년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것은 단순히 홍수심판 이후 자신의 거처를 짓는 일이 아니다. 이 기괴한 일을 산꼭대기에서 하던 노아에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물었을 것이다. 노아는 그들에게 홍수심판에 대해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했을 것”이라며 “방주를 짓는 것 자체가 심판에 대한 경고이자, 세상에 대한 정죄이다. 노아는 120년 동안 이 일을 계속하며 의를 전파했던 것이다. 이 경고와 정죄는 수많은 갈등을 일으켰고, 노아는 공격과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노아는 이 행위로 묵묵히 말씀을 선언하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과의 고통에 기꺼이 동행하고 하나님의 동행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고 했다.

# 과정이 전부 순종이 되게 하라.

“순종은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현실...
고통 속에도 엎드려, 응답 얻을 때까지 기도해야”

원유경 목사는 “홍수는 노아가 방주를 짓기 120년 되는 해에 일어났다. 노아가 방주를 짓기 시작한 후에 40년, 50년, 100년...119년까지 비는 오지 않았다. 이것은 120년, 매일의 순종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셩경에는 방주의 설계와 방식, 세부적인 지시사항이 요구된다”며 “이 구체성이 바로 노아가 하나님 앞에 엎드린 시간을 증명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매우 추상적으로 다가 온다. 이 추상성은 그 시련의 과정에 있어서 계속해서 구체화 되게 된다. 그래서 이 약속을 붙잡고 그분께 엎드려 신음하며 구하며 기도할 때마다 구체화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래서 우리는 한 해 받은 말씀을 가지고 매일 매 순간 모든 삶과 영역 속에 어떻게 구체화되고 실행되는 지를 봐야 하는 것이다. 그 뜻의 신비가 우리의 삶에 풀어질 때까지 엎드리고, 묻고, 기도하여, 응답을 누려야 한다”며 “노아는 그 순종의 구체성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방주를 만드는 것에 순종하기 위해 어느 날 노아는 나무를 샀다. 아마도 그의 전 재산을 투자해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믿음의 구체적인 행위가 현실의 손실을 요구하는 순간이 되자, 그는 흔들릴 수가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이 흔들림 속에서 노아가 하나님께 엎드린다. 그러자, 하나님은 ‘나무는 고페르 나무로 만들어라’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흔들림 속에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만, 구체적 응답과 함께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나무를 사들이고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방주의 기초작업을 하기 위해 보니 노아는 혼자서 감당할 수 없어, 자신의 3명의 아들을 불렀을 것이다”며 “아들을 불러서 그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방주 건설에 동참하기를 요청하니, 둘째 아들은 ‘지금 내 돈을 다른 사업 자금에 넣었느데 어떻게 빼냐’며, 노발대발 했을 것이다. 셋째 아들은 ‘행간에 아버지의 소문이 안 좋다. 이 때문에 나까지 왕따당한다’고 하소연했을 수 있다. 나의 이런 상상이 억지스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도 삶의 순종이듯이, 노아에게도 삶의 순종이 요구됬을 것이다. 삶은 현실이다. 노아의 믿음은 현실을 담보로 증명됐다. 그를 힘들게 한 현실에 관계의 문제도 포함 되었을 것”이라며 “나는 노아의 자녀들과 며느리들이 노아의 믿음에 동일한 믿음으로 동참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면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인정한 믿음은 오직 노아 한 사람에게만 해당됐다”고 했다.

원유경 목사는 “아마도 노아는 방주를 짓는 일을 전 가정의 구성원들에게, 그들의 삶을 동참시키고 방주에 태우는 일에는 굉장히 크고 많은 갈등과 불화가 있었을 것이다. 이 설득의 과정에서 지독한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며, 가족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겠는가?”라며 “그러자, 노아는 다시 괴로움 속에서 엎드린다. 그랬더니, 창세기 6장 15절에 방주의 길이와 너비 높이에 대해 구체적인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노아는 다시 이 응답과 함께 일어났을 것이다. 또 한 번의 망치질과 톱질이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순종이 반복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위기를 만나고 괴로움과 낙심이 찾아올 때마다, 노아는 거북이처럼 웅크렸을 것이다. 거북이는 위기를 만나면 스스로 머리와 다리를 숨긴 채로 기다린다. 그러다, 다시 갈 곳을 찾으면 다리를 내어 한 걸음 움직인다. 거북이가 웅크리는 것은 결코 포기와 후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며 “이것은 다음 걸음과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고민의 과정으로, 자신만의 정확한 프로세스를 찾는 것이다. 거북이의 궤적은 언제나 정리된 의도와 방향성을 가진다. 노아는 120년의 세월을 거북이처럼 순종하며 단 한 걸음도 이탈하지 않고, 이 과정에서 요구된 모든 것을 전부 준행한다. 성경은 노아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다 준행했다'고 말한다”고 했다.

원 목사는 “마음이 좀 흔들리고, 괴로울 때, 두려울 때, 낙심될 때, 도망가면 안 된다. 하나님의 약속이 선명하고, 확실하게 다음 걸음을 지시하실 때까지 웅크리고 엎드려야 한다. 약속의 추상성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 응답의 구체성으로 현실의 문제를 이기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완성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한다. 지금 하나님께 느끼는 감정에 너무 도취돼서 믿음의 완주를 모두 이룬 것 마냥 생각한다. 마치 ‘믿음에는 의심이 없고, 사랑에는 위기가 없고, 소망에는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며, ‘한 걸음으로 천리를 가려’고 한다. 그런데, 한 걸음, 한 걸음 우리의 모든 궤적이 순종의 걸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모르겠으면 멈춰서 물어야 한다. 묻지도 않으면서 몰라서 않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안들린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이런 비겁한 변명이 어디있는가? 기도는 들릴 때 까지 하는 것”이라며 “하늘이 열릴 때까지 두드리는 것이다. 찾을 때까지 구하는 것이다. 노아의 120년의 순종은, 그 자체로 120번의 엎드림을 말해준다. 이것은 매일의 엎드림이다. 2024년, 반복되는 엎드림으로 순종을 완성해야 한다. 그럴 때 다음 걸음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가 있으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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