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3. 견인 교리의 두 가지 은혜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이제 마지막으로 성도의 견인 교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뚜렷하고 명백한 두 가지 은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① 성도의 견인 교리가 주는 가장 첫째 은혜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십니다. 영원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아버지는 나를 낳으시고, 좋은 것으로 먹이시고 기르시고,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언제나 주님과 교제를 나누도록 모든 사랑의 은혜를 선물해 주십니다. 아버지의 이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 것인지, 이 사랑은 영원토록 불변하시는 이 사랑으로 참된 신자는 어느 순간에도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거나 상실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떨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소개한 스바냐 선지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한 번도 나를 떠나시지 않으십니다. 큰소리 내며 시끄럽게 계시며 사랑한다고 입술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의 심령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는 일을 정말로 기뻐하시는 우리 아버지십니다.

요한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게 하셨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다,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요일 3:1)

세상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받는 자에 합당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서로 사랑하는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무엇보다 주님이 주신 계명대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3~24)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2~3)

정리하면 성도의 견인교리를 통해 얻은 구원의 확신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명 즉,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 놀라운 견인의 은혜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② 두 번째 견인이 주는 은혜는 ‘순종의 은혜’입니다.

다시 말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은 믿음으로 순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확신이 없는데 무슨 수로 믿고 따르겠습니까? 확신이 없는데 투자하고 사업하고 중대한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까? 확고한 확신을 가진 사람이 결단하고 실천하고 행동합니다. 이것이 진짜 순종하는 사람의 참된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모든 것들만을 생각하고, 그리고 명령하시는 모든 것들을 행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순종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는 언제든지 하나님을 의심하고 믿음을 버릴 것입니다. 만약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이 순종하지 못했다면 그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믿음의 핵심입니다. 순종하는 이는 믿음을 가진 자이고 순종하지 않는 자는 거짓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지근 당신의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믿어짐과 동시에 이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순종의 마음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분명히 믿음의 사람입니다.

존 오웬은 <성도의 견인>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순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내적인 순종이고 하나는 외적인 순종입니다. 내적인 순종은 믿음으로 순종을 결심하는 것입니다. 외적인 순종은 의무감으로 행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으로만 믿고 따른다 해 놓고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내적인 순종, 즉 입으로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진짜 순종은 참 믿음과 행함이 결합된 것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참 순종은 지속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참 믿음은 지속적인 순종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성실한 믿음의 일꾼을 보시고 보상하십니다. 하나님은 성실한 자의 믿음과 순종에 기뻐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또 이러한 믿음과 순종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신다고 하십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혀서 터가 굳어져서”(엡 3:17)

예수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요 15: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믿음과 순종하는 자의 가운데에 주님이 계시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최고의 선물을 이미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담대하다는 것은 불안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생사복락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기에 그 어떤 환경에 처한다 해도, 그 어떤 일이 내게 닥치고 발생한다 해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음을 믿고 아신다면 당신의 인생은 이미 복에 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견인 교리를 통해 우리가 획득하는 두 가지 은혜의 선물은 하나님의 사랑을 매순간 느끼고 체험하는 일과 믿음으로 순종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영원히 보장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시면서 견인 교리를 확신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4. 결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견인 교리가 왜 우리 신앙생활에서 중요하고 필요한 것인가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인식하고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유익한 교리를 통해 여러분의 신앙이 살찌워지게 될 것을 간구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당부하는 것은 우리 신앙과 삶을 방해하는 대적에게 미혹당하지 않도록 늘 자신을 경성하고 깨어 기도하며 늘 말씀 안에 거하도록 생활 습관을 거룩한 습관으로 바꾸어 주기를 간청합니다. 모든 신자는 고후 7:1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혹자는 “우리는 더 이상 정죄가 아니라 은혜 아래에 있으므로 계속해서 죄를 지어도 무방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을 향해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그럴 수 없느니라”(롬 6:2)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은혜 아래에 있음으로 오히려 더욱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은 성도이기에 더욱 땀을 흘리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먼저 사랑하시고 믿음으로 순종하도록 이끄시는 목적입니다.

무엇보다 모든 육의 소욕을 차단하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바울은 심지어 육에 대해 “죽으라고 강요하다시피 강권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롬 8:13)

그러나 많은 사람이 육의 소욕을 죽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죄를 억제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노력으로는 죄를 완전히 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의 소욕을 죽이기 위해 우리는 철저히 성령님께 간구하고 의존해야 합니다. 성령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성령님께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성령님 함께 생각하고 판단하고 일하고 동행하고 자고 일어나는 습관을 길러 보세요. 당신 마음 가운데에 계신 주님의 뜻이 환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당신을 얼마나 하나님이 사랑하고 계신가를 확실히 알고 느끼고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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