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1972년 6월 8일, 베트남 사이공 인근 트랑 방(Trang Bang) 마을. 당시 이곳에서는 베트콩 ‘해방전선’ 병사들과 베트남 정부군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정부군은 중화기로 마을을 포격했고 베트공은 이에 처절하게 저항했다. 치열한 베트남 전쟁 속에서도 나름 평화롭게 지내던 이곳 주민들은 겁에 질려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 있었다. 그러나 살벌한 전투가 거듭되자 정부군은 미군에 이 마을을 포격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공군기 조종사 존 플러머(John Plummer)는 공습지원군을 맡고 있었다. 존은 트랑방 마을에 공습 작전 지시를 받았다. 당시 민간인이 모두 대피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고온의 화염을 내는 네이팜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존 플러머는 마을이 초토화되는 것을 본 뒤 작전 성공을 예감했다. 그리곤 자랑스럽게 본대로 복귀했다.

하지만 존은 우연히 미군 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트랑 방 마을에는 몇몇의 아이들이 탑 안에 숨어있었고, 폭탄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고 탑에서 나와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몸에 불꽃이 튀었고 한 소녀는 불이 붙은 옷을 벗고 맨몸으로 뛰었다. 그 사진은 1972년 AP통신 사진기자 닉 우트가 찍은 것으로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세계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진이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존 플러머를 깊은 악몽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1973년 퇴역한 존 플러머는 24년째 절망감을 안고 술에 빠져 살고 있었다. 그는 매일 밤 알몸으로 울부짖으며 겁에 질려 울면서 길거리를 뛰어가는 9살의 어린 소녀의 사진을 꺼내 보며 괴로워했다.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지 못했던 그는 결국 부인과 이혼까지 하게 됐다.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미치광이로 변해가는 그를 동료들은 보기 힘들었다. 당시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고 명령을 내린 작전본부의 잘못이라고 위로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자기로 인해 지옥 같은 참담함을 경험한 소녀를 찾아가 용서를 빌어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소녀를 찾을 방도가 없었다. 그러던 중 두 번째 부인을 만나 신학공부를 시작하면서 다소나마 마음의 병을 다스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가슴 속에는 돌덩어리 하나가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용서를 구하고 싶어도 진정한 용서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1996년, 존 플러머는 우연히 베트남전 재향군인의 날 기념식 개최 소식을 접하고 워싱턴으로 갔고, 우연히 단상 위에서 연설하던 한 여자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폭탄을 떨어뜨린 그 조종사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지나간 역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앞으로 계속 선한 일을 하기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누가 있었겠는가? 바로 그 조종사가 앉아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해를 끼친 그 조종사가 용서받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썼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천신만고 끝에 그녀를 만난 존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그녀에게 사죄했다. 그녀의 이름은 킴 푹(Kim Phuc)이었다. 킴 푹은 온몸에 화상을 입었고, 성장해서는 선동에 이용되기도 했다. 때문에 캐나다로 망명했고, 세월이 흘러 이 기념식에 초청받았던 것이다. 존 플러머는 킴 푹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말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그를 본 킴 푹은 팔을 벌려 그를 안아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이미 용서했어요.”

그녀는 전 세계를 다니며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성실한 기독교인으로 거듭난 상태였다. 존은 그날 저녁 호텔에서 킴 푹을 다시 만났다. 용서를 재확인한 존 플러머와 킴 푹 두 사람은 식탁에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존은 이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어떻게 이날의 짧은 만남이 지난 24년간의 악몽을 깨끗하게 지워버릴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받은 용서는 선물이었다.”

킴 푹 역시 17번의 수술 끝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그의 저서 『용서와 화해』에서 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존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으며, 자신의 삶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용서를 구했고, 나는 그를 용서했다. 그 역시 나와 같은 희생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용서’라는 선물을 받은 존 플러머는 비로소 마음의 무거운 죄책감을 내려놓고 자유롭고 평온한 마음으로 감리교 목사가 되어 주님의 교회를 열심히 섬기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이게 바로 ‘용서의 힘’이다.

기독교인이 된 후 아들을 납치해서 살해한 범인을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아가 면회를 신청한 한 여인이 있었다. <밀양> 영화에 나오는 죽은 아이 엄마 신애(전도연 분)다. 교도소에서 면회를 한 그 자리에서 그녀는 망연자실하고 만다. 그녀 생각에 살인범이 교도소에서 많은 고통을 받고 살 것이며, 그런 사람 불쌍히 여겨 용서해 주려고 왔는데, 이 납치범도 그만 교도소에서 하나님을 믿고 새 삶을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납치범은 “이렇게 죄 많은 저를 주님이 용서해주셨다”고 하며, “당신을 위해 매일 축복하고 있습니다”라며 신애가 신앙인이 된 것을 감사한다는 말을 한다. 그 말에 신애는 충격을 받는다. 그때부터 그녀는 하나님께 대항한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친다. “어떻게 용서를 해요, 하나님이 벌써 용서하셨다는데… 내가 어떻게 용서를 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내가 용서를 해야지,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를 해요.”

용서하러 갔다가 도리어 시험에 들어버린 이 여인은 방황을 거듭하다 마침내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다.

기독교를 고발하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헛다리 짚었다. 기독교의 복음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용서받았어도, 해를 입힌 당사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용서를 구해야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다. 존 플러머 목사처럼 말이다.

오늘 불신 세계로부터 ‘개독교인’ 소리 듣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혹시 용서에 인색하거나 회개에 결핍된 모습이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반성해보면 좋겠다.

상대방이 그 어떤 중한 죄를 범했어도 그리스도처럼 무한 용서의 마음으로 대하며, 상대방에 대해서 내가 저지른 죄악에 대해선 처절하게 용서를 구하는 겸허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차별화된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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