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린 소중한 가치들

이명진(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공동대표,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이명진(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공동대표,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 풍요만이 아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 탄생의 경이로움, 가정을 지키는 헌신, 정직과 성실, 그리고 타인을 향한 배려와 존경 같은 가치들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숨 쉬게 하는 산소와 같다. 이러한 가치들이 선순환될 때 비로소 공동체는 풍성하고 아름다워진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은 사뭇 다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효율'과 '편의'라는 이름 아래, 지켜내야 할 고귀한 가치들을 '귀찮고 번거로운 것'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욕망과 이기심이 그 자리를 꿰찼고, 무례함과 변절이 능력으로 포장되는 시대가 되었다. 가치 혼란과 가치 훼손의 혼란 속에서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우리는 진정 후손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준비를 하고 있는가?"

생명의 가치: 인권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권 파괴

모든 가치 중 으뜸은 단연 '생명권'이다. 진정한 인권이란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는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인권을 파괴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입법 공백을 틈타 태중의 아이를 '처리'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갓난아이가 유기된 소식을 접할 때 아이를 버린 무책임한 행동에 공분을 일으킨다. 자신의 몸속에서 자라는 아이를 죽이는 일 역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태아에게 전가 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태아가 보호받고 자라는 어머니의 몸을 무덤으로 만드는 비극이다. 인간에게 죄 없는 사람을 죽일 권리가 없다. 먹는 낙태약을 허용하자는 주장은 생명을 너무도 가볍게 여기는 비정한 생각이다.

생명을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유용성의 잣대로 판단하게 되면 비극이 시작된다. 우수한 자는 남고 부족한 자는 제거되어야 한다는 발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인류가 겪었던 끔찍한 우생학의 망령과 다를 바 없다.

평생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의무를 다한 국민이 병들고 힘이 없어졌다고 해서 고통을 덜어주자는 구실로 '의사조력자살'법을 만들려고 한다. 의사가 자살을 도와주는 살인 동조 행위을 ‘조력 존엄사’라는 언어로 포장하여 연약한 국민을 죽음으로 내몰려 하고 있다.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죽음을 돕는 법이 아니라, 끝까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보호해 주는 법과 제도다.

키우기 힘들어서, 혹은 병석에 누워있는 것이 가엽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생명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인권이 아니라 책임 회피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가장 연약한 생명에게 전가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수정된 순간부터 자연사하는 날까지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고 도와주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책무이자 지켜내야 할 가치다.

정치적 신의와 품격: 이름은 남기되 추함은 남기지 마라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다워야 그 삶 전체가 비로소 완성된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함을 넘어 깊은 자괴감을 준다.

자신이 몸담았던 정당의 철학과 추구하는 가치를 하루아침에 내팽개치고, 어제의 적을 위해 앞장서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대중에게 '모래알처럼 망가지는 인간상'을 보여준다. 보수정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분도 있고 고위 당직을 맡았던 이도 있다. 평소 보수주의 가치를 외치던 이들이 공천이라는 눈앞의 이익이나 개인적 원한 때문에 반대 진영의 기수가 되는 모습은 미성숙함을 넘어 추하기까지 하다.

신의와 정치적 소신을 스스로 해체해 버린 이들에게서 후손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변절과 이기주의는 자신의 가치를 내다 버리는 일이다. 가만히 있으면 차라리 나을 텐데, 구차한 그들의 행보는 남아있던 좋은 기억마저 앗아가 버린다.

국정감사와 무례의 시대: 돼지에게 준 진주 목걸이

국정감사는 국민을 대신해 권력을 감시하는 신성한 자리다. 하지만 최근의 국정감사장은 격조 높은 비판 대신 고성과 삿대질, 억지와 무례가 판치는 '3류 코미디'의 무대로 전락했다.

법조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갖추지 못한 이가 위원장석에 앉아 고래고래 악을 쓰는 장면은 우리 정치 수준이 여전히 개발도상국에 머물러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사람에게는 그 격에 맞는 교양과 매너가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이라는 막중한 권력을 가졌음에도 걸맞은 품격을 유지하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 마치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생각난다. 그들의 무지하고 무례한 언행을 본 미래 세대가 과연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범죄를 덮기 위해 불러낸 증언들이 오히려 스스로에게 불리한 스모킹건이 되어 돌아오는 장면은 보게 된 것이다. 손가락으로 태양을 가린다고 가려지지 않듯이, 진실은 억지와 힘의 논리로 가릴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자기 발등에 도끼를 찍는 막장 연출은 기록으로 남아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전해질 것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 대한민국이라는 창을 닦아야 할 때

심리학에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다. 유리창이 깨진 건물을 방치하면 그 주변으로 쓰레기가 모여들고 결국 범죄의 온상이 된다는 이론이다. 반면 깨끗하게 닦인 문 앞에는 누구도 쉽게 쓰레기를 버리지 못한다.

가치를 파괴하는 몰상식과 입법 독재라는 '깨진 유리창'이 국격을 위협하고 있다. 품격 있는 사람 옆에서는 나도 모르게 행동을 조심하게 되듯, 사회 지도층이 교양과 품위를 보여줄 때 공동체 전체의 격이 올라간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다. 지금의 권력이 영원할 것 같아도 억지와 코미디로 점철된 행태는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기 마련이다. 국민의 마음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그들의 악취와 불쾌함이 남아있다.

아름다운 뒷모습을 준비하는 5월

매년 5월은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부부의 날(21일)이 모여 있는 '가정의 달'이다. 가정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이자 가치가 싹트는 토양이다. 생명의 소중함, 성실한 땀방울, 흔들리지 않는 신의, 그리고 타인을 향한 배려와 이타심은 가정에서부터 배우고 된다.

사회와 국가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가정이 제 역할을 하도록 지켜져야 한다. 생명이 지켜져야 가정이 지켜진다. 사회가 상식과 정의로 굴러가야 가정에서 바른 가치관을 가르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늙고,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억을 남겼느냐"이다.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이름, 존경과 자부심을 줄 수 있는 유산을 물려주어야 한다. 사람은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가치를 지키고 품격이 있는 사람은 곱게 늙어간다. 5월의 따스한 햇살 아래,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들이 다시금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이명진(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공동대표,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