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과 경찰이 도심 한복판에서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치안이 불안한 남미의 어느 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18일 주일 한낮에 대구 중구 반월당 네거리 대중교통 전용지구에서 일어난 해괴한 사건이다.

발단은 이랬다. 퀴어(성소수자)축제 측이 무대 설치를 위한 차량 진입을 시도하자 현장에 나와 있던 홍준표 대구시장을 비롯한 시청 공무원 500여 명이 저지하고 나섰다. 허가받지 않은 불법 도로 점거시위라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놀라운 건 현장에 투입된 1,500여 명의 경찰이 퀴어축제 주최측이 아닌 이를 막으려는 공무원들을 힘으로 밀어냈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공무원이 다치고 고통을 호소해 향후 법적 책임을 둘러싼 양측의 공방이 가열될 전망이다.

대구시는 “퍼레이드를 하려면 집회신고뿐 아니라 별도의 도로점용 신고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사전에 허가 없이 도로를 점거할 경우 행정 집행을 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음에도 행사를 강행해 부득이 저지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대구경찰청은 “지난 10여 년간 도로점용 퍼레이드가 허용됐는데 올해만 막을 순 없다”며 거꾸로 대구시에 책임을 돌리는 모습이다.

문제는 경찰이 공무원들의 정당한 행정 집행을 힘으로 밀어내고 그 과정에서 공무원 여러 명이 다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는 데 있다. 홍 시장은 현장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경찰이 불법 도로점거 시위를 보호하기 위해 공무원들을 밀치고 버스 통행권을 제한했다”며 “대구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경찰이 불법 시위자를 힘으로 밀어내도 과도한 법 집행이라며 여론의 지탄을 받는 세상인데 그 대상이 공무원이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성소수자 축제를 둘러싼 갈등이 대구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자체와 관할 경찰이 서로 다른 입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과 경찰 사이에서 부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심한 충돌이 발생했다는 자체가 놀랍다.

이번 사태는 그동안 잠재돼 온 해묵은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와 마침내 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2009년부터 시작된 대구퀴어축제 행사는 서울 퀴어축제와 마찬가지로 해마다 갈등과 충돌을 반복해 왔다. 축제에 참가한 성소수자들이 노출이 심한 복장으로 대낮에 도심 한가운데서 음란한 행위를 연출하는 걸 반길 시민이 얼마나 되겠나.

지난 2018년엔 대구 동성로에서 퀴어축제 측과 반대 측이 충돌하면서 법정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결국, 그 이듬해 퀴어축제 행사 장소가 대중교통전용지구로 변경됐지만 성소수자 축제를 둘러싼 갈등과 충돌은 해마다 눈덩이처럼 커져 갔다. 지역 기독교계뿐 아니라 시민들까지 나서 항의하는데 행정관청이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이 갈등을 증폭시킨 측면이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잠시 주춤했던 대구 퀴어축제가 올해 도심 한복판에서 대규모로 열리게 되면서 갈등과 충돌이 어느 정도 예상됐다. 더구나 퀴어 반대 측이 대구지법에 낸 대구퀴어행사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서 갈등을 부채질한 점도 있다.

퀴어축제 측은 자신들의 행사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경찰도 그동안 허용돼 온 도로점거 집회를 갑자기 막을 명분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어디까지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자유다. 대구시가 주최 측의 도로 사용을 허가받지 않은 ‘불법 점용’으로 규정했는데 경찰이 되려 주최 측을 두둔하고 나선 건 법적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런데 대구시와 경찰이 충돌을 빚은 근본 문제는 법 적용의 문제가 아닌 ‘공공성’에 있다. 퀴어축제를 시민을 위한 공공성이 있는 집회로 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홍 시장은 15일 SNS에 올린 글에서 “1%도 안 되는 성소수자의 권익만 중요하고 99% 성다수자의 권익은 중요하지 않나”라고 했다. 한 마디로 퀴어축제를 공공성 집회로 볼 수 없다는 뜻이다.

퀴어축제를 둘러싼 갈등과 충돌이 오는 1일로 예정된 서울 퀴어축제에서 재연될지는 미지수다. 서울의 경우 서울시가 서울광장 개최를 불허하면서 장소가 을지로 일대로 바뀌었으나 ‘거룩한 방파제 통합국민대회’ 등 대규모 동성애 반대 집회가 인근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자칫 충돌하는 상황으로 번질 수도 있다.

‘성소수자’라는 말은 말 그대로 동성애자가 우리 사회에 소수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소수가 모든 걸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성소수자들이 스스로를 사회적 약자라 보호받을 대상이라 외치는 것과 자기들이 하는 모든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더구나 타인에게 혐오를 주는 행위를 버젓이 하면서 우릴 혐오하지 말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이들이 이미 사회적 약자가 아닌 강자의 위치에 서 있다는 증거다. 공권력의 호위까지 받으며 버젓이 법을 비웃는 자들의 ‘약자 코스프레’를 봐야 하는 자체가 인권 역 침해가 아닌가. 우리 사회의 공공성과 건전성을 해치는 이런 무질서와 방종에 우리 사회가 ‘NO’라고 분명히 외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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