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 목사
이태희 목사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의 권세와 능력이 다른 그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고 동등됨을 받을 수 없는 존재다. 가장 높은 분이라는 이야기는 다른 모든 것 위에서 그 모든 것을 지배하고 다스리시는 존재라는 의미다. 즉 우리 하나님은 왕이다.

그러므로 거룩은 “왕의 위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가장 높은 권세, 가장 높은 능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왕의 위엄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말씀, 아니 명령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왕의 위엄을 알고 그 위엄 안에 거하라. 그 위엄을 누리라.”는 명령이다. 어떻게? 그것이 바로 예배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위엄을 예배할 때 우리는 그 하나님의 위엄 안에 거하게 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 40:31)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이란 무엇일까? 여호와를 바라는 것이다. 여호와를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것이다. 더 높여 드리는 것이다. 상황보다 더 높여 드리는 것이다. 바다보다, 태풍보다, 뇌종양보다, 암보다, 하나님을 더 높여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다.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는 일만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피곤할 때 곤고할 때…

예배는 생명을 걸고 드려야 한다. 우리가 생명을 걸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는 예배에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일에 우리의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예배다. 왜냐하면 거기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사자굴을 이기는 다니엘… 할렐루야!!!!! 이와 같은 예배자들만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고, 그 거룩하심을 앙망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권세와 능력을 누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될 것이다.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눅 5:11)

예배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미친 짓이 아니다. 다른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예배를 포기하는 게 미친 짓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때 예배자를 함께 받으신다. 예배를 거부하실 때 예배자를 함께 거부하신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창 4:4-5)

살기 위해 예배하는 사람은 죽을 것. 예배하기 위해 사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것.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예배와 예배자를 함께 받으시고 함께 거부하신다.

우리 교회는 예배하는 교회다. 기도하는 집이다. 하나님의 집에 와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다 쫓아내셨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이 교회를 거룩하고 정결하게 지켜 주실 것이다. 예배와 함께 예배자를 받으시고, 예배와 함께 예배자를 거부하신다. 이 분이 바로 우리가 예배하는, 이 교회의 주인되신 거룩하신 하나님이다. 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예배하는 예배자가 가득한 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끝)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담임, 윌버포스 크리스천 스쿨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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