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수 교수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찬양과 예배학과 교수)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를 통해 우리는 초대교회 예배가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예배의 대부분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습니다. 성만찬(고전 11:33), 치유(고전 12:9, 28), 예언과 가르침(고전 12:10, 14:6, 26), 침례(세례)(고전 14:13-14, 22-25), 기도(고전(14:15), 함께 부르는 찬송과 노래(고전 14:15, 26), 엎드리는 행위(고전 14:25), 사도신경(고전 15:3-8), 헌금(고전 16:1-2), 사랑과 교제(고전 16:20, 고후 13:12), 재림(고전 16:22) 등입니다.

예배는 각 교회가 속한 지역의 특수한 문화가 반영됩니다. 언어가 없으면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이 세상의 가치들 그리고 세상의 조직들과도 관계를 맺습니다. 이 땅의 문화를 완전히 무시하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거룩한 성도로서 어떻게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문화를 활용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거룩한 예배자로 이 세상에 물들지 않게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을까요?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부터 이 문제로 씨름합니다. 그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고전 1:2)라고 쓰고 있지만, 고린도전서를 쓰게 된 계기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거룩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아직 믿음이 성숙하지 않았기에 자신들의 종교적 경험과 자기중심적인 개인주의 그리고 사회적 우월의식, 개인의 자유 등 세속적인 가치들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자신들의 문화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도록 강하게 권고합니다(고전 1:17-18)

그리스도 중심의 삶의 태도는 개인적 영적 체험이 아닌 진리를(고전 1-2장), 개인의 이득이 아닌 공동체의 성장을(고전 4장), 사회적 우월의식이 아닌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배려를(고전 8-11장) 그리고 자기중심적 자유가 아닌 스스로 성장하는 사랑으로(고전 8-10장, 13장) 드러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 때 거룩한 성도의 삶으로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방언 등과 같은 개인 은사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지만, 대부분은 공동체 예배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고전 14:18-19). 그는 자기 문제에만 빠져 있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깨워 서로를 위한 그리고 교회 전체의 변화를 위한 사랑을 강조합니다. 사랑 장이라 불리는 13장이 고린도전서에 가장 중심에 있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섬길 때 비로소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습니다. 사랑만이 우리의 예배와 예배 공동체에 영원한 가치를 부여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처럼 나 자신만의 예배를 드리는 건 아닌지 우리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마음에 감동이 없으면 교회 공동체의 가치를 너무 쉽게 폄훼하게 됩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믿음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를 더 견고하게 하고 하나가 되어 예배하는 참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고린도전서에 따르면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성령이 거하는 곳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그러므로 교회를 귀하게 여기고 교회가 더욱 견고하게 세워질 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기뻐하십니다. 한편 바울은 교회뿐 아니라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 신이라면 당연히 거룩한 성전에 거한다는 이교도들의 속설과는 반대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 각자 안에 거하신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해진 거룩한 장소에서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곳곳에서, 심지어 영적인 것과 상관없는 내 몸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의 찬양과 동일하게 일상의 삶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십니다(고전 8:6).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예배가 어떤 모양이어야 하며 어떻게 드려져야 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초대 교회의 예배는 성만찬을 기념하는 것과 성령의 은사, 즉 예언과 방언, 방언 통역과 함께하는 시와 찬미로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에 대한 문제를 통해 성만찬에 대한 기본 이해를 확립시켰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공동체 참여가 중요하며 각자 개인의 행동도 함께 믿는 성도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만찬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하나됨에 대한 강력한 상징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이 본질을 알지 못했습니다. 일부 성도들은 개인적인 식사로 생각해 지나치게 먹고 마셨으며, 반면 다른 이들은 배고픈 채로 돌아갔습니다. 우리가 빵과 잔을 나누는 것은 함께 예배 드리는 성도들의 필요를 기억하며 주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성찬의 본질은 기념과 감사와 교제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감사와 교제가 사라지고 기념만 남았으며 이로 인해 성찬은 역동성이 사라지고 의식만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기쁨의 예배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성찬의 성경적 본질 회복이 시급합니다.

바울은 예배 공동체의 하나됨을 강조하면서, 성령의 은사에 대해 설명합니다(고전 12-14장). 그리스도인들은 각각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지만 몸은 하나이므로 각 지체의 은사는 모두 소중합니다. 그러나 은사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 지체들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가장 큰 핵심입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를 통해 몇 가지 예배의 통찰을 얻습니다. 첫째, 예배는 믿는 자들을 하나가 되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

둘째, 예배 공동체는 죄를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전 5:8)

셋째, 우리는 믿음이 약한 그리스도인 지체들을 잘 섬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 8:13)

넷째, 주님의 식탁에 나아갈 때 우리의 마음은 순결해야 합니다.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 11:29)

다섯째, 하나님이 주신 영적 은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교회 공동체를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여섯째, 사랑만이 우리의 예배를 의미 있게 합니다(고전 13:1-3).

일곱째, 예배는 언제나 적절하고 질서 있게 드려져야 합니다.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

한편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권위를 깎아내리려는 가짜 사도들에 의해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마케도니아에 있는 동안 디도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뉘우치고 있으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는 매우 감성적이며 자전적인 편지로 그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했으며 고린도 교회에 대한 염려와 기쁨을 동시에 보여 줍니다. 그는 자신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한 일에 대해 그들을 꾸짖었으나 회개한 일에 대해서는 칭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자신이 복음을 위해 받은 시련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권위와 사명을 강하게 이야기했습니다(고후 1:3-4).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부 사도의 무리들이 고린도 교회에 들어왔습니다(고후 11장). 그들은 능력 있고 언변이 좋은 사람들로 성도들을 현혹했으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 아닌 비현실적인 유토피아를 추구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죽음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견고히 세워져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날 때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게 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하지만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해도 인간의 연약함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고후 11-12장). 그러므로 우리는 여전히 육신 안에서 씨름하고 있지만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사모해야 합니다(고후 5:2). 역설적으로 우리는 연약함 가운데 있을 때 오히려 그리스도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고통을 멈추게 해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고난 중에 우리를 만나주시고 긍휼을 베푸시고 위로를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간증을 통해 우리가 역경 속에 있을 때 오히려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고후 3:18). 우리는 지금 주의 영광에 잠시 참여할 뿐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가 점점 더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도록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고난을 사용하셔서 언젠가 받게 될 영원한 영광을 위해 우리를 준비 시키십니다(고후 4:17).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앞날을 기대하며 지금의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우리의 시선은 자신의 모습이나 현재의 고난으로부터 벗어납니다. 온전히 예배할 때 우리의 시선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성자 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도하며 변화시키시는 성령 하나님께 맞추게 됩니다(고후 2:14).

고린도후서는 우리에게 예배에 대한 몇 가지 통찰을 알려줍니다. 첫째, 겉보기에 멋진 사역을 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신실한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고후 5:12)

둘째, 예배는 건물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6)

셋째, 우리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고후 9:13)

넷째, 예배 드릴 때 우리는 창세 전부터 영원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1647년 영국에서 기록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은 영광 받기에 합당하실 뿐 아니라, 그분의 본성과 행위가 영광으로 드러나며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고후 3:18).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강함이 아니라 연약함을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우리의 영원한 영광은 잠시 지나가는 고난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그러므로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하며(고후 5:12-13), 모든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고후 6:8).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찬양과 예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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