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나면서 장로교 주요 교단이 일제히 총회 개막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19~22일 주다산교회에서 제107회 총회를 개회하는 예장 합동을 필두로 예장 통합, 기장, 고신, 백석 등이 길게는 3박 4일, 짧게는 1박 2일간의 일정으로 총회를 열어 새 집행부를 구성하고 새로운 회기를 출범한다.

올해 장로교 총회는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지난 3년간 제대로 된 총회를 열지 못한 교단들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3년 전 강화된 ‘거리두기’로 일정을 한나절 또는 반나절로 단축하는 바람에 집행부만 구성하고 서둘러 폐회해야 했던 데 비하면 점점 나아지긴 했으나 사실상 모든 굴레를 벗은 건 올해가 처음이어서 총회 일정을 어떻게 알차게 채우느냐가 관건이다.

거의 모든 교단이 총회를 연 첫날을 총회장과 부총회장 등 임원진을 구성하는데 할애한다. 그건 새 집행부가 구성돼야 새 회기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제는 누가 교단의 수장이 되느냐 하는 선거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는 관행이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데 있다.

한국 장로교 중에 교세가 가장 큰 합동측은 총회 개회 전 부총회장 후보 등록과정에서부터 잡음이 일었다. 금권선거의 폐단을 막기 위해 오랫동안 실시해 온 ‘제비뽑기’에 대해 실패를 자인하고 절충형 선거제도를 채택해 오고 있으나 선거제도를 뜯어고치는 안이 이번 총회에 또 올라온 걸 보면 선거 자체에 얼마나 골몰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사정이 좀 다르지만 통합측도 선거문제로 고민이 많다. 34년간 시행해 온 ‘지역안배제’를 다시 허물고 후보등록을 전국 권역으로 확대하는 선거제도 개선안이 이번 총회에 상정된 것만 봐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통합 측 총회가 1988년 제73회 총회에서 선거에 ‘지역안배제’를 도입한 건 무엇보다 공명정대한 선거 문화를 정착하자는 데 있었다. 그런데 30년 넘게 시행해 오는 과정에서 어떤 지역은 인물이 넘치는데 어떤 지역은 그에 못 미치는 리더십의 불균형 현상이 빚어졌다. 결국, 심화되는 인물난과 지역 편차 등으로 인해 본래대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고 있지 않나 싶다.

장로교 회의제도는 ‘대의제’에 기반하고 있다. 오늘날 대의 민주주의의 원조 격이다. 당회, 노회, 총회로 이어지는 수평적 의사소통 시스템은 스코틀랜드 장로교에서 시작돼 미국으로 건너가 꽃을 피운 후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 전파돼 뿌리를 내렸다.

그런데 ‘대의제’를 시작한 스코틀랜드나 미국 장로교에서는 거의 유례를 찾아보긴 힘든 과열 선거가 유독 한국에서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론 장로교 회의제도가 개인의 욕망 때문에 점점 변질한 데서 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장로교의 ‘대의제’는 감리교나 성공회의 ‘감독제’와는 완전히 다른 체계다. 즉 1년 직인 장로교 총회장이 4년 임기의 감독 전임제를 시행하고 있는 감리교와 종신제인 성공회와 같은 길을 갈 수는 없다. 그런데도 그 이상의 권위와 권한을 동시에 가지려 하다 보니 ‘대의제’의 근본정신까지 무너지게 된 것이다.

교계 스스로 노력한 덕분에 차츰 나아지고는 있으나 한때 교단의 임원 선거는 과열을 넘어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로 많은 문제를 낳았다. 서로 교단장이 되려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선의가 악의가 되고 공명선거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총회장에 덕망 있는 인사를 추대하던 과거의 전통이 자취를 감추게 된 게 ‘도토리 키재기’ 식 후보 난립에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그 전에 장로교의 ‘대의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부터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 특히 장로교의 정치 위기에 대한 모든 책임이 선거에 있다고 볼 순 없다. 개교회에서 목사와 장로, 원로와 담임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다 분규로 이어지고 노회와 총회 사이의 교회 권력 배분에 대한 파당적 이해관계로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 건 그만큼 본질에서 이탈했다는 증거고 선거는 그 줄기 중 하나다.

한국 장로교의 대표 격인 합동과 통합이 과거 교단 분열 시부터 지금까지 한국교회 전체에 끼친 영향에 대해 어찌 한두 마디로 규정하겠는가. 다만 두 교단이 연합사업에서 어떤 방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한국교회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기도 했고 홍역을 앓기도 한 것으로 볼 때 그 책임적 위치가 결코 가볍진 않다.

총회는 매년 돌아오지만 단 한해도 똑같진 않다. 올해는 특히 더 그렇다. 이번 장로교단 총회가 단순히 총회 회무처리 일정이 본래대로 돌아온 것에서만 의미를 찾기에는 한국교회 전체가 처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길 바란다.

장로교단들이 그동안 본질에서 벗어난 문제에 매달려온 관행을 당장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부단히 노력하고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총회는 그런 자리이자 기회다. ‘비정상’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저절로 ‘정상’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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