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
故 조용기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故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1주기 추모예배가 오는 14일(현지 시간) 오후 7시 30분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에 있는 나성순복음교회(담임 진유철 목사)에서 거행된다.

이날 예배는 한국 교회뿐 아니라 세계 기독교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배 설교는 이영규 목사(순복음세계선교회 북미총회 증경총회장)가, 추모사는 김판호 목사(북미총회 직전총회장, 베데스다대학교 총장)와 배중구 목사(나성순복음교회)가 전할 예정이다.

나성순복음교회는 "고인의 영적 유산을 기념하고, 고인이 평생 헌신한 영혼 구원과 세계 선교 사명을 잇고자 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고인을 기리며, 그의 신앙을 추모하는 모든 성도들의 참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9월 14일 소천 받은 故 조용기 목사는 1936년 2월 14일 경남 울산 울주군에서 부친 조두천 장로와 모친 김복선 권사의 5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부산공고에 입학했으며, 학교에 주둔해 있던 미군 부대에서 학교장과 미군 부대장 사이의 통역을 맡으면서 영어 실력을 키우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사망선고를 받고 병상에서 누나의 친구로부터 처음 복음을 접한 뒤 부산에서 미국 오순절교단인 '하나님의성회(Assemblies of God)' 소속 켄 타이스(Kenneth Tice) 선교사를 만나 집회 통역을 하면서 회심을 하게 됐다.

이후 폐결핵이 치유되는 신유의 경험을 하고 신학교 입학을 결심했다. 1956년 9월, 20세 때 하나님의성회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해 후에 장모이자 목회 동역자가 되는 최자실 목사와 만났다.

1958년 5월 18일 故 최자실 목사(1989년 11월 9일 소천)와 함께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천막 교회를 시작했으며, 그 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면서 조용기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위상은 국내를 넘어 세계에 알려졌다.

교회를 여의도로 이전한 뒤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져, 1979년 10만 명, 1981년에 2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1976년에는 세계교회성장기구 CGI(Church Growth International)를 설립해 세계 교회 성장의 발판을 만들었다.

특히 1970년대부터 외국의 주요 언론들이 '여의도순복음교회 성장 비결'을 소개하였고, 사회적·신앙적·행정적·기술적 요인 등 다양한 성장 요인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카리스마 넘치는 조용기 목사의 리더십이 있었다. '조용기'라는 이름은 20세기 동안 전 세계에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인이기도 했다.

조용기 목사는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하나님의성회 총재를 역임하면서 제3세계 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조 목사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을 바탕으로 '희망의 신학'을 외쳤으며, 폭발적인 교회 성장으로 1993년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교인수 70만 명을 넘어서며 세계 최대의 교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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