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유’란 단어를 33번이나 구사하며 북한과 일본을 향한 미래 구상을 밝혔다. 독립운동을 ‘끊임없는 자유 추구의 과정’으로 정의하며 이제는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할 때라고 강조했다.

우선 윤 대통령이 북한에 제안한 ‘담대한 구상’이 시선을 끈다.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과 발전 및 송배전 인프라 지원, 국제교역을 위한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 프로젝트 지원, 국제투자 및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모든 구상의 전제는 북한의 ‘비핵화’다.

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개한 대북 구상은 지난 5월 취임식에서 밝힌 “북한의 비핵화에 상응하는 담대한 계획”을 처음으로 구체화했다는데 의미를 둘 수 있다. 방점은 역시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에 있다. 그러면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경제를 일으켜 주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명박 정부 때도 이와 비슷한 대북 제안을 했었다. ‘비핵개방 3000’이라는 이름의 대북 제안은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면 주민 소득 3천 달러 달성을 돕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면”이 이명박 정부 대북 지원의 출발점이었다면 이번 윤 대통령의 대북 구상은 “비핵화 단계별 지원”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비핵화가 완결되기 전 협상 단계부터 대북 지원을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정부가 윤 대통령의 대북 제안에 ‘과감한’, ‘담대한’이란 수식어를 붙인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비핵화 초기 협상 과정에서부터 경제 지원 조치를 적극 강구한다면 북한으로서도 절대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문제는 늘 그렇듯이 북한의 태도에 달려있다. 새 정부 들어 더욱 강경 일변도로 나오고 있는 북한이 이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북한 김여정은 지난 10일, 전국비상방역총회의에서 “남조선 당국 것들을 박멸하겠다”는 망언을 쏟아냈다. 북한의 대외 매체인 통일신보도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졌던 이명박 역도의 ‘비핵개방 3000’을 적당히 손질한 것”이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실질적인 핵보유국을 자처하고 있는 북한이 새 정부의 제안에 반색하며 하루아침에 대화의 자리로 나올 것이란 기대는 지금으로선 섣부른 낙관에 가깝다. 사실 북한이 이 제안에 호응해오기 쉽지 않은 이유가 따로 있다.

윤 대통령의 이번 대북 ‘통 큰’ 제안에 군사문제와 체제 안전보장 문제는 빠졌다. 경제 지원 문제보다 군사적 신뢰 구축이나 안전 보장 조치에 더 예민한 북한으로선 이런 문제가 선결되지 않는 한 비핵화 협상에 응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ICBM 등 미사일 발사로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미국과 국제사회를 향해 존재감을 확인시키려는데 있다.

윤 대통령의 대일본 메시지에도 시선을 끄는 대목이 있다. 일본을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 지칭한 점이다. 이는 역대 정부가 8.15 경축사 때마다 주로 ‘과거사 청산’을 강조해 온 것과 확연히 구별된다.

야당 등 일각에서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직접 언급이 없었다는 것을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외교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새 정부의 의지가 엿보인다.

윤 대통령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해 한·일 관계를 빠르게 회복·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공동으로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는 오부치 일본 총리가 “과거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는 언급이 있다.

윤 정부가 새로운 방향의 메시지를 내놨다고 한일 양국의 해묵은 문제가 당장 풀리기를 기대하기엔 현실적인 난관이 너무 많다. 일본 기시다 총리는 광복절에 A급 전범의 위패가 보관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바치고 내각의 대신들이 직접 참배한 것만 봐도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일 관계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도 달라져야 하겠지만, 가해자인 일본의 진정성 있는 자세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겠는가.

특히 한국교회는 윤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 담긴 성격과 의미를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건 33번이나 반복해 외친 ‘자유’의 의미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도, 6.25 전쟁도 그 밑바탕에 ‘자유’를 향한 끝없는 갈구가 있었다. 그런 ‘자유’가 단지 일회성 선언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북 간에, 또 한일간에 얽히고 꼬인 문제들을 풀기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