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도시
 ©Dave Goudreau on Unsplash

한국복음과도시(TGC)는 최근 여성 목회자 아나 린 프레이져(M. Div and MA/EM,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의 ‘낙태 금지는 여자에게 좋은 일이다’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아나 린 프레이져는 “어느 날 영어 교수가 프레데릭 더글라스의 회고록 ‘미국 노예, 프레드릭 더글라스 삶에 관한 이야기’를 과제로 내주었다. 그 책에서 더글라스는 자기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큰 절망을 준 이들은 다름 아니라 개인적으로 노예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굳이 남부 지역 노예제도에 저항하지는 않는, 남과 북의 접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며 “그들 중에는 법을 따른다는 핑계로 탈출한 노예를 노예주에게 돌려주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추론은 이것이다: 나야 노예도 사람이라고 믿지만 내 이웃은 노예가 자기 소유물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나야 결코 노예를 소유할 일 없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내 믿음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라며 “이 말이 나를 때렸다. 노예 주인의 법적 권리를 중시한다는 핑계를 대는 노예제도 폐지론자와 내가 하나 다를 바 없었다.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낙태 찬성론자에서 낙태 반대론자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녀는 “나는 낙태 합법 판결을 뒤집은 이번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똑똑하고 사려 깊은 많은 여성이 애도하는 이유가 그 결정을 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 자신이 여자이기에 낙태가 여자에게 좋다는 생각은 매우 불쾌하다. 합법화된 낙태가 여자에게 해로운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낙태 지지자는 여자에게 가장 좋은 건 남자처럼 되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우리 사회는 사실상 남자에 의해 형성된다. 대부분의 사회 기관을 설립한 게 남자이기에 모든 관점은 다 남자 중심이다”라며 “지금까지 미국에서 일어난 모든 여성 권리 투쟁은 여자에게도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달라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런 관점은 법적 보호, 권한 부여, 노동력 접근과 관련해서는 아주 유용한 기준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성이 가진 것을 얻으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면 남자 중심으로 구조화된 사회를 더 영속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달리 말해서 여성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이 이바지하는 여성의 가치를 경시함으로써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를 형성할 수 있는 여성의 능력을 약화한다”고 했다.

또 “여자인 우리가 오로지 남자의 관점에 근거해서 무엇이 좋고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사랑스러운지를 정의할 때, 우리는 결국 본질적으로 여성적인 부분을 간과하고 평가절하하게 된다”며 “여자도 성공하려면 남자와 같아야 한다고 믿는 세상에서는 계획하지 않은 임신에 대처하는 최선의 선택은 (임신) 중단이다”라고 했다.

그녀는 “그러니까 낙태도 얼마든지 좋은 방법으로 보일 수 있다. 계획에도 없는 아빠가 되지 않으려는 남자는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는데, 왜 여자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거지? 게다가 출산을 사회적, 직업적, 경제적 희생을 감수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느끼게 만드는 세상에서, 낙태는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며 “그러나 나는 이런 수준의 사회에 만족하지 않는다. 여자가 남자와 똑같이 가치를 인정받고 성공하고 또 행복하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태어나기도 전에 죽여도 된다는 세상, 설사 낳았다고 해도 경쟁하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버려도 된다는 세상의 의견에 나는 결코 찬성할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낙태 찬성은 여성을 아기와 싸우게 만든다. 낙태 찬성자가 흔히 하는 주장의 하나가 낙태 반대자는 산모가 아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 지지자’라는 말이다”라며 “누군가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때 ‘엄마 편을 들지 아기 편을 들지 선택하라’고 낙태 찬성자들은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고는 임산부에게 너 자신 아니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삶 중에서 양자택일하라고 강요하는, 엄청난 부담을 안겨줄 뿐 아니라 잘못된 이분법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녀는 “엄마 대 아기라는 대결 구도는 엄마와 아기라는 기적적 관계를 부자연스럽게 뒤틀어 버린 비극적인 결과물이다”라며 “적대적 관계와는 거리가 먼 엄마와 아기는 피조물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유대 관계를 보여준다”고 했다.

그녀는 “임신은 결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매우 드물고 슬픈 상황을 제외하고는 결코 이 삶과 저 삶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그런 게 아니”라며 “엄마와 아기에게는 둘 다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애초에 엄마의 자궁 밖에서 살 기회조차 주지 않고 아기를 죽인다면,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불가능해진다”고 했다.

또 “남자와 하나 다를 것 없는 같은 사람으로서 제공하는 가치가 아니라 오로지 여자만이 고유하게 제공하는 가치를 인정하고, 기뻐하고, 또 존중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여자는 싸워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써나가야 한다. 그리고 여성의 권한 부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재고해야 한다. 설혹 여자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를 만나더라도 자신의 삶이 계속되려면 반드시 아기를 죽여야만 한다는 사악한 방정식이 결코 발을 붙일 수 없는 사회를 언젠가는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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