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한국 근현대사의 기독교적 이해를 위한 전제

박명수 교수
박명수 교수 ©기독일보 DB

현재 한국의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가 갖고 있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두가지이다. 하나는 내재적 발전론에 근거한 역사이해이다. 이것은 조선사회의 내적인 요소가 어떻게 근대사회로 발전해 나갔는가 하는 점이다. 이 내재적 발전론의 문제점은 근대문화의 개념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민중사관에 입각한 역사이해이다. 역사를 계급투쟁으로 보는 민중사관은 혁명을 진정한 역사의 핵심으로 보면서 투쟁사를 중심으로 역사를 전개해 나간다. 이런 역사인식의 문제점은 역사를 점진적으로 발전한다고 보는 시민형성의 과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새롭게 쓰고자 하는 기독교계 대안학교용 역사교과서는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역사교과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역사교과서는 “기독교계 대안학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어떤 역사교과서와도 차별성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가지 과제를 인식해야 한다. 하나는 역사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점과 또 다른 하나는 교과서이기 때문에 표준적인 지식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지식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이런 작업은 가능하고, 또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 폴 틸릭은 “종교는 문화의 본질이요, 문화는 종교의 형식”라고 했다. 사실 조선시대에 있어서 유교적인 성리학이 조선사회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의 핵심인 것처럼, 기독교는 서구문명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근대 서구문명은 기독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기독교는 유교보다 더 보편적인 가치체계를 지향하고 있다. 유교는 동아시아 질서에서 벗어난 적이 없지만 기독교는 유럽과 미국을 넘어서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는 유교보다 좀더 보편적인 질서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은 쉽지 않다. 현재 역사학계는 역사에서 기독교를 제외하고 있다. 역사학계는 기존의 문헌 가운데 기독교가 나오고, 그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임시헌장에 “신”이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나오고 있지만 이런 용어의 의미에 관심을 두는 학자는 별로 없다. 따라서 일반 역사 가운데서 삭제되거나 무시된 기독교의 흔적을 다시 발굴해서 복원하고, 이것을 재해석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기독교역사학계는 한국교회사를 기독교교회 안의 역사로 인식하여 선교사나 교단관련 자료들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사회에 미친 기독교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이 단지 교회만의 하나님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한국사 전체에 미친 영향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대안학교를 위한 역사교과서는 이런 두가지 작업이 진행되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즉, 한편으로는 한국 근현대사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는 작업과 이것을 대중화하는 교과서 집필작업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우리가 작성하고자 하는 교과서는 한국근현대사이다. 그러면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한다. 개항이후 진행되어온 근대사는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열매를 맺었고, 그 이후에 전개된 현대사는 대한민국의 발전에 과정인 것이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과정에서 기독교의 역할을 살펴보려고 한다. 하나의 국가가 형성되는데 있어서 그 국가를 만드는 소위 건국세력이라는 것이 있다. 고려를 지방호족과 당나라 유학파인 6두품 계층이 세웠고, 조선을 신흥사대부 세력이 세웠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서구 근대문명을 수용한 시민세력이 세웠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기독교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본 원고는 이런 것들을 전제로 하면서 기독교 대안학교 역사교과서를 집필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본 원고는 한국 근현대사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개항기, 일제시기, 대한민국 건국기, 그리고 대한민국 수호기의 4단계를 거치면서 기독교의 역할을 탐구해 보고자 한다. 1960년대 이후 발전기에 진행된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기독교의 역할은 지면과 시간의 제약으로 다음 기회로 미룬다.

I.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적 역사이해

우선 기독교가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어디에 있을까? 기독교는 서구 근대문명이 한반도에 유입되는 과정에 등장하였다. 이런 기독교의 등장은 과거 한반도에 불교나 유교가 등장했던 것 보다 더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필자는 한국사를 둘로 나눈다면 하나는 근대이전 대륙세력의 영향을 받았던 시기와 다른 하나는 근대이후 해양세력의 영향을 받고 있는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시기에서 한반도는 동양문명권에 속해 중화질서 아래있었지만 후자의 시기에는 서양의 근대문명의 영향으로 만국공법의 질서 아래 있게 되었다. 이 변화는 한반도에서 일어난 어떤 변화 보다도 더 큰 변화라고 말 할 수 있다.

한반도의 역사에 있어서 대륙문명을 어떻게 수용하였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의 역사에서 불교의 유입과 유교, 특히 성리학의 유입이 미치는 영향은 왕조의 변화보다도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불교나 유교도 다같이 중국 대륙을 통하여 들어왔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역사는 대륙문화의 영향 하에 있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근대에 들어오면서 한반도에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들어왔다. 18세기에 천주교가 들어오고, 19세기에 개신교가 들어왔다. 천주교나 개신교는 다같이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런 새로운 문화는 해양을 통하여 들어왔다. 이것은 한반도의 역사에서 전연 새로운 문화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문명의 충돌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19세기를 문명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은 19세기를 국가의 충돌로서 이해했다. 조선이라는 국가와 서양세력이라는 국가간의 갈등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국가간의 갈등보다도 더 본질적인 것은 문명간의 갈등이다. 이것은 중국 중심의 중화질서와 서양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만국공법이라는 새로운 질서 사이의 갈등이다. 그리고 이런 두 질서의 배후에는 각각 유교라는 가치체계와 기독교라는 가치체계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유교의 근본원리는 격물치지(格物致知)에 있다. 사물에는 격이 있고, 이 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예이다. 당연히 모든 국가에도 격이 있는 것이다. 이런 격에 따라 사대자소(事大字小)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중화질서이다. 사실 이것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원래 유럽도 교황이나 황제가 신으로부터 권력을 받아서 제후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이후 루터는 독일제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모든 제후는 스스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기독교인들은 평등하다는 개신교적인 만인사제설의 원리에 근거한 것이다. 이런 사상은 나중에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서 영주가 자신의 종교를 결정할 수 있다는 주권존중으로 이어졌다. 이런 영주의 종교선택권은 영국에서 1689년 관용령을 통하여 개인의 종교선택권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이런 종교의 자유는 1876년 미국의 독립선언에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천부적인 인권을 부여받는다는 개인의 자유권이 확정되는 것이다. 이제 서양에서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보편적 인권으로 확립되는 것이다. 19세기 말 한국에 들어온 서구문명은 바로 이런 새로운 인간이해에 기초한 문명인 것이다.

이같은 개신교적인 원리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근대서구문명은 서양에 중세와 구분되는 근대사회를 가져왔고, 이것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정치부분에서는 군주제 대신에 민주제가 도입되었고, 독점체재에서 시장경제를 만들었으며, 남여의 평등만이 아니라 신분과 인종의 평등을 꿈꾸게 되었으며,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여 개인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였다. 한국 근현대사는 바로 전통적인 중화질서에서 어떻게 한반도가 근대 서구질서에 편입되는가를 살펴보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런 개신교에 기초한 서구근대문명이 유럽에서 중세적인 봉건주의를 극복했던 것처럼 한국사회에서도 전근대적인 봉건체재를 극복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쓰고자 하는 대안교과서는 기존의 역사인식과는 다른 역사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한국 근현대사를 내재적 발전론의 입장에서 보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한국의 전 근대사에서는 서구문명에서 볼 수 있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 만민평등, 민주주의, 정교분리같은 새로운 문명을 보기 어렵다. 또한 막시즘적인 제국주의 비판이론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보아서는 안된다. 막시즘은 근현대사를 제국주의대 식민주의의 대립구조로 보며, 서구문명을 투쟁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서구문명은 우리가 배척해야 할 문명이 아니라 수용하고 발전시켜야 할 문명인 것이다, 따라서 한국 근현대사를 외세와의 투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오히려 서구문명의 유입으로 인해서 우리가 어떻게 변화하며 발전하였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개인이 자각을 해서 책임있는 시민이 되고, 이런 의식 가운데서 어떻게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계속)

박명수 박사(서울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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