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다섯째 주일인 지난 4월 3일, 서울 중앙성결교회 등 일부 교회가 ‘생명 주일’ 예배를 드렸다. ‘행동하는 프로라이프’와 한국로잔위원회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관한 ‘생명 주일’ 예배는 사순절 기간에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뜻에서 마련됐다.

온누리교회, 은평제일교회 등 서울 시내 일부 교회들도 지난 3월 28일부터 한 주간 ‘생명존중’ 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진행해 왔다. 이 교회들이 새벽기도회에 ‘생명존중’이란 제목을 붙이게 된 것은 대한민국의 낙태죄 입법 공백과 깊은 연관이 있다. 보호받고 축복받아야 할 태아의 생명이 함부로 죽임당하는 현실에서 무지로 저지른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생명을 지키기 위해 새롭게 결단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1953년부터 이어온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 후 태아 생명보호 입법을 통해 생명의 가치를 지키려는 목적으로 51개 단체가 모여 결성한 단체가 ‘행동하는 프로라이프’다. 이들은 세계 60여 개 국가에서 낙태 반대운동을 전개해 온 단체인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운동(40 days for life)’과 연대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사순절 기간에 ‘생명존중 주간 특별새벽기도회’와 ‘생명 주일’ 예배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 26일 군포제일교회에서는 한국교회연합 생명윤리위원회와 성누가의료재단이 공동 주관한 생명윤리 세미나가 있었다. 이날 박상은 안양 샘병원 미션원장은 주제강연에서 “‘인간의 생명은 인간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다. 모든 영역에서 이 생명의 존엄성 지켜야 한다’는 게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발표했던 생명존중선언문의 내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인간만이 낙태를 한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린다 할지라도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죽여선 안 된다는 것이 생명윤리의 기본 원칙”이라며 “가장 안전해야 할 엄마의 자궁이 위험할 수 있는 곳이 되어버린 안타까운 현실”을 개탄했다.

‘낙태’란 임신한 여성이 약물이나 기타 방법으로 태아를 죽이는 것을 말한다. 대한민국 형법은 1953년부터 ‘모자보건법’에 명시된 예외, 즉 성범죄에 따른 임신이나 근친 간 임신, 임부의 건강 등의 이류를 제외하고는 임신 중인 태아를 낙태하는 것을 죄로 규정해 왔다. 그러나 지난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이를 ‘헌법불합치’로 결정하면서 낙태는 처벌받는 위법 행위가 아닌 합법이 되고 말았다.

헌재는 당시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까지 형법의 관련 조항을 개정토록 했다. 그러나 2020년 11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그해 연말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함에 따라 2021년 1월 1일 그 효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낙태죄 관련 조항은 아무런 대체입법 없이 지금까지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낙태’를 형법에 따라 처벌하는 문제는 그동안 모성보호의 측면뿐 아니라 여성의 자기결정권 등 주로 인권 차원에서 논란이 돼 왔다. 헌재가 2019년 4월 11일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1항과 낙태 수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1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도 그런 측면이 강하다.

문제는 헌재가 인권 보호 차원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존중하면서 태아의 생명은 보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엄마 뱃속에서 생명을 잉태케 한 것은 그 생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가장 안전한 곳이 엄마 뱃속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뱃속 생명을 안전하게 지킬 의무를 저버리고 마음대로 지우는 살인 행위를 저지르도록 국가가 되려 부추기고 있으니 이런 개탄스러운 일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낙태법 효력상실이 가져온 생명 파괴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있지만 관련 법 조항을 개정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국회에 더 큰 책임이 있다. 헌재는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해당 법규가 무효화 될 때 오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국회로 하여금 2020년 12월 31일까지 관련 법 조항을 개정토록 했다. 그런데 국회가 이 의무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오늘날 대한민국이 ‘낙태 자유방임국’이 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가 입법기관으로써 제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은 낙태죄를 둘러싸고 찬반 여론이 팽팽히 맞서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나름의 이유와 변명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낙태 방임의 합리적인 사유가 될 순 없다. 대체입법 없이 효력이 상실된 낙태법으로 인해 오늘도 무수한 생명이 버림받는 데도 아무런 양심에 가책조차 없게 만든 게 바로 대한민국 국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 한교연과 일부 교회, 단체들이 사순절 기간에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운동을 시작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4월 첫 주를 ‘생명 주일’로 지키는 교회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생명 주일’은 12월 25일 성탄절을 기점으로 역으로 계산할 때 예수님이 어머니 마리아의 몸속에 잉태한 날, 즉 4월 1일 전후 주일을 정한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이 탄생일인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어머니 뱃속에서 작은 생명으로 잉태했을 때부터라고 본다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의미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주님의 고난과 죽음, 부활로 이어지는 사순절 기간에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은 바람이 한국교회에서 불기 시작한 것은 특별히 주목할 점이다. 박상은 원장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리는 자살, 낙태와 같은 생명결정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생명을 누리는 생명권”이라고 강조한 것처럼 이런 ‘생명존중’의 바람이 한국교회 울타리를 넘어 사회 곳곳으로 펴져 나가게 되기를 기대한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