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후보 공약 중 하나였던 여성가족부(여가부) 존폐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윤 당선인이 지난 13일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하지 않았느냐”며 여가부 폐지 공약을 재확인하면서부터다.

여가부 존폐 문제는 문재인 정부 들어 남녀 간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과 함께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 모두 여당에 속한 최고 권력층이 자행한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인 여성이 아닌 가해자인 집권 여당을 옹호하는 태도로 ‘여당 가족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여가부가 이처럼 여권 권력층의 잇따른 성범죄를 비호해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논란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현 여가부는 김대중 정부 들어 ‘여성부’란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고유의 업무보다는 타 부처와 중첩된 업무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있으나 마나 한 비효율적인 부처의 대명사가 돼버렸다.

물론 여가부로서는 지속적으로 이런 대접을 받는 게 억울할 수 있다. 어려운 제반 여건 속에서 나름대로 여성의 권익 증진 등 여성 정책을 기획하고 만들어낸 성과까지 무시되는 건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 또 여가부가 청소년 정책, 위기 청소년 보호·지원, 가족·다문화가족 정책, 성범죄 예방, 피해자 보호 등의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 온 점도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런 여가부가 정부 내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 있는지를 냉철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여가부가 도리어 여성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처지는 약점 그 이상이다. 존폐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스스로 떳떳하고 정당하다고 자위하지 못하는 점도 치명적인 부분이다.

여가부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물론 여당 권력층의 성 비리 비호 사례에 있지만, 이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가 내포돼 있다. 즉 ‘양성평등’을 ‘성평등’으로 뒤바꾸려는 젠더 이데올로기다. 최근 국회 개헌특위는 현행 헌법 제36조 1항의 ‘양성평등’을 삭제하고 ‘양성’을 ‘성’으로 바꾸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양성평등’과 ‘성평등’은 일반인들이 들으면 같거나 비슷한 개념으로 혼동하기 쉬우나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양성(Sex)평등’에서의 ‘양성’은 남녀라는 생물학적 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Gender)평등’에서 말하는 ‘성’은 불특정 다수의 선택적 ‘성’을 의미한다. 즉, ‘성평등’이란 사람을 남자와 여자가 아닌, 자의적으로 만들고 결정한 모든 젠더로 구분하고 인정하자는 것이다. 결국, 이는 동성애와 동성혼으로 연결된다.

여가부가 여성 권익을 대변하고 우리 사회에 남녀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서 더 나아가 동성애를 조장하는 최일선 정부 부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데는 이런 이력이 한몫을 한 셈이다. 국민과 여성단체들까지 나서 여가부 폐지에 동의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젠더 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결혼과 가족에 대한 정의마저 바꿔버릴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여가부 존폐 문제가 새 정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부각되면서 이에 대한 찬반 여론도 날로 격화되는 양상이다. 여가부 폐지를 지지하는 전국 47개 여성단체들이 모여 구성한 ‘찐(眞)여성주권행동’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의 이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여가부’가 처음 생겼을 당시에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권한에 있어서의 차별 등에서 여성의 사회적 보호와 배려,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했던 시대였으나 지금 양성평등이 뿌리내린 시대에는 오히려 남성과 여성을 서로 대립적으로 인식하는 페미니즘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문재인 정부 들어서 더욱 노골적으로 페미니즘에 편향된 정책들을 만들어서 온 나라의 공공기관과 기업, 학교에까지 강요해 온 주체가 바로 여가부”라며 “여가부가 여성의 삶을 더욱 평등하게 발전시키고자 했던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고 국민이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현 정부와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적인 여성단체들은 새 정부가 여가부를 폐지하면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심지어 ‘애 낳아주지 말자’는 출산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의 반발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의 투쟁 방향은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반대하는 한 정부 부처 개편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여가부 폐지 문제는 윤 당선인이 후보시절 공약으로 줄곧 내세운 데다 당선인 신분으로 또 다시 공식 언급함에 따라 대통령직 인수위가 심도 있게 논의해 그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여성 정책, 청소년 정책, 가족 정책 등으로 나뉜 여가부의 업무를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 다른 부처로 이관하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지만 새로운 이름과 성격을 띤 새로운 부처가 탄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 정부가 여가부 폐지를 밀어붙이는 배경에 2030 남성의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한 정략적 선택이라는 일각의 비판도 있다. 만일 이것이 정말 정치적 계산이라면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국민 통합에 흠집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윤 당선인은 취임 전부터 국민 통합과 협치를 강조하고 있다. 여가부 존폐 논란은 그런 비판을 한몸에 받도록 한 정부와 여당의 책임도 있으므로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 따라서 여야가 문제점을 놓고 서로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한다면 오늘의 논란이 소모적 정쟁으로 그치지 않고 향후 협치의 시금석이 될 수도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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