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서양 음악사를 보면 바로크(Baroque) 시기(1600-1750)가 되면서 극음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 대표적인 쟝르로 오페라가 탄생되었던 것입니다. 이 오페라는 1년 내내 극장가를 달구며 청중들을 매료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오페라들이 연주되어지지 않는 시기가 있습니다. 교회력으로 사순절 6주간, 그리고 대강절 4주간입니다. 이 전통은 오늘날 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 극장가에서는 세속음악을 멈추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고 메시아의 도래를 고대하며 각각 수난음악이나 오라토리오를 연주하게 됩니다. 필자가 거주하는 지역에 대표적인 오페라 연주 단체는 LA Opera입니다. 올해 사순절 기간에 이 오페라단에서는 바흐의 마태수난곡(Matthew Passion by J.S Bach 1685-1750)을 연주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순절(Lent)은 봄의 기간을 나타내는 앵글로섹슨어 "lencten"에서 유래한 말로 길이(length)를 의미합니다. AD 325년 제1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부활주일을 제정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며 공생애를 준비하신 것을 기억하며 부활주일을 전으로 해서 주일을 뺀 40일을 사순절로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산하면 40일의 시작이 수요일이 되는데 그것이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인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 믿음의 선진들은 전통적으로 이 사순절 기간에 기도, 금식 그리고 기부와 자선 등 세 가지 중요 사항에 전념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삶을 조명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며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려고 힘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찬송은 "오 거룩하신 주님(O Sacred Head, Now Wounded)"입니다. 이 찬송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음악으로 표현한 찬송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12 세기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수도사라고 불리우는 베르나르 드 클레보(Bernard de Clairvaux 1090-1153)가 요 19:2-3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말씀을 가지고 1153년에 그리스도의 수난을 표현한 것이 근원입니다.

이것을 루터란 목사님이신 폴 게르하르트(Paul Gerhardt 1607-1676)가 1656년 베르나르의 시를 독일어로 번역한것을 당시 마틴루터의 음악을 전승한 독일 음악의 아버지라고 하는 한스 레오 하슬러(1564-1612)가 만들었던 사랑의 노래(Mein G'müt ist ist mir verwirret)에 이 가사를 넣어 루터란 찬송으로 처음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속적 가사를 사용해서 작곡되어진 것을 교회 가사를 집어 넣어 새롭게 교회음악으로 바뀌어진 음악을 콘트라팍툼(Contrafactum)이라고 합니다.

이 찬송은 이후 독일의 루터란 작곡가들인 디트리히 북스데후데(Dietrich Buxtehude, 1637-1707)나 요한 세베스찬 바흐(J.S Bach)에 의해 수난음악에 코랄로 사용하였고, 멘델스죤(Felix Mendelssohn1809-1847)이 그의 대표적 오라토리오 "엘리야" (Oratorio Elijah)에 이 코랄을 사용하게 되어 더 유명한 곡이 된 것입니다.

한편 우리의 찬송가로 불려지게 된 것은 미국의 장로교 목사님이신 제임스 알렉산더(James W. Alexander, 1804-1859)가 영어로 번역해 찬송가로 만들어서 불려지면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콘트라팍툼(Contrafactum). 주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세속적 이야기를 담은 음악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가사를 바꾸어 표현하니 그 본질이 완전히 전환되었습니다.

지난 1873-1889년까지 만 16년을 하와이에 있는 몰로이카섬에서 나병환자들을 위해 선교 사역을 했던 벨기에 출신의 조셉 데미안 선교사를 기억합니다. 1884년 어느 주일 아침 그가 예배를 인도하러 가기 전에 뜨거운 물을 먹으려 컵에 붓다가 실수로 자신의 발에 쏟았습니다. 그런데 아무 감각이 없었습니다. 두려운 마음에 다시 뜨거운 물을 부었는데 역시 아무 감각이 없었습니다.

그는 즉각적으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쏟아지는 눈물을 씻으며 예배당에 들어갔고 그의 설교시간이 되어 그가 평소에 오프닝을 했던 "나의 동료 신자 여러분"이란 말에서 말을 바꾸어 "나의 동료 나환자 여러분"이라고 인사를 했던 것입니다. 드디어 그는 그들을 동료라고 부를 수 있었고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있기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5년을 나병환자로 지내며 그 나병환자 촌에서 사역을 하다 4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조셉 선교사의 삶을 불쌍한 삶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이보다 가치있는 삶이 어디 있을까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우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 단순한 진리 조차 많이 외곡되고 희미해져 가는것 같습니다. 팀 켈러(Timothy Keller 1950-) 목사님이 쓴 책 "내가 만든 신"에 보면 '우상이 우리 마음을 장악하면 결국은 성공과 실패, 그리고 행복과 슬픔의 정의가 몽땅 변질될 것입니다. 아니 우리의 감정까지도 뒤틀어 놓게 됩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날은 정말 많이 혼돈스럽습니다. 모든 일들에서 정의가 변질되고 비틀어지는것 같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2022년 사순절이 시작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가시관을 쓰시고 고통과 치욕으로 창백해 지신 수난의 주님을 그린 성자 베르나르 드 클레보의 "오 거룩하신 주님"을 찬양하면서 우리의 가슴에 구겨지고 비틀어진 정의를 바로 세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 교인들이 전념했던 기도, 금식, 기부와 자선 등에 힘쓰고 싶습니다.

윤임상 교수(월드미션대학교)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윤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