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삼 교수
채영삼 교수(백석대)

여기에 ‘오직 성경으로’의 종교개혁의 원리와 정신이 들어있다. 루터는 종교개혁 당시에, 사제들에게만 고등교육을 시키는 카톨릭에 반해, 계급과 신분과 성별을 가리지 않는 보편교육을 강조했다. 왜 그랬을까?

그래야만 ‘거짓 설교자와 수도사와 궤변론자들의 어리석음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루터가 택한 전략이었다.

어떻게 해야, 성경 본문 한 구절 읽어놓고 그것을 자신의 욕망과 세속적 계산에 꿰맞추어 조작하는 엉터리 설교의 폐해를 피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성도를 협박하고 속이고 미혹하여 거짓된 길로 들어가게 하는 악한 설교자를 분별하고, 질문하고, 저항하고,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설교를 듣는 성도들 자신이 똑똑해지지 않으면, 길이 없다. 요즘은 상품 만드는 회사가 소비자를 속이기가 어렵다. 그 상품에 대한 정보를 쉽고 정확하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소비자가 물건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창구도 쉽고 다양하다.

음식을 먹고 재료가 상했거나 이물질이 들어갔거나, 가격대비 양과 질이 떨어지면, 먹고 나와서 인터넷에 나오는 음식점 주소에 딸린 ‘리뷰란’에 자신의 평가를 남긴다. 그래야 개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쌍방향 소통이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강단에 올라간 설교자의 설교에 아무런 생각 없이 무조건 ‘아멘, 할렐루야’를 외쳐서는 안 된다. 확인해보고, 따져보라. 성도가 성경을 펴놓고, 과연 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지, 그 읽어놓은 성경 본문의 전후문맥에 맞는 소리인지를 확인해보아야 하고, 확인해볼 수 있어야 하고, 확인해 볼 책임이 있다.

그 설교가 성경의 말씀에 깊이 조화를 이루고, 하나님의 참되고 거룩하고 진실한 뜻을 온전히 드러내면, 성도는 전 인격으로, 온 삶으로 화답할 것이다. 그래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려면 ‘마음의 확증’으로만은 불가능하다. 거짓 설교도 계속 듣다 보면, ‘잘못된 일관성’에 익숙해지고, ‘거짓된 감성’에도 중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성도가 ‘순전한 말씀의 빛, 거룩과 진실과 사랑이 충만한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분히 젖어 있어야 한다. 성도들 자신이 그 말씀의 빛, 성령의 빛 가운데 거하고 있어야만, 거짓된 설교를 분별할 수 있고, 저항할 수 있고,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성도에게는 스스로 성경을 읽고, 충분히 배우고, 온전히 알아야 할 책임이 있다. 그래야 자신을 지키고, 교회를 지킬 수 있다. 각 성도가 성경을 균형 있고 체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공부하는 것을 의무로 생각해야 한다.

성경해석은 신학생들, 사역자들, 설교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고, 성도는 그저 듣고 실행하는 ‘머리 없는 손 발’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각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새로운 피조물이다.

성도들 자신이 성경을 읽고, 읽은 말씀을 깊이 상고해야 한다. 성도가 성경해석을 신학자에게, 사역자에게, 목사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내가 성경을 알아야 나를 지키고, 주의 교회를 지키고, 목회자들을 지키고,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라.

성도 자신이 성경 말씀의 문맥을 따라 읽고 부지런히 공부하고, 그렇게 읽은 말씀으로 기도하고, 기도한 내용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말씀을 행하다가 다시 질문하고, 그 질문과 시련 속에서 다시 말씀을 읽고 확인하고, 그래서 더 체계 있고 균형 잡히고 온전한 말씀이해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사랑하는 주의 교회는 거짓교사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아 성도를 속이고 양들을 뜯어먹는 패역한 종교사기군들의 해악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의 말씀에 충성된 모든 진실한 사역자들은, 성도들이 ‘목회자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온전하고 충분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도록', 일평생 그들을 돕고 격려하며 꾸준히 가르치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성도 자신도, 평생에 걸쳐 ‘모든 성경’을 깊이 넓게 온전히 알아가야 할 마음을 먹어야 한다. 부지런히 말씀을 읽고 배우고, 기도하고 행하고, 또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실한 길이다. 그것이 ‘말씀이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뜻이고, 그분을 사랑하고 경배하고 순종하고 따라가는 참된 신앙고백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주의 교회를 지켜내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채영삼 교수(백석대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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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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