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예장 합동총신 총회장 최철호 목사
예장 합동총신 직전 총회장 최철호 목사 ©합동총신

내가 서남동의 《민중신학의 탐구》를 사서 읽은 것은 1987년 12월이다. 그리고 약 32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책이 처음 인쇄된 것은 1981년 11월이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발행된 것은 1986년 4월이다. 이 시기는 386운동권이 대학에 다니면서 민주화의 조류 아래 한창 의식화 학습에 심취하고, 각 기업체에 위장 취업하여 노동운동을 부추기던 때이다. 내가 그때 이 책을 왜 사서 읽었는지는 지금 별로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그 당시 나는 이 책 외에도 마르크스의 《자본론》Ⅰ-Ⅲ권을 비롯하여 《해방전후사의 인식》, 《전환시대의 논리》, 《분배의 경제학》, 《한국민중사》, 《프랑스혁명사》, 《노동의 역사》, 《권력군단》, 《군중과 권력》, 《지배의 사회학》, 《군중의 심리》 등을 구입하여 정독하였다. 내가 이런 불온서적―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다―을 읽은 이유는 당시 운동권의 입장과는 정반대 편에서였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대가족의 부양책임을 맡은 나는 배부른(?) 대학생들이 위장 취업하여 내 삶의 터전인 직장을 뒤엎으려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란 심정으로 그들의 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탐독하였던 것이다. 《민중신학의 탐구》는 그러한 책들 중 하나였던 셈이다. 이제 목사로서, 그리고 신학교 교수로서 이 책에 대한 소감은 그 때와는 사뭇 다르다. 나는 이 책을 다시 한 번 정독하면서, 서남동의 신학사상을 정리해 볼 필요성을 느끼고 이 글을 쓴다.

1. ‘민중’이란 무엇인가?

서남동이 생각하는 ‘민중’은 이 책의 첫 장인 <예수・교회사・한국교회>에 잘 담겨 있다. 그는 민중을 이렇게 정의한다.

민중이란 말은 민이란 말이다. 민생(民生) 민의(民意) 민권(民權) 등의 민(民)이고, 봉건 사회의 ‘백성’에 해당할 것이다. 아마 그 집단적인 실체성 때문에 ‘민중’(民衆)이라고 하겠지. 공산주의자들이 쓰는 ‘인민’이라는 말의 내포(內包)와 같은 것이겠는데, 문제는 잘못된 정부가 ‘민족’이라는 말을, 민중의 ‘억압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사용하듯이, 공산주의자들이 쓰는 인민이라는 말은 그들의 지배를 정당화시키려는 ’억압의 이데올로기‘로 쓰고 있다는 차이점일 것이다.

그는 민중의 범주에 드는 부류로 농민과 어민, 근로자, 실업자, 병사와 순경, 봉급생활자, 영세상인, 중소산업자 등을 꼽는다. 이들은 정치적인 억압과 경제적인 착취와 사회적인 모멸과 문화적인 소외 가운데 신음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가운데 특히 농민계층은 “농민→이농→노동자→실업→빈민→인륜상실→도둑→범죄→감옥”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밟음으로써 사회가 시들어간다고 진단한다. 그는 민중을 백성, 시민, 프롤레타리아(노동자), 대중(mass)과는 구별되는 개념으로 본다. 그에게 지식인은 민중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가령 나와 같은 엄연한 대학교수를 어떻게 민중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사회경제사적 관점에서 인간을 개인으로서보다 집단으로 보며,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본다. 그에게 민중은 인간의 대명사이다. 그는 성서에 등장하는 히브리인들이란 “고대 근동 전역에 걸쳐 살면서 국적이 없고 착취당하고 학대받으며 떠돌아다니는 천민적인 사회계층”을 일컫는데, 그들은 한 민족, 한 언어의 문화 공동체가 아니라 사회 최하계층의 떠돌이・용병・노예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야훼는 이러한 자들의 신이라고 한다. 그는 민중이란 말을 영어로는 링컨 대통령의 말, “Government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of the peope”의 그 people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서양의 people과는 구별하여 minjung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중이라는 말은 성서적인 전통에 있는 백성과는 판이하게 다르고, 오히려 ‘가난한 자’에 가까운 말이다. (common) people, volk 그리고 crowd와도 다르다. 그렇기에 민중의 서양말 번역은 people이나 crowd나 volk가 되기 어렵고, ‘minjung;으로 번역해야 할 특수한 정치신학적 개념이다.

민중에 대한 서남동의 이러한 이해는 성경의 내용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그는 예수가 당시 로마의 식민지인 유대 땅에 살고 있던 가난한 자, 눌린 자를 무조건 자기와 동일시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이들 유대인들이 곧 ‘암하레쯔’(암의 땅)이며, 교회와 교회사의 규범이라고 본다. 즉 암하레쯔가 민중인 것이다. ‘암’םע이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 모두 1,870회 등장한다. 이 단어는 한글성경에 ‘민족, 백성, 무리, 민중’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영어성경은 ‘people, nation’ 등으로 번역한다. 신명기 20장 1절과 여호수아 11장 4절에서 한글성경은 ‘민중’(영어는 people)로 번역하였다. 한글성경에서 “민중‘으로 역한 신약성경은 마태복음 14장 5절의 ’오클로스‘ὄχλος가 유일하다. 이 단어를 KJV은 multitude, NIV는 people로 각각 번역하고 있다. 성경에서 ‘백성’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인간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러므로 ‘암’에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지배자와 피지배자, 억압자와 민중의 구분이란 있을 수 없다. 자본가, 대기업, 왕, 대통령, 권력자도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자 통치 대상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만유를 지으신 창조주, 통치주, 심판주시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 서남동이 사유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소위 ‘민중’만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이 땅의 모든 백성, 민족, 무리, 민중은 동일하게 하나님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 (계속)

최철호 목사(예장 합동총신 직전 총회장, 한교연 공동회장 및 바른신앙수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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