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예수마을교회 담임 장승익 목사
함께하는예수마을교회 담임 장승익 목사

할례는 율법을 대표하는 규약이자 구약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적 표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주요한 지표 중의 하나인 것이다. 하여 선택받은 유대인은 할례 받은 민족이고 이방인은 할례 받지 않은 민족으로 대별하기도 하였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초대 교회 안에서도 할례를 비롯한 율법을 준수하는 문제는 여전히 중요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러했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성령이 임재하고 사도들이 흩어져 복음을 전할 당시에도 율법의 적용과 준수는 쉽지 않은 문제였다. 그야말로 논쟁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구약 성경을 조금만 주의 깊게 읽으면 외적인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율법서인 모세오경 안에서도 할례의 참된 의미에 대해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명기의 두 곳을 잠깐 살펴보자 먼저 신명기 10장 16절을 보자.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신명기 말씀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외적 할례도 중요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마음에 할례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16절 앞부분인 12-13절은 이렇게 되어 있다.

“12.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핵심은 할례를 받고 안 받고 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는 것 즉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가이다. 17-19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씀하면서 그대로 행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17.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18.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19.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율법의 핵심은 할례를 받았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할례를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고 있는가에 있다.

신명기 30장 6절을 보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여기서도 마음의 할례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할례를 받았는가에 있지 않다. 오늘날로 보자면 세례를 받았는가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변화이다, 할례가 생식기의 일부를 잘라낸 것처럼 내 안에 있는 세상의 헛된 욕망을 어느 정도 잘라 내어 돌이켜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외적인 할례를 받았지만 그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아 즉 마음의 변화가 없어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타락한 삶을 살아간다면 과연 할례 받은 민족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레미야 4장 4절에서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그렇다.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마음 가죽을 과감히 베어 버려야 할 것이다. 아프고 힘들겠지만 세상에 속한 헛된 욕망 즉 내 안에 있는 우상을 미련 없이 철저히 내 던져야 할 것이다. 이어 예레미야 6장 10절을 보자.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 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선택 받아 외적으로 할례 받은 민족이 말씀대로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한 현실을 가리켜 “귀가 할례 받지 못해 듣자 못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너무도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는 예민한 영적감수성을 지닌 한국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러한 탄식은 신약에 와서 사도행전 7장에 있는 유명한 스데반의 설교 마지막 부분에도 여실히 나타나 있다. 다음은 사도행전 7장 51절이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스데반은 설교 중에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청중들을 호되게 꾸짖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특징이요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목이 곧은 교만한 모습! 마음과 귀가 생명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아 새로워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목이 곧고 교만하여 외식하면서 마음으로 중심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못하고 예배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현실은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의 한국 교회에도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바울을 통해 로마서 2장 28-2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대로 표면적 유대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은 이면적 유대인이 중요한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와 갈라디아서에서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고린도전서 7장 19절을 보자.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여기서도 하나님의 계명 곧 말씀을 지키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또한 갈라디아서 5장 6절 말씀에서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이어 갈라디아서 6장 15절 말씀을 보면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역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떠한 사람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보다도 타락한 혼돈의 시대에서 우리가 살며 믿음을 길을 걷고 있다. 이미 오셨고 다시 오실 메시아 주 예수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는 이 거룩한 절기에 우리 내면을 좀 더 깊이 성찰해 보면 좋겠다. 나의 내면은 주 예수님을 모시기에 정결하고 부끄러움이 없는지 아니면 여전히 탐욕과 세상의 우상으로 꽉 차 있는지.

장승익 목사(함께하는교회 예수마을 교회 담임, 튀빙엔대 신약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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