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셋째, 사람은 몸과 영혼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의 구조에 대해 논쟁이 있습니다.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크게 몸과 혼과 영으로 구분하는 삼분설이 있고 육체와 영혼으로 구분하는 이분설도 있고 히브리서 4장이 말하듯이 몸과 혼과 관절과 골수 등 4분설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혁신학은 크게 물질적인 부분과 비물질적인 부분으로 구분하고 이 비물질적인 부분을 성경은 때로 혼, 영 혹은 영혼, 인격, 마음, 정신 등으로 표기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이 영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이것을 나타내는 특별한 단어들이 사용되었습니다. 먼저 ‘네페쉬’는 ‘혼’으로 주로 번역되고 ‘루아흐’는 주로 ‘영’으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는 주로 ‘루아흐’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은 ‘네페쉬’는 soul로, ‘루아흐’는 spirit로 번역했습니다. 이 spirit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특별한 교재를 나눈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도 이 둘을 구분했습니다. ‘네페쉬’(혼)은 ‘프쉬케’로, ‘루아흐(영)’은 ‘프뉴마’로 번역했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사용 용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프쉬케’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가지고 있음을 말하지만 ‘프뉴마’는 구속된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특별한 능력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혼과 영을 주셨습니다. 이 혼은 생각할 수 있는 정신적 기능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혼의 기능만으로는 하나님을 인지하고 관계를 맺고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반드시 영의 기능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와 타락 후에 모든 인간에게 이 영의 기능이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의식하거나 인식하거나 이해하거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죽은 우리의 영적 기능을 회복시켜야만 우리가 주님을 알게 되고 만나게 되고 느끼게 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은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났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오셨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 성령님이 오시지 않은 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롬 8:9 선언을 기억하고 사세요. 이 성령 하나님이 아니고선 그 누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주님이라 인정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이 모든 것을 다 선물로 받고 그것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송축합니다.

넷째, 사람은 동물보다 우월하게 창조되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람은 동물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영적인 부분을 소유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물의 영정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육적인 힘은 어떤가요? 과연 인간이 동물보다 힘이 더 우월한가요? 우리가 코끼리처럼 힘이 셉니까? 사자나 호랑이처럼 빨리 달립니까? 독수리처럼 자기 마음대로 하늘을 날 수 있습니까? 그런 점에서 사람은 동물보다 유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견에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의 깃발을 올렸던 마르틴 루터입니다. 그 창세기 강해에서 “원래 아담은 지음을 받았을 때 동물들이 가졌던 힘보다 더 탁월한 힘과 능력을 가졌다”고 보았습니다. “범죄 이전에 아담의 눈을 아주 예리하고 맑아서 시라소니나 독수리를 능가했으며, 사자나 곰보다 더 당해서 그들을 마치 강아지 다루듯이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죄로 말미암아 다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죄가 그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죄는 암세포처럼 우리 몸 안에 도사리고 있으면서 영원히 떠나지 않고 우리의 정상적인 모든 기능들을 다 마비시켜 버립니다(조카가 지금 암 투병 중입니다. 건강한 청년이었던 그가 암세포에 포로가 되자 정상적인 기능을 행사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습니다). 죄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누구든지 죄에 사로잡히면 올바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죄를 들키지 않기 위해 그는 모든 인생을 거짓으로 철저히 위장해 두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반드시 이런 위장과 모순과 위선들을 다 밝혀내어 그에게 불명예의 관을 씌우고 몰락시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이런 인물이 한 사람 있지요. 그의 종말이 눈에 보임에도 아직도 그는 자기를 합리화하고 변명하고 ‘나만 그랬냐’ 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는 마귀의 자녀일지 모릅니다.

어쨌든 사람은 범죄와 함께 타락했습니다(이 부분은 따로 다룰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은 많은 중요한 기능들을 상실했습니다. 이 상태를 히브리서 기자는 “짐승보다는 조금 높지만 천사보다는 조금 못하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은 짐승과 천사 사이에서 둘을 중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가 끊어진 상태에서 자기보다 더 낮은 존재인 짐승들과 어울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원래 천사는 구원받은 상속자를 섬기는 영으로 지음을 받았는데(히 1:14), 타락 후에 오히려 사람이 천사를 섬기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분명히 사람은 동물들보다 우월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구속받지 않은 상태의 인간은 동물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들은 땅 위에서 살면서 땅을 바라보고 땅의 일을 합니다. 바로 이것이 짐승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짐승들도 그런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하늘의 일을 동시에 하고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 3:20)고 권면했습니다.

다섯째, 사람은 거룩하게 창조되었습니다.(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거룩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람은 거룩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죄로 인해 모든 부분이 비정상적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사람의 죄로 인해 자연 세계도 파괴되었습니다. 지구의 환경이 저주를 받자 인간에게 사망이 찾아왔고 육적인 생명의 연수도 천년의 수준에서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수준으로 급전직하했습니다. 이보다 더 슬픈 것은 육적으로만 약해지고 부서진 것이 아니라 영혼의 기능, 즉 생각마저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인간의 이 상태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창 6:5) 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한 마디로 인간은 철저히 타락했습니다. 인간에게 선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가 제아무리 교육을 받고 선의 옷을 입고 웃음을 띠고 다른 이를 섬기고 선행을 한다 해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죄인일 뿐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선해 보여도 하나님의 기준에는 모든 인간이 죄악 그 자체입니다. 무엇보다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는 거룩해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말이 있듯이 범죄와 함께 타락한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거룩하지 않은 일입니다.

바로 이 점이 인간에게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지만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여 그를 거룩한 존재로 새로 만드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이렇게 새로 만들어지고 다시 거룩해지지 않으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함께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5, 20:26/ 참조: 시편 13~14편, 잠언 26장)고 하셨습니다. (계속)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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