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정 총장
감신대 이후정 총장 ©기독일보 DB

성 어거스틴에 대한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어거스틴의 책 『고백록』은 여전히 세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며 회자되고 있다. 이후정 감신대 교수(현 총장)는 과거 「신학과교회」 제12호(2019)에서 어거스틴의 역사신학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논문을 투고했다.

하나님의 경륜 등 역사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본격화 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성 어거스틴 핵심 사상을 짚어내는 논문이었다. 이 교수는 역사 신학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그는 "역사란 무엇인가? 인간은 세계 속에서 시간과 공간의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은 어떠한 본성을 가지며 어떻게 자신의 인생과 목적과 의미를 찾아가는지가 중요한 시낙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날 역사의 의미를 밝히는 과정에서 해석의 문제가 매우 큰 도전을 주고 있다. 똑같은 역사적 사실을 두고 그것을 보는 주관적 혹은 실존적인 관점이 달라지면서 그 의미를 탐구하는 것도 전혀 다르게 된다"며 "어떤 해석이 올바른 것인지 때로는 크나큰 혼란과 방황이 일으켜지는 것도 피할 수 없는 한계가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어거스틴의 역사신학을 고찰하는 목적을 띤 이 논문에서 이 교수는 어거스틴 자신이 역사적 삶을 성찰하는 과제에 직면해 써낸 '고백록'과 '하나님의 도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 속에서 어떠한 역사신학 내지는 역사관을 집중해서 체계 있게 논술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의 성찰 속에서 그가 본 역사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찾아낼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특히 "고대의 그레코 로만적 상황 속에서 그가 접하게 되었던 역사에 대한 이해에 반하여 어거스틴은 자신의 신앙, 성서에 근거해 기독교적 역사관을 해명할 수 있었다"며 "어떤 의미에서 그를 역사신학의 창시자로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도 했다.

이 교수는 어거스틴의 역사신학을 검토하기에 앞서 역사적 배경을 제공하는 고전적 고대의 그레코 로마적 역사 이해를 고찰했다. 영국의 역사철학자 콜링우드의 주장에 입각해 그는 "그레코 로마 역사기술의 성격은 첫째로 휴머니즘에 있었다"고 했다.

역사를 일차적으로 인간의 의지의 직접적 결과로 여기는 휴머니즘에 대해 "인간의 의지가 그 목적을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점에서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라며 "그러한 역사관에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이성적이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 자성의 힘은 성공의 한계가 있으므로 비판적으로 볼 때 약점과 부적합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그는 부연했다.

로마 그레코 로마 역사의 두번째 성격은 형이상학적 인식론에 토대를 두고 있는 본질주의였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역사는 우연적인 것이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 사상이 결정된다는 것이다"라며 "나아가서 역사의 에이전트는 영원불변하며 역사 밖에 서 있다고 헤로도투스는 보았다. 그는 여기서 형이상학적인 원리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이 교수에 따르면 헤로도투스에게서 역사를 지배하는 법칙은 인간의 욕망이 성취를 요구하는 행복을 신이 주지만 신은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맛보기만 허락하고 다시 뺏는다는 비정의 차원을 보여준다.

이 교수는 이어 "영원하고 포괄적인 우주의 법칙은 우주의 운동을 통치하지만 인간도 거기에 포함된다"며 "인간의 목표들을 추구하는 활동의 법칙을 고찰하면서 그는(헤로도투스) 인간의 감각적 지각의 이론에 따라서 영혼이 자연처럼 움직인다고 보았으며 그것을 신적 충동 욕망,과 동일하게 본다. 말하자면 물질적 끌림에 해당하는 인간의 욕망이 생의 원동력을 구성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헤로도투스의 역사관에 대해 이 교수는 "비극적인 네메시스(인과응보 운명)론이 지배적으로 나타나면서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충동으로 인한 보응에 대한 의식을 보여준다"며 "인간의 역사 과정에서 물질적 필연성으로 인해 아무 것도 제어할 수 있는 영향과 힘을 가지지 못하는 "영속적인 운동 속의 물질"이란 우주의 형상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의 관점에서 인생은 짧고 무력하며 운명의 지배하에 놓여 있고 비운의 자기 패배적인 경향을 보여주면서 결국에는 심오한 뿌리 뽑을 수 없는 비관주의만 남게 된다"고 했다.

또 하나의 주된 고전적인 역사관으로 투기디데스의 역사관을 꼽았다. 이 교수는 "투기디데스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과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물리적, 심적, 도덕적 결과를 역사 속에서는 보는 것"이라며 "인간 생활의 움직임은 행위와 고난, 자극에 대한 응답을 통해 이해와 통제를 거쳐 행동의 연속에서 통일적인 것들로서 나타난다. 그러한 결과 인간성의 구성은 안정되고 과거의 경험에 따라 공포, 가난 두려움, 환난과 약함 등에 대해 평화와 안전, 복지와 번영을 요구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로마의 고전적 역사관에 반해 기독교 사상은 새로운 혁명적인 효과를 역사 이해에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고전 시대 역사관에 기독교 사상이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며 "우선 새로운 역사개념이 등장했는데 역사는 인간이 그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들에 따라 구성된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교수는 기독교의 보편적 역사관에 대해 "그레코 로마 역사관이 특수적이며 자기중심적인 데 반해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을 가져왔고 그 무게 중심을 파괴한 것이다"라며 "기독교 역사관에서는 사건들을 인간적 에이전트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예정하시는 섭리의 역사에 두는 신정주의적 관점이 도입되었다. 역사의 주인공은 이처럼 보편적인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설정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특히 "역사의 지성에 따르 이해의 패턴을 탐지함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이 패턴의 중심적 중요성이 고착되면서 그 사건이 그 전후의 역사를 고찰하는 중심으로 여겨진다"며 "거기에서 나아가 기독교적 역사관은 묵시적이며 종말론적인 성격을 가지면서 인간 사고의 전 구조를 재정향시키는 방향으로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또 고전주의의 시대정신이 인간 역사의 리듬을 인류에 낯선 힘들로 보면서 순환적으로 읽었지만 어거스틴은 이러한 시간의 순환을 비판한다. 이에 이 교수는 "그 이유는 과학적 지성이 무한의 개념을 파악하지 못한 결과이며 인간의 가변직 지성의 편협한 기준으로 하나님의 불변적 정신을 측량하려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역사관은 일련의 반복적 순환의 패턴들을 거부하며 궁극적 목표를 향해 시작, 중간, 마지막이 확실한 진행을 주장한다. 이 교수는 "이런 역사 이해에 의하면 인생의 순서는 단지 맹목적이며 목표도 없는 물질에 있거나 인간 정신에 의해 선험적으로 파악되는 패턴, 관념의 재생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세계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들이다"라고 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어거스틴이 역사를 두 도성, 즉 하나님의 도성과 세상의 도성의 역사의 복합체로 읽으려 했던 점을 부각시켰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이 두 도성 중 하나는 본성과 의지에 있어서 선함을 보여주며 다른 하나는 본성은 선하나 의지는 타락함을 보여준다.

이어 이 교수는 "어거스틴은 지상의 도성이 권력, 부, 안위, 쾌락을 추구하는 세상 나라임을 본다"면서 "반대로 하나님의 도성은 궁극적 관심의 대상으로서 하나님을 향유하며 하나님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참된 평화를 추구한다"고 부연했다.

이러한 어거스틴의 신의 도성에서 나타난 핵심적인 역사관의 궁극적 차원이 기독교적인 종말론과의 관계에서 분명히 밝혀지고 있다는 점도 들었다. 그는 "천상의 예루살렘과 낙원의 회복을 소망하면서 두 세계의 시민으로서 지상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순례적인 삶을 그는(어거스틴은) 역사 속에서 포착했다"며 "신의 섭리의 계획에 따른 이 도성의 점진적 형성은 역사의 가장 깊은 의미를 형성하게 되며 각 사람에게 존재의 이유를 주는 동시에 그 운명을 분명하게 해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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