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길 교수
민성길 명예교수

최근 EBS에서 젠더이론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를 소개한다하여 사회적으로 물의가 빚어지고 있다. 그녀는 레스비언이자 페미니스트이며, 전통적 성적 규범을 해체하려는 퀴어이론가이다. 버틀러의 이론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이를 일반인들에게 설명하려 한다면, 아마도 현대 성문화에 대한 철학적 담론에 흔히 등장하는 “학술적인 것처럼” 보이는 jargon(뜻을 알 수 없는 말〔이야기〕, 허튼소리)들의 난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의 교묘한 유희 같은 “언어”들의 배후에 있는 핵심 사상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은 전통 기독교적 성 규범을 해체하려는 대담한 시도이다.

버틀러의 이론은 “사회적 구성주의 이론”과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수행성”(performativity)이라는 개념에 기초한다. 쉽고 간단하게 말하면, 통상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말이나 행동이나 역할이라도 반복적으로 “수행“하면 사람들 사이에(특히 엘리트들 사이에) 담론이 되고, 결국 사회적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선전선동의 기술을 말하는 듯하다). 그녀는 파티, 무대, 예술활동 등에서 남장여성 또는 여장남성 역할을 하는 드랙(drag)을 예로 들면서, 한 사람이 반대 성의 역할을 반복 표현하면, 다른 사람이 그의 반대되는 성(젠더) 정체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실제 모든 드랙이나 이성복장자들이 트랜스젠더인 것은 아니다). 여기에다 “자기 결정권”이라는 인권의 문제가 결합하면, 그들의 주장은 사회적으로 강력해 지며, 이데올로기가 되고, 정치적이 된다.

그러나 이 이론은 진실한 과학적-의생물학적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젠더개념은 남자와 여자의 신체라는 생물학적 요인, 즉 “자연“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점이 젠더이론의 결정적 약점이다. 그러나 타고난 신체적 성에 대한, 또는 자신의 신체상(body image)에 대한 불만이 있는 사람에게는 복음이 된다. 이에 대해 버틀러는 생물학적 섹스-남녀의 몸-도 사회구성적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한다.

그 외에도 버틀러의 이론에 다양한 모순들이 발견된다고 한다. 그녀의 젠더개념은 페미니즘과 논쟁 중이다. 즉 고정관념화된 성역할을 해체하려는 시도와 여성성을 확고히 하려는 페미니즘 사이에 상호 모순이 발생한다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의 글 중에 근친간이나 소아성애도 용인하는 내용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데, 섹스에서의 다양성과 유동성과 관용을 주장하다보면 그런 길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섹스에 대한 우리 크리스천의 신념은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근거하고 있으며, 성혁명가들의 비자연적인 그리고 정치 이데올로적 주장을 반대한다.

그런데 왜 버틀러같은 천재적인 철학자들이 젠더이론을 만들고 또 옹호할까? EBS 간부나 대학교수나 기자 같은 엘리트들은 왜 젠더이론을 편들까? 그 이유는 그들이 인간 지성과 능력을 신격화하는데 매력을 느끼기 때문으로 보인다. 보통 사람들도 인간능력의 한계와 자연을 초월하는 수퍼맨을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전통적으로 인류는 어떤 절대적 원칙이 있어, 그에 따라 윤리적 규범이 파생한다고 보았다. 크리스천은 그 원칙이 하나님의 인간을 남녀로 창조하신 창조섭리에 근거하하다고 믿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적으로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를 가르쳐 왔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들이 지성과 과학과 기술을 발달시키면서, “자연”의 한계를 벗어나, 즉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벗어나, 인간의 이성을 숭배하고 스스로 부여한 인권에 따라, 새로운 인간, 새로운 세상, 새로운 윤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근대에 정치사회적 혁명을 일으켰고, 20세기에 이르러서는 프리섹스의 성혁명을 일으켰다. 그 혁명의 연장으로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정당화하였는데, 이를 위해 젠더이론은 안성맞춤이었다. 심지어,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강박감은, 청소년은 물론 소아에게도 성을 즐길 인권이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 어른들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빌헬름 라이히, 킨제이, 마르쿠제, 미셀 푸코, 버틀러 같은 성혁명 이론가들이 하나같이 다자연애, 소아성애 또는 성도착증들을 옹호한다. 장차 인간의 성적 행동과 성적 대상이 어디까지 확대될지 우려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성의 해방이, 질병들을 불러왔고 인구감소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혁명 옹호자들이 서로 연대하여, 서구 기독교 성윤리를 고정관념이며 억압적이라고 맹비난하면서 성 규범을 파괴하고 질병과 멸망을 초래하려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그들 자신의 억압된 성을 해방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능화 내지 합리화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즉각적 만족을 위해서라면 그 다음은 생각하지 않는데, 그런 행태는 쾌락주의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소신대로 살면 그만인데, 왜 다른 사람 또는 전체 사회를 혁명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윤리보다, 권력과 돈 그리고 쾌락을 얻으려는 정치-경제적 욕구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성혁명은 결국 가족체제를 붕괴시키고 인구를 줄이고, 인류문명을 퇴행(degeneration)시킬 것이다.

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아직은 전통 규범을 지키고 있지만, 엘리트 성혁명가들의 저술, 교육, 방송, 연예 등에서 반복되는 “요란한” 선전선동에 접하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오직 각성된 일부 기독교인들이 열심히 성혁명과의 문화전쟁에서 싸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전쟁에서 최종적 승리를 얻을 것이다.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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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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