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국회에서 통과된 사립학교법 개정안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개정안이 교원임용을 시도 교육감에게 위탁하도록 강제함으로써 학교법인의 인사권을 사실상 박탈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사학들은 개정안이 ‘사립학교 설립과 운영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의 기본권을 부정하는 동시에, 건학이념 구현을 위한 학교법인의 고유한 인사권을 명백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반발하며 헌법소원 등 법적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논란이 된 부분은 교원의 신규 채용을 위한 공개전형 시 “필기시험을 포함해야 하고, 필기시험은 시·도 교육감에게 위탁해 실시해야 한다”는 조항(제53조의2 제11항)이다. 이 법안을 발의한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정안 통과 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일부 사학에서 발생하고 있는 교사 채용 관련 부정과 비리로 인해 사립학교 임용의 공정성이 훼손되고 있었다”며 “사립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정한 채용이 이뤄져야만 사학의 신뢰성 확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윤 의원의 말대로라면 개정안이 사립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사학의 교원채용을 위한 필기시험을 사학이 아닌 시도 교육감에 위탁해 실시하는 것 자체가 명백한 자율권 침해다. 아무리 일부 사학에 비리가 있었다 해도 그것 때문에 사학의 자율권을 빼앗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나 마찬가지다. 일부의 비리를 전체로 일반화해 범죄 집단화하지 않는 이상 이런 논리는 수긍하기 어렵다.

현행 사립학교법 제53조의 2항도 시행령에서 필요한 경우 학교법인이 교육감에게 그 전형을 위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어디까지나 교원임용은 임용권자인 학교법인에 있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사립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개정안은 이 자율성을 박탈해 시도 교육감에게 준 것이다. 그래놓고 “사립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정한 채용이 이뤄지게 됐다”고 개정안 통과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교계는 즉각 반발했다. 한교총과 미션네트워크, 한장총 등은 사학(기독교학교)의 인사권은 “학교법인에 귀속된 고유 권한으로서 이를 강제적으로 제한하고 시도 교육감에게 강제 위탁시키겠다는 것은 사립학교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매우 초법적이고 위헌적인 발상”이라고 했다.

장신대 박상진 교수는 “개정 사학법은 종교계 사립학교의 건학이념 구현을 가로막는다”며 “종교계 사립학교가 종교적 건학이념에 근거하여 교육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건학이념에 동의하는 교원을 임용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이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이번 개정법은 ‘종교교육의 자유’가 포함된 헌법 제20조의 ‘종교의 자유’마저 침해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교회가 사학법 개정안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전체 사립학교의 21.8%에 이르는 기독교학교에 당장 미칠 악영향 때문이다. 기독교사학이 기독교적 건학이념에 충실한 교사들을 학교가 자율적으로 임용하지 못했다면 오늘까지 국가와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1885년 내한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 경신학당과 배재학당이 설립된 이래 그 열매로 오늘날 전국에 361개교의 기독교 초·중·고교가 존재하는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지난 2005년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를 무력화시키고 사학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당시 쟁점은 학교 설립 정신과 무관한 인사가 학교 이사로 선임될 수 있도록 이사회를 개방하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교회는 한기총과 주요 교단 총회장들이 거리로 나가 삭발투쟁과 단식투쟁에 나섬으로써 2005년 12월에 개정된 사학법을 1년 반만인 2007년 7월 3일 재개정되도록 만들었다.

교계는 여당이 15년 만에 또 다시 사회적 합의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사학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처리한 것에 대해 격앙된 분위기다. 국회 스스로 철회할 것을 요구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국회의원 낙선운동과 헌법소원 등을 포함한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해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교계가 반발한다고 여당이 힘으로 밀어붙여 통과시킨 법을 자진해서 철회하기 만무하다. 단 하나 문재인 대통령이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길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 또한 문 대통령의 성향을 볼 때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그렇다면 과거처럼 교단 총회장들이 거리에 나가 삭발 단식투쟁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당시에는 한기총이 보수 기독교계를 하나로 이끌었으나 지금은 코로나19 확산 시국에다 보수 기독교계마저 3분화 된 상태라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어려운 현실이다.

기독교 사학들은 기독교 교육기관의 설립목적인 ‘기독교정신’이 훼손되는 마당에 굳이 힘들게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겠는가 반문하고 있다. 사실상 사학을 말살하는 법을 만들었으니 차라리 국가에서 사립학교를 모두 인수해 공립학교로 만들라는 자학(自虐)적인 목소리가 들린다.

가뜩이나 기독교적 건학이념이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간섭과 무리한 권고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교사 임용권마저 빼앗는 행위는 누가봐도 국가의 과도한 기본권 침해다. 따라서 격앙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좀 더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일부 사학에서 드러난 문제들에 대해 기독교계가 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더 높은 도덕성과 투명성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한다면 정권 말의 ‘대못박기’식 입법 폭주는 얼마든지 바로잡을 길이 열릴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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