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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교회 정성학 목사 ©정성학 목사 페이스북 캡처

기적의교회 정성학 목사가 최근 올린 페이스북 칼럼에서 나다나엘을 전도한 빌립에 대해 다뤘다. 정 목사는 요한복음 1장 46절 말씀을 인용하며 "어떤 지역은 큰 마을이 아닌데도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또 어느 시대에는 특정지역의 사람들이 크게 쓰임을 받기도 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물론 때로는 특정학교 출신들이 한 시대를 장악하기도 한다. 그래서 무슨 '사단'이니, 무슨 '군단'이니 하는 말을 쓰기도 한다. 지금은 그런 말들이 주로 지연(地緣)이나 학연 같은 끈끈한 인맥 때문에 쓰어지기도 한다. 예수님 당시에도 제자들은 마태복음 26장 73절에 보면 소위 '갈릴리 사단'으로 불리고 있다. '갈릴리'에서 온 이들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정 목사는 "그 가운데 특히 기억해야 할 곳이 '벳새다'다"라며 "'벳새다'는 '갈릴리'의 북쪽 해안을 따라 있는 여러 마을 중 하나인데, 이곳은 바로 '베드로'와 '안드레'의 고향이고, 그곳 출신의 또 다른 제자 '빌립' 때문에 유명한 곳이고, 나아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벳새다', '고라신', '가버나움' 등 주님이 기적을 많이 행한 도시들이 정작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예수님의 책망을 받기도 한 곳이다"라며 본문 말씀이 "그곳 출신 '빌립'의 이야기"라고 했다.

정 목사에 따르면 요한복음 1장 43절에 예수님이 '안드레'를 통해서 '베드로'를 만나신 이튿날,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던 주님은 '빌립'을 만나 "나를 따르라!"고 하셨고, 말씀을 들은 빌립은 그 길로 주님의 제자가 된다. 정 목사는 "그가 부름 받던 때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면서도 "그런데 그의 특이한 점이 있다. 그는 예수님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만났다. 그는 주님을 뜨겁게 체험하고 나서 바로 지인(知人)인 '나다나엘'을 찾아간다. 아마도 막역한 친구일 것이다"라고 했다.

정 목사는 그러면서 "'나다나엘'은 갈릴리의 '가나' 사람이고 '빌립'은 '갈릴리' '벳새다' 사람이니 굳이 나누자면 빌립은 '동쪽'사람이고 나다나엘은 '서쪽' 사람이다"라며 "둘은 무척 친밀한 사이다. 좋은 소식을 제일 먼저 들고 달려갈 정도의 막역한 사이이고, 반대로 빌립이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 고 말했을 때 단번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거절한 것을 보아도 막역한 사이임에 분명하다"고 했다.

정 목사는 "그런데 '빌립'은 '나다나엘'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친구를 향한 사랑이 있었다"며 "'친구의 불신을 원망하지 않고 어떻게든 사랑하는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해 주고 싶었다. 거절하는 말을 듣고, 빌립은 "와서 보라!"고 한다. 예수님에 대하여 자신이 있었고, 나다나엘에 대해서도 신뢰하는 마음이 동일했다. 그래서 "와서 보라!"고 한 것이다"라고 했다.

아울러 "이 전도법은 실패한 경우가 없다. 전도자가 주님과의 만남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피전도자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라며 "누가복음 14장에는 '하나님의 잔치' 비유가 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는데, 잔치할 때에 청했던 이들에게 잔칫날이니 오소서!"하고 부탁했는데.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일치하게 사양하여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바라기는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하고, 한 사람은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나를 이해하도록 하라."하고, 또 한 사람은 "나는 장가들었으니 가지 못하겠노라."며 모두 사양한다"고 했다.

정 목사는 또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고하자 주인이 노하여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맹인들,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한다"며 ""주인님! 명하신 대로 해도 자리가 있습니다."고 하자 주인이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한다. 하나님의 잔치에 모든 이들을 불러 참여하게 하라는 것이다. '강권 하여'는 "어떻게 하든지'혹은 '억지로라도'의 뜻을 갖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끝까지 권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성서에서는 이처럼 강권한 '빌립' 덕분에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나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는 경건하게 살던 사람이고 세상에 때묻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그를 본 예수는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칭찬을 한다. 이에 나다나엘은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하고 묻는데 예수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다."고 답했다. 나다나엘은 결국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정 목사느 "예수님은 도리어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고 하시고,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하신다"며 "빌립은 성경에 두세 번 정도 등장한다. '오병이어' 사건 중에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주님께서 어떻게 하실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려고 물으셨다. 그리고 '헬라'인 몇이 예수님을 뵈려 할 때,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할 때 등에 등장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 목사는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인 '나다나엘'을 주님 앞에 인도한다. '수가'에서 물동이를 두고 마을에 가서 "와서 보라!"고 예수님을 전했던 여인은 이름도 알 수 없지만, '수가'성 전체를 예수님께 인도했다"며 "그 때, 물동이를 두고 달려와 "와서 보라!"고 강권하는 바람에 주님께 왔던 이들이, 후에는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 때문이 아니라 직접 보고 들은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 하나를 주님께 인도하는 일은 이처럼 귀하다. 빌립은 그렇게 쓰임을 받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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