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직신학회 제4회 월례신학포럼
한국조직신학회 제4회 월례신학포럼이 줌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조직신학회

한국조직신학회가 지난 25일 오후 8시 월례신학포럼을 온라인 줌을 통해 진행했다. 이날 최성수 목사(은현교회 교육목사, 조직신학)가 ‘죽음을 어떻게 적합하게 말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최 목사는 “죽음에 대한 의식과 태도에서 변화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저항하고 배제하고 회피하던 죽음에 대해 사회는 순응하고 포용하고 또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환영하려고 한다”며 “죽음을 매개로 인간을 표현하고 인간다움을 드러내려고 한다. 죽음에 관한 생각을 인간을 이해하고 또 삶의 변화를 위한 동기와 근거로 삼는다”고 했다.

이어 “죽음의 의미는 생물학적인 차원을 넘어 실존적 및 철학적으로 새롭게 조명되어, 죽음이 더는 삶의 대적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인지되고 있다”며 “죽음을 말함으로써 삶을 말하고, 죽음에 관해 성찰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심화하고 외연을 확장한다. 죽음을 외면해서는 인간과 세상의 진실을 말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대중매체에서 회자하는 ‘죽음 인문학’은 죽음에 대한 인간학적 각성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다만 인간학적인 한계로서 죽음의 비극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에 관해 생각하고 말했다면, 오늘날엔 의미 있는 삶을 위한 매개로써 죽음에 관해 생각하고 말한다”며 “죽음에 관한 성찰이 행복한 삶을 증진한다는 의미에서 행복한 죽음(well dying)을 서슴없이 말할 정도다. 죽음은 삶과 더불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구성하는 두 초점이다. 그리고 행복한 삶을 위해 삶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 경향에서 죽음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 경향으로 바뀐 것을 ‘언어학적 전환(linguistic turn)’에 빗대어 ‘죽음학적 전환(thanatological turn)’이라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죽음의 재발견 물결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거세지는 상황에서 죽음학적 전환기에 합당한 죽음 교육이 없고 또 죽음을 함부로 말하는 일을 만나는 건 이해하기 쉽지 않다”며 “특히 죽음을 함부로 말하는 일은 일부 정치적 대중 집회에서는 흔하고, 대중문화에서나 일상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이는 유족의 마음을 아프게 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기독교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예컨대 일본(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과 호주(산불) 등에서 천재지변으로 인명 및 재산피해가 발생했을 때,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pandemic)이 되었을 때, 적지 않은 수의 그리스도인은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 혹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했다”며 “사실 기독교 안에서도 이런 발언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글은 많다. 그러나 이것을 방지할 대책에 관한 연구로까지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죽음을 적합하게 말하지 않고 오히려 함부로 말하는 건 죽음의 의미에 부합하는 행위가 아닐 뿐 아니라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스크루지 효과’(사람이 죽음 혹은 한계 상황에 직면하면 상대적으로 문화적으로 각인된 선한 가치와 의미를 붙잡는 경향)에 기대어 이루어지는 죽음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글들을 살펴보는 중에 사람들이 죽음 교육을 통해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삶의 의미로 대체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것은 죽음 그 자체가 갖는 신학적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죽음을 적합하게 말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하는 원인은 아닐지 의심하게 되는데,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죽음 교육을 통해 얻으려는 건 마땅히 해야 했으나 여러 이유로 그동안 미루었던 일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행할 적합한 동기”라며 “소위 삶의 의미를 완성하기 위한 ‘버킷 리스트’를 얻기 위함이다. 이것은 행위를 통해 자아를 인식하고 구성하려는 실용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 문화와 관습을 드러낸다”고 했다.

최성수 목사
최성수 목사가 한국조직신학회 제4회 월례신학포럼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한국조직신학회
그러나 “죽음을 직면하고 있는 사람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건 무엇이며,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아니면 내가 누구인지 죽음은 한 인격체가 그동안 어떤 존재로서 살아왔는지를 드러내는 시금석”이라며 “그러므로 기독교 죽음 교육에서 관건은 죽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삶을 준비하는 것이며, 버킷 리스트는 변화를 실천하기 위한 목록일 뿐”이라고 했다.

최 목사는 “죽음을 적합하게 말하는 일은 기독교적 죽음 교육을 강하게 요청한다”며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서 관건은 적합하게 말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적합하게 말하기 위해선 먼저 죽음의 의미를 맥락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둘째, 죽음을 적합하게 말하길 노력할 때 자기중심적 죽음 이해에서 벗어나고 또 죽음 교육과 생명 교육의 혼돈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리고 셋째, 특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죽음과 관련해서 겪는 문제 가운데 하나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은 타인의 죽음을 부적절하게 말하는 방식이며 또한 함부로 말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사자명예훼손이라는 형태로 법적으로 해결하기 전에 먼저 죽음을 적합하게 말할 수 있도록 돕는 의미에서 죽음 교육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죽음을 적합하게 말하는 문제는 이미 태동 단계에서부터 죽음과 부활을 말해 온 기독교에서 중시되었다”며 “그러나 누구보다도 죽음의 문제를 핵심으로 숙지하고 있어서 죽음을 적합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예상외로 그렇지 않은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죽음 이해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본질에서 죽음의 공적 차원을 외면했기 때문이고 또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왜곡했기 때문”이라며 “양자는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곧 하나님의 다스림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오해와 왜곡은 죽음을 공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일은 물론이고 말하는 일에서 잘못된 방식을 유발한다”고 했다.

이어 “기독교 죽음 교육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교육으로 이해하는 경향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것이 필요한 일이긴 하나 이것에 제한해서는 안 된다”며 “기독교 죽음 교육은 신앙의 종말론적인 지평 때문에 단지 죽음 전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만을 과제로 삼을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종말론적인 지평으로 인해 기독교 죽음 교육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실천하고 하나님 나라의 존재를 증언하기 위한 삶의 교육”이라며 “이것은 죽음 교육이 먼저는 부활(생명) 교육이어야 함을 환기하고 또 이 땅에서 살아내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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