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모 교수
류현모 교수

민주당이며 기독교인인 버락 오바마는 2004년 일리노이 상원의원으로 출마하며 상대당 후보로부터 동성애, 낙태에 대해 찬성하는 자는 선량한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다원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다. 나는 상원의원으로 출마하는 것이지 성직에 출마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자의 답변을 했고 선거에 이겼다. 2년 뒤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왔을 때 그는 종교와 윤리 문제해결 없이 정의와 권리의 문제를 제대로 결정할 수 없다는 조금 다른 대답을 준비했다. 비록 낙태를 찬성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가 진심으로 낙태를 찬성했는지, 진보진영의 표를 위해 본심과 다른 선택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낙태문제, 동성애문제, 줄기세포문제 등은 모든 후보들에게 항상 주어지는 질문이다. 낙태문제는 ‘언제부터 인간인가?’라는 도덕적 종교적 입장을 정리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고, 누구도 여기에서 중립을 취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낙태가 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것인가 아닌가가 논의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동성혼 논쟁 역시 이 결합이 국가가 보호하려는 혼인의 범주에 들어가는지 그래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보호받아야 마땅한지가 논쟁거리이다. 따라서 그 바탕이 되는 도덕적 문제를 피할 수 없고 기독교인이라면 그 기준이 성경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 즉 인본주의 신학은 그 기준을 바꾸어 버린다.

마이클 샌델은 하버드대학 정치철학 교수로 “정의”에 대한 강의로 유명하다. 그 강의를 정리한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다. 그는 사람마다 정의(justice)를 다르게 정의하기(define) 때문에 그 작업을 먼저 수행한다. 세상에서 규정하는 3가지 정의를 제시하고 각각의 문제점들에 대해 평가한다.

첫째, 공리 혹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라고 보는 관점; 둘째, 선택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정의라고 보는 관점; 셋째,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라고 보는 관점이다 그는 이 세 가지 모두 불완전하며 부족한 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는 공동선과 미덕의 추구가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명확한 자신의 견해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철학은 질문을 제기하지만 질문에 답변을 주지 못하는 반면, 성경은 철학이 제기한 질문에 답변을 제시한다.”는 쉐퍼의 말처럼, 팀 켈러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같은 이름의 책에서 성경이 말하는 정의의 의미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는 “예수님이 이 세상을 다녀가시면서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신 정의가 있는데 왜 우리가 아직도 정의에 대해 말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예수님 시대와 다름없이 여전히 불의, 불법, 불공평이 판치고 있다. 성경은 강자와 약자에게 동일한 잣대로 그의 행위에 대한 합당한 보응, 즉 정의를 실행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관대한 정의의 시행을 명령한다.

성경적 정의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그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이 보여줄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는 십자가의 사랑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정의는 사랑을 행하는 정의이고, 은혜를 베풂으로 이루는 정의이다. 이 시대에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사랑의 마음이며, 사랑을 외치는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사회정의이다. 어느 한쪽이든 포기하면 온전한 사랑과 정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정의로운 사랑이요, 사랑이 가득한 관대한 정의이다.

췌장암으로 투병중인 팀 켈러 목사님의 “부활을 입다”라는 책이 2021년 부활절을 맞이하여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의 나라로 소개된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성전에서 낭독하신 이사야의 글을 통해 밝힌 사명선언에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 즉 정의를 이루는 것이라 밝힌다.

이 책에서 그는 성경적 정의의 구체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모든 사람을 법 앞에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성경은 ‘거류민에게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하게 할 것’이라고 명령했으며, 가난한 자와 부자를 법 앞에 평등하게 대우하고, 뇌물 때문에 편파적으로 재판하지 못하게 했다.

둘째, 자신의 소유를 아낌없이 베푸는 것이다. 성경은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각자에게 달란트를 다르게 주신 것과 받은 것은 받은 자의 권한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각 사람은 그것을 맡은 청지기일 뿐이다. 언젠가 자신의 달란트로 남긴 이윤과 그것의 사용 방식에 대해 주인 앞에서 반드시 해명해야 함을 경고한다. 그래서 많이 맡은 자에게 아낌없이 베풀 것을 추천한다.

셋째, 약한 자를 돕는 것이다. ‘말 못하는 자,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해 입을 열 것이며, 곤고한 자를 신원할 것이며’,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가난한 자 등 4대 취약계층을 도우라고’ 명령한다. 넷째, 공동체와 개인들은 어떤 사람의 행위에 대해 그에 합당한 보응을 되돌릴 것을 명령한다. 그리고 창조의 상태를 파괴하여 끼친 손해에 대해서는 원상복구 혹은 그에 합당한 배상을 명령한다.

이처럼 성경의 정의에는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다양한 요소들이 섞여있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양극화와 혐오를 유발하는 극단적인 패거리 정치를 피해야 한다. 그 대신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매 순간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협력의 파트너로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기독교인임을 밝히고,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우월감을 표하지 말아야 한다. 세계적, 국가적인 큰 담론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와 자신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작고 구체적 사안에 대해 성경적 정의의 실천을 위해 힘을 다해야 한다. 정의가 강물처럼, 공의가 마르지 않는 시내처럼 항상 흐르도록.

묵상: 오늘 나의 삶의 현장에서 행해야할 성경적 정의는 무엇인가?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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