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코로나19로 인해 멈춘 기독문화생활의 아쉬움을 돕고자 독자들에게 기독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기독 미술 작가 소개> 코너를 준비했다.

이번에 소개할 작가는 포스트잇을 사용해 작품을 표현해 포스티잇 작가로 알려진 이승원 작가이다. 이 작가는 예원학교, 서울예고를 거쳐 이대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영은미술관 단기 레지던시 작가, 케이블방송 ch37 “A&C 아트마트” 진행 등을 했다.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영은미술관에 소장되었다. 그동안 개인전 8회 및 서울에서 열린 ‘스펙트럼 전’ 등 50여 회 단체전시회에 참여했었다.

이승원 작가를 서면으로 만나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화가 이승원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초등학교 졸업앨범에 장래희망으로 ‘화가’를 써서 낼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아주 즐겨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초등 동창 중에 장래희망 직과 현재 직업이 일치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에 나름 신기하기도 합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중고등학교를 예술학교에 다니다 보니 어릴 때 꿈을 이룬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예술학교 학생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공 분야로 진학하기 마련이니까요.

저는 한 때 포스트잇 작가라고 불릴 만큼 오랜 시간 메모지로 작업해 왔습니다. 메모지 한 장이 한 픽셀을 담당하는 작품인데요. 작업에 필요한 독특한 재료인 포스트잇의 물량 승부에서 K.O 되었다는 생각이 어느 정도 듭니다. (웃음)”

-신앙을 시작한 계기와 기독 미술을 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시나요?

“중학생 때 죽음에 대해 깊이 묵상하며 무덤 속에서 육체가 부패하는 꿈을 자주 꿀 만큼 우울과 부정적인 요소가 뒤섞인 내성적인 소녀였습니다. 그즈음 지금은 선교사로 부름 받은 친구의 끈질긴 설득으로 수련회부터 발을 디디게 되었는데 방언과 통성기도로 밤마다 고통스런 두려움으로 3박4일 정도를 버티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주일 이유 모를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후 따끈따끈한 신앙으로 미션스쿨서 선교부장도 했지만 이중적인 삶에서 괴리감마저 느끼며 우울증이 20대까지 이어져오다 30대들어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독미술을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기독교인입니다. 작품을 대면하는 첫 인상이 차지하는 부분이 다라고 할 만큼 1, 2초 만에 결정되는 시각예술이기는 하나, 예로 포르노 같은 영상이 보기에 역할지라도 그 영상표출의 동기가 그 작가가 할 수 있었던 최대치 회개의 몸부림의 표현이라면 어떨까요? 에스겔서를 읽고 있노라면 잔인함과 분노가 뒤엉켜 고통스럽지만 반전으로 그 안에서 하나님의 끈끈하고 깊은 사랑을 보잖아요. 그러나 이런 유의 작품을 기독미술에서는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기독 미술 작품을 그리고 계신가요? 그동안 작업을 하시면서 은혜 받은 게 많을 텐데요. 그 은혜를 나눠주세요. 그림 그리시면서 얻는 보람은 어떤 게 있을까요?

“17년도에 14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육체의 알 수 없는 가시 같은 병도 있었지만 고난과 동시에 부어지는 폭포수 같은 은혜 속에서 예술이 한없이 부질없게 대조되는 시간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삶으로, 존재로 말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아픈 만큼이나 표현의 욕구를 강하게 주셨습니다. 생각하는 것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 감옥 같고 답답하기까지 이르렀지만, 역시 문제는 생각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일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거창할 것 없이 지금 제가 처하고 고민하는 삶을 그려내는 것이 가장 절박했습니다.

1년에 한번씩 작업실 이사를 하면서 정리하고 다시 짐을 싸고 옮기고 다시 짐을 풀어 정리하는 과정이 제게 극심한 고문과 학대로 다가왔고 소유, 집착들이 손 댈 수도 없는 가시로 변하여 찌르기 시작하여 만성두통으로 변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은 경험했을 것이며 ’미니멀 라이프’라는 슬로건 아래 열풍처럼 사회에 대두되기도 했습니다. 혹자는 ‘버리면 되지’라고 말하지만 잘 버리지 못하는 성향 때문인지 저에게 물건이라는 존재는 집착에 가까운 관심 화두가 되었습니다. 아니 ‘짐짝 처분’이었습니다. 제가 한 곳에 정착하기 위해 고려하기 시작한 것은 이 꺼내보지도 않는 짐짝들이 안전하게 들어가기에 비좁지 않아야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왜 이 과정을 반복하는가? 나는 귀중한 시간을 지금 어디에 사용하고 있는 건가? 인생이라는 짧은 여행에서 짐 가방이 많아 단촐하게 훌훌 어디든 떠나지 못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어느 곳으로 향하여 가고 있기에 이것을 고이 포장하여 다음 숙소로 이동하는가? 이 땅에서 지금 이 모습이 과연 나그네가 맞는가?’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들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없어서 불편할 지라도 물건과 이별해야만 했고 그 이별의 작업으로 물건 하나하나를 기억하기 위해 그리기라는 작업을 택했고, 자세히 관찰하여 세필로 그려내고 떠나 보내는 이별 연습을 시작했으며 그것은 천국 본향으로 가기 위한 연습과도 같았습니다.”

-본인의 대표 작품 소개 부탁드려요.

이승원
정신분열 가변크기 벽에 포스트잇 2004 ©이승원 작가 제공

“첫 번째 작품은 설치 작품으로 전시장 벽을 포스트잇으로 다 두른 개인전 작품으로 포스트잇 작품을 마무리 지은 작업이기도 합니다. 앞선 질문의 답변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목이 강렬해서 목사님께 전시 엽서조차 드리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벽에 펄럭거리며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며, 형형색색 화려한 옷을 입고서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허우적대며 가짜와 진짜를 분별해 내야 하는 우리의 현시대를 포스트잇으로 대변하였습니다. 어느 분이 포스트잇을 보면 정신분열이라는 용어가 젤 먼저 떠오른다는 말씀에 개인전 타이틀과 작품 제목으로 붙였고 그릇이나 담고 있는 내용이나 함축하여 보여주는 타이틀이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소개시켜드리는 작품은 14년 만에 연 개인전 때 작품인데도 <정신분열> 작품과 똑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세 작품이 멀리서 보면 다 점이며 현란한 색의 나열로 같은 작업입니다. 결국 세 작품을 같이 나란히 걸어 보여 주게 되었습니다.

이승원
이정승원 평면 그대 쉴 곳 어디 있나요 acrylic on canvas 292x17cm 2016-2017
안쓰는 물건을 정리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남으로써 가장 중요한 시간을 빼앗기고 만다. 가시나무 새의 고백처럼 내 안에 나는 너무나 일로 분주하다. 분주함과 이별하고 심플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의무이다.
©이승원 작가 제공

두 번째 작품은 바로 위 질문에서 언급된 이별연습 작업으로 이미 내보냈거나 내보낼 물건들을 1호 세필로 하나하나 그리기 시작하는데 물건의 선택은 첫 번째 작품의 색상과 일치합니다. 색상의 균형을 맞추고 싶었습니다. 한동안 정상생활을 뒤로 한 채 아침에 일어나 아침 먹고 그리고 점심 먹고 그리고 저녁 먹고 자기 직전까지 최선을 다해 그려도 10개 이상을 그리지 못했으며 일년 동안을 꼬박 그린 듯합니다. 그리는 과정은 처음은 행복한 이별로 시작했으나 물건이 주는 무게의 고통만큼 똑같은 고행의 이별이었습니다.

<그대 쉴 곳 어디 있나요>라는 제목처럼 물건을 찾고 정리하고 다시 꺼내고 또 정리해야 하는 시간으로 하루 일상에서 차지하는 시간과 인생의 허비가 너무 억울하고 어리석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또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승원
이정승원 평면 그대 앉을 곳 어디 있나요 acrylic on canvas 112x112cm 2017
‘그대 쉴 곳 어디 있나요’와 시각적으로나 내재된 의미로나 같은 작품이다. 멀리서 보면 모든 것이 점으로 보이듯 그것이 그것이다. 하나 하나의 잡다한 물건의 소유와 분주함이 내게는 가시로 돋아나고 그 누구도 내게 쉬러 올 수 없는 슬픔으로 변했다.
©이승원 작가 제공

두 번째 작품을 멀리서 보면은 형상은 보이지 않고 색상의 발라짐만 남아 있고 더 멀리 보면 색색의 점의 나열입니다. 세 번째 작품은 그 점의 나열이며 인생의 짐이며 가시입니다. 물감을 짜서 뾰족한 상태로 짜내어 올려진 물감들은 실제로도 너무 뾰족하여 그림자체가 위험해 제가 다친 적도 있습니다, 가시나무새처럼 내가 너무 많아서, 예민하고 날카로우며 빼곡한 일정으로 누가 와도 쉴 자리가 없습니다.

이승원
작품 그대 앉을 곳 어디 있나요 옆면에서 본 물감 상태 ©이승원 작가 제공

제목은 <그대 앉을 곳 어디 있나요>입니다.

이승원
이정승원 입체 drawing of life 2020 medical use& supply of water tube 50×40cm 2020
당황스러움과 고통과 불신 그리고 무질서함 속에서 혼돈스러움에서 사랑과 생명이 보인다.
©이승원 작가 제공

네 번째 작품은 입니다. 가장 최근 작업입니다. 코로나를 겪으며 잊을 수 없는 일상을 표현했습니다. 재료에 의미를 담고자 했기에 의료, 급식 튜브로 엮었는데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창작은 한계가 있다고 여겨진 작품입니다.”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며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1년이란 시간을 지내면서 불편함으로 무뎌져 대부분 지내고 있는 듯 하지만 분명 새 시대를 맞이했다고 보여집니다. 외적으로도 시스템이 많이 변했기에 세상적으로 달라졌지만 깨어 있는 자들의 영적 세상은 더 긴장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게 되네요. 마치 나에게 시한부 삶이 주어진 것처럼 사랑함에 있어 치열해집니다. (웃음)”

-작품에 대해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얼마 전 동료작가께서 drwaing of life 시리즈를 자신의 SNS에 올리셨는데 심리학 교수가 댓글을 달아주셨어요. 가까이에서 보면 무질서하고 어지럽고 불신 같아도 멀리서 보니 다 사랑이었다고요. 제가 인지하지 못했던 세상관의 피드백이 너무 감동이었습니다. 피드백을 전달 받으면서 작가와 관람객의 시각 차이점에 대해서도 한참을 동료와 나누며 무릎을 치던 행복한 기억이 있습니다.

저와는 다른 예이지만, 어릴 적에는 <무제>라는 작품제목에 의아해 할 때가 있었지만 무제로 정함으로써 작품을 보는 이들이 자신의 감성으로 더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믈론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 제목을 붙일 찌라도 해석은 관객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관람을 하는 재미이자 평론가들에 의한 작품 가치평가가 아닌 관람자의 작품 보는 안목을 높이게 하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웃음)”

-앞으로의 계획을 나눠주세요.

“미술계에서 잘나가던 또래의 중견작가 부음 소식을 근래에 자주 접하며 부귀영화 명성을 고루 누리며 남긴 인생의 허무함을 부쩍 느끼던 차입니다. 작업을 하는 이유가 더 분명해지는 시기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계획을 세우는 것조차 무상하지만 각오는 하고 있어요. 다시 작업을 해야 하겠다고 시작했을 때는 크리스천으로서 바라보는 문화와 사회를 바라보고 해석하고자 하는 욕구와 의무입니다. 그러한 책임감이 없다면 설 자리 없는 중견작가가 예술이라는 것이 허무에 그칠 수 있는 가장 큰 장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유명한 작가와 좋은 작가는 분명 다른데 좋은 작가가 되고자 하는 바람만 남았습니다.”

이승원
포스트잇 쪽지로 작품을 만들어 한 때 포스트잇 작가로 불렸던 이승원 작가 ©이승원 작가 제공

<이승원 작가 (온누리교회 안수집사) 프로필>
1992,1995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85,1988 예원학교, 서울예고 졸업
-경력-
2016 영은미술관 단기 레지던시 작가
1999 케이블방송 ch37 “A&C 아트마트” 진행 등
-소장-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소장, 영은미술관 소장
-전시-
개인전 8회 및
2008 ‘스펙트럼 전’ 서울 시립미술관기획전
2004 SEMA2004 ‘6개의 이야기’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4 인사미술공간 4주년 기획초대전 인사미술공간 서울
등 50여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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