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모 교수
류현모 교수

각 종교에는 그 종교의 교리가 선포되는 모임과 그것을 전파하려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집단이 존재한다. 기독교의 교회, 이슬람의 모스크, 불교의 절처럼 다른 종교도 그들의 회합이 있다. 반면 이 시대의 인본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나 포스트모던 같은 무신론의 믿음은 교실을 통해 전파되고 있다.

기독교에서 교회란 복음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인 사람들의 집단을 말한다. 교회는 죄에 대한 회개와 구원에 대한 진리를 선포함으로써 개인과 사회를 하나님 앞으로 돌려놓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세상에 제시하는 참된 공동체의 모범을 보여 줄 의무가 있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부부의 관계로 비유하며, 사랑과 존경의 공동체가 되기를 촉구한다. 이 공동체의 가장 기반이 되는 것이 가정이다. 가정은 그 자체로 교회여야 하며, 믿음의 가정들이 연합하여 지역교회를, 또 그 울타리를 넘어 전체 교회로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임무를 맡았다. 교회는 국가 속에 존재하지만 국가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임무가 있으며, 가정과 교회는 안전하고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려는 국가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이슬람에서는 가정, 교회, 국가 같은 사회적 기관 사이에 구분이 없다. 가정이나 국가는 그들의 사원인 모스크만큼 종교적이어야 한다. 이슬람은 종교이면서 정부이기도 하다. 이슬람이 복종을 의미하는 만큼 그들의 가정, 모스크, 국가 모두 권위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가정에서는 가장의 가부장적 권위에, 모스크에서는 이슬람 율법을 해석해 주는 이맘의 권위에, 국가에서는 권력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모슬렘들이 따라야 할 원칙이다. 이슬람은 신의 계시인 코란을 연구하는 것조차 신성모독으로 여기기 때문에 신학이 잘 발달될 수 없다. 제기되는 모든 의문은 지역 모스크에서 이맘의 해석으로 해결되며 반복적인 질문은 도전으로 간주된다.

무신론인 인본주의와 공산주의에서는 가정과 교회의 역할을 교실로 이전하고 있다. 공립학교의 교실은 무신론 신앙을 퍼뜨리기 위한 사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인본주의자들은 가르치는 것은 교실보다 훨씬 멀리까지 미치는 정치적 영향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존 던피는 휴머니스트라는 인본주의 잡지에 ‘새 시대를 위한 종교’라는 글을 통해 학교 선생님들을 일종의 성직자라고 묘사했다. 존 듀이는 그의 저서 ‘A common faith’에서 인본주의를 종교라고 보고 있다. 공립학교가 인본주의 교과과정을 채택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자신도 모르게 교실을 인본주의의 가치를 전달하는 사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본주의자들은 종교와 국가를 분리해야 하며 국가는 종교에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인본주의자 선언3>에서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다른 종교를 배제하고 무신론이라는 종교를 주입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가정은 프롤레타리아들이 혁명에 나서는 것을 저해하는 기관이다. 교회는 노동자들에게 혁명을 통한 사회개혁이라는 근본적인 치료 대신에 통증만 달래주는 인민의 아편으로 타파되어야 할 구시대의 기관으로 규정짓는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전 가정과 교회는 자본주의의 악덕을 전수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혁명이후 교실은 가정을 대신하여 아이들을 양육하고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주입하여 공산사회에 부합하는 노동자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전환된다. 그 교육의 내용은 무신론과 유물론적 과학이 될 것이며, 교실을 통해 기존의 부르주아 문화는 혁명적으로 삭제되고 새로운 문화로 교체될 것이다.

뉴에이지 역시 교실을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전당이라고 보고 있다. 전 인류의 미래를 건 전투가 교실에서 수행되고 있으며 승리는 새로운 신앙의 전도자로서 사명감을 정확히 자각하고 있는 선생님들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마릴린 퍼거슨은 뉴에이지 전문직 종사자 중에서 교육자가 가장 많으며 그들이 뉴에이지를 이룰 새로운 세대를 양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공립학교 교육에서 가치의 명료화나 도덕적 상대주의가 정착되어 가는 것을 보면 뉴에이지 교사들이 그 새로운 종교의 기반을 교육 속에 형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포스트모던은 전통적 교실에서 가르치던 주류의견만 강조할 것이 아니고 소외된 소수 즉 유색인종, 여성, 성소수자, 가난한 자의 의견에 귀 기울일 것을 주장한다. 이런 특성은 대학 교육에서 더 두드러지는데, 학교에서 제공되는 과목들도 전통적 과목은 사라지고, 인종, 성별, 인권 같은 주제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 소외된 소수에 대한 억압을 해소하는 것이 정의며, 진리이고, 정치적 정당함이라고 가르친다.

이처럼 무신론의 신앙이 교실이라는 사원을 통해 전파되는 동안 우리의 가정과 교회는 다음 세대를 그들에게 내어주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육/문화명령(창 1:28)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대도시의 비싼 주거비용으로 인해 젊은 부부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맞벌이가 필수적일 수 있다. 부부가 같이 일하기 위해서는 자녀의 양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무신론적 이상주의(인본주의, 공산주의)에서는 그 일을 정부나 당이 맡아서 하겠다고 선전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영-유아기는 각 개인의 세계관 선글라스에 바탕색이 칠해지는 시간이다. 기독교 가정의 부모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자녀들에게 알릴 수 있는 이 독점적 기회를 헛되이 보낼 수 없다. 자녀 교육은 부모에게 맡겨진 가장 큰 의무이고, 그 방법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려주셨다(신 6:4~9). 이 진리를 사랑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지역교회와 각 가정의 형편에 따른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묵상: 교실이 무신론의 전당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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