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김진섭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오상아 기자

29일 오후 2시부터 백석예술대 아트홀에서 진행된 백석남북통일위원회(위원장 양병희 목사) 창립포럼에서 '구약성경으로 읽는 남북통일 운동'을 주제로 발제한 김진섭 교수(백석대 구약신학, 백석예술대 부총장)는 "지금 한국교회의 쇠약과 타락이 남한 사회 전반에 임한 총체적 위기의 일차적 원인과 책임이며, 따라서 모든 교회와 성도의 참된 회개의 열매와 순종의 부흥만이 통일한국과 선교한국의 비전과 사명 완수의 지름길임을 공감하게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먼저 "레위기 26장의 복과 저주의 구조분석과 주권, 국민, 영토의 범주화에서 복과 저주는 언약백성으로서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성의 여부에 우선적으로 의존함을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복음적인 '언약의 가정'에서 양육된 김일성이 주 예수님의 복음을 배도하고 주창했으며 그 아들 김정일과 그 손자 김정은에 의해 세계 현대사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악의 축' 3세대로 '주체사상'이 계승되어 왔다"고 했다.

그는 "그에 따른 기독교말살 운동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자신을 신격화하여 북한 전역에 약 3만5천개의 우상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함으로 인해 초래한 '주권의 저주'가 곧바로 '국민과 영토의 저주'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김진섭 교수   ©오상아 기자

덧붙여 "김일성의 어머니 강신희의 집안은 장로가 되지 목하면 집안 회의에 얼굴을 내밀지 못할 정도였고, 그의 외할아버지 강돈욱(형욱)은 칠골 하리교회 장로로서 그 교회를 직접 세웠다"고 했다.

또 "강돈욱의 6촌 동생인 강량욱 목사는 조선 기독교연맹의 창설자 겸 부주석을 역임했다"며 "김일성의 부친인 김형직은 강신희의 전도를 받은 후 결혼하여 칠골하리교회 집사가 됐고, 결혼 후에도 숭실중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그는 "강신희는 전도에 매우 열심이어서 그것을 지켜본 빌리 그래함 목사의 장인인 벨(L. Nelson Bell) 의료선교사가 강반석으로 고쳐 주었고 지금에까지 북한에서 사용하는 공식이름이 되고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고 했다.

김 교수는 "강반석이 칠골 하리교회 권사로 봉사하는 동안 어린 김일성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주일학교에 다녔다"며 "강반석이 1932년 굶주림과 병으로 죽을 때, 성경 한 권을 아들 영주에게 주면서, '이 성경을 꼭 성주(당시 김일성 본명)에게 전해주고 성경책을 절대 손에서 놓지 말고 해방이 되거든 전국 방방곡곡에 교회를 더 많이 지어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일성은 길림 유문중학교 시절에 매우 열심히 교회를 다녔으며, 성탄절에 성극을 할 때는 꼭 예수님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며 "김일성은 분명히 언약의 가정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은 그의 뒤이은 배도를 이해하는데 충분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언약파기자는 자신에게 임한 저주를 인정하며 죄를 자백하고 자신을 낮추며 죄의 값을 달게 받고(40-41절), '그 악한 길들에서 돌이키는' 회개의 열매를 맺는다면(특히 대하7:14 참조), 하나님께서 언약의 복을 회복하실 것을 확정함으로(42-45절) 레위기 26장을 끝맺음은 성경 전체가 강조하는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라는 핵심적인 진리의 확증인 것이다"고 했다.

이어 "문제를 인정하고, 직면하고, 돌파하는 하나님의 해법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1)스스로 겸비하고, (2)기도하여, (3) 내 얼굴을 구하고, (4) 자기의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치유할 것이라'(14)고 약속한다"며 "역대하 7장14절은 남쪽 유다 왕조 이야기는 물론이요 남북통일 운동의 성경적 출발점을 이해하는 마스터기와 같은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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