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세대 및 계층 간 갈등을 봉합하고, 생명의 가치와 선(善)의 실천을 위한 노력하자.
한국교회는 코로나 극복, 공공 가치형성 및 공동체의 미덕을 제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 실천하자.

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 ©기독일보 DB

새롭게 맞이하는 2021년 한국사회를 향한 희망을 피력하고자 한다. 지난 한 해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위로가 가득하기를 바란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 및 심적 타격을 입었다. 발생 1년만에 1억명 확진이 임박한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에서 전 세계 인류는 위기상황을 모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의료선진 국가들이 연구에 몰두하여 마침내 화이저,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보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샬롬나비는 새해 2021년에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한국 사회에서의 갈등과 경제적 위기 극복을 위한 우리 사회의 희망과 바람을 제안한다.

1. 우리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의 힘을 더욱 발휘해야 할 것이다.

지난 한해 전 세계를 비롯해서 우리 사회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삶의 피폐함을 경험했다. 자영업자들을 비롯해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더 이상 출입이 불가능할 정도로 경제적 타격이 심했다. 하지만 이 힘든 시기에 우리는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 위기를 극복해 가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1997년 IMF 외환 위기를 겪었다. 당시 경제적 위기는 물론 대량 실직 사태가 발생되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금모으기 운동을 시작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원조를 받았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된 국가의 저력은 당시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결국 우리 국민들은 힘을 모아 다시 한 번 위기에서 강한 나라의 면모를 전 세계에 보여주면서 외환 위기를 잘 극복하고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위기 또한 잘 견뎌 낼 것이다. 우리는 K방역이라는 모범을 보이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 이면에는 의료진들의 피나는 희생과 국민들의 거리두기 노력이 수반되었기에 때문에 가능할 수 있는 일이었다. 12월 3차 유행 본격시에는 몇주 동안 천명대의 확진자가 기록되었으나 1월 중순 이후 이제 5백명 이하로 확진자가 감소되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서는 코로나 3차 대유행이 모두 지나갔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다가온 2021년에 우리는 더욱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줄 때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기적인 행동, ‘나 하나 쯤이야’라는 식의 태도에서 벗어나 정부와 의료진의 지침에 따른 방역 수칙(마스크 쓰기, 손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등)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2.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선(善)의 실천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차이나 가치관으로 인해 갈등이 빈번히 발생된다. 세대 간의 갈등, 지역 간의 갈등, 이념과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갈등의 양상 등 다양한 이유에서 시작된 갈등의 요소들이 산적해 있다. 우리 사회는 국민 소득 3만불에 도달했으나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기에는 아직 여유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나의 기준이나 내가 속한 공동체의 가치관과 다를 경우, 서로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기에 앞서 비판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서로 다른 가치관에 대해 포용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양을 구하면서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양이 가다가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고 하면 그것을 잡아 끌어내지 않겠느냐?”라고 물으면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의 가치를 언급했다(마12, 10-12). 마찬가지로 당시 유대사회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당위이자 의무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선순위를 생명의 가치와 보호에 두고 당시 사회의 가치관과 달리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예수님은 선의 궁극적 실천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다른 전통이나 가치관으로 인해 갈등이 생겨날 수 있다. 비록 갈등이 ‘다름’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선(善) 앞에서는 다름이나 갈등을 양보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갈등이라는 요소를 봉합하고 궁극적인 가치 곧 최고선을 추구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자본주의와 생명 경시의 풍조로 인해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2021년 우리 사회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의 갈등 사이에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궁극적 선’이다. 성경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고 말한다.

3. 대통령은 세대 및 계층 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화합과 용서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화해의 제스처로서 우리는 협력과 양보로 선을 이루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임기 1년 4개월을 앞둔 대통령이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하여 “아직은 사면을 논할 때가 아니다”고 사회각층과 여당 대표가 제의한 화합의 제의에 화답하지 아니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4년 동안의 적폐 청산은 서로를 헐뜯고 무너뜨리고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만들어 왔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면서 후임 트럼프에게 다음 편지를 남겼다: “우리는 이 집무실을 잠시 거쳐 가는 사람들이다. 법치와 권력분립, 평등과 자유, 민주주의 수호자가 돼달라.” 대한민국 대통령도 미국 대통령이 후임에게 당부하는 말을 경청하고 남은 재임기간 실천해주길 당부하고 싶다.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하고 함께 사회 건설로 나아가는 통합과 화합의 정치가 필요하다. 프랑스 비시 정부 시절 나치 부역자 청산의 모범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그 나라에서도 실제로 벌어진 것은 내 편 봐주기와 네 편 처단이었다. 전후 프랑스에 불어닥친 청산의 광기를 중단시킨 주인공은 프랑스 국민이었다. 프랑스 시민들은 적폐 몰이에 열중하던 공산당과 사회당에 사실상의 선거 패배를 안김으로써 9년에 걸친 칼춤을 잦아들게 했다.

남아공 만델라는 반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반대) 운동을 전개하다가 투옥되어 27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1993년 만델라는 석방됐고, 1994년 남아공 최초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한 평등 선거 실시로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세계인권운동의 상징이 된 만델라 대통령은 백인에 대한 정치적 보복을 하지 않고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설치하여 7,112건의 사면 요청과 849건의 사면을 처리하여, 과거사를 청산하고 흑백갈등이 없는 국가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남아공의 백인 소수의 통치 하에서 수 세기 동안 엄청난 억압과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수가 없는 나라를 주장했던 만델라 대통령은 분노와 한을 품은 사람들에게 국민통합과 국가 미래 역사에 정치적 실천을 보여주었다. 남아공의 만델라의 용서와 화해의 정치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다. 이것이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아이콘’일 것이다.

4. 사회 구성원들은 집단 이기주의를 버리고 공동체의 덕을 지향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집단 이기주의로 인해 몸살을 앓아왔다. 소위 님비(NIMBY) 현상으로 인해 우리는 ‘내가 속해 있는 집단’만 생각하는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있었다. 서로 다른 공동체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은 상실된 채, 자신이 속한 공동체만 잘되면 된다는 식의 공동체적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있다. ‘내 뒷 마당은 결코 안 된다’라는 이기주의를 과감히 버리고 공동체의 덕 윤리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공동체의 덕 윤리는 배려와 양보의 윤리로 요약될 수 있다. 배려와 양보는 현대 사회 윤리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들이다. 과거 전통적 윤리에서는 우리는 ‘의무감’ 또는 법칙에 따른 삶을 사는데 우선순위를 두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윤리는 단순한 의무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의 인간성에 초점을 둔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가 ‘나는 성숙한 윤리적 행위를 하는 사람’으로 이어지는 휴머니즘의 가치를 실현해야 할 것이다. 개개인 모두가 성숙한 시민의식과 휴머니즘에 기초한 행동을 할 때 사회 전체는 공동체의 덕을 지향할 수 있을 것이다.

5. 다음 세대를 위한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사회적 풍토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하게 고민되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청년실업이다. 오늘 사회구조는 그들의 꿈을 빼앗아가는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많은 청년들이 꿈과 희망을 접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젊은이들에게 꿈을 빼앗아가는 사회적 구조들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들은 미래 세대를 이끌어갈 주역들이다. 그들이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우리들은 그들의 미래를 위해 응원해야 할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농업학자요 교육자 윌리엄 클라크(William Clark, 1826-1886)는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라는 말을 남겼다. 이 명언은 그가 근대화를 추구한 일본 정부의 초청을 받아 백년 전 홋가이도 농업학교의 총장으로 취임시에 한 말이다. 아시아에서 근대화의 선두주자 일본은 이미 19세기에 서양의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이들로부터 비전을 수용하였고, 이들은 청년들에게 많은 감동적인 명언을 남겨주었다. 그의 교육적 감화는 우지무라 등 메이지유신의 지도자들을 배출하였다.

우리 한국에서 근대화의 지도자 도산(島山) 안창호(1878-1938)는 우리 청년들에게 더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청년이 다짐해야 할 2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 속이지 말자. 둘째, 놀지 말자. 나는 이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청년은 스스로 생각할 때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 “우리 가운데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이 인물이 될 공부를 하지 않는가.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자가 되라.” 한국 사회와 교회는 이러한 근대화 지도자들의 위대한 사상을 이어받아 실천 모범을 보여주어 오늘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6. 한국교회는 사회의 공공 가치를 만들어 가는 데 참여해야 하고, 공동체의 미덕을 제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의 구성원이자 동시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교훈을 남겼다. 우리는 그 동안 ‘네 이웃의 아픔’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그들이 아플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했는지 다시금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성경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온다. 우리는 이웃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에 대해 성찰의 시간을 필요로 해야 한다. 예수는 우리에게 “누가 네 이웃인가?”라고 묻고 있다. 지금 코로나로 인해 사회 곳곳에서 이웃의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린다. 역사적 기독교회는 사회적 재난에서 도피하지 않고 희생적으로 저들에게 찾아가 사랑을 베풀고 저들의 피난처의 역할을 하여왔다. 한국교회는 이들의 소리를 경청하고 사회적 치유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곁에는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이웃,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이웃들이 있다. 2021년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위를 돌아보고 그들의 소리에 응답하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7. 한국교회는 대면예배나 비대면예배를 둘 다 필요한 예배의 중요한 방식으로 수용하여 현장예배(성도의 교제를 위한 대면예배)와 사회적 공감성(방역을 위한 온라인예배)을 충족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 속에서 정부의 코로나 파시즘에 저항하면서도 국민들의 생명을 중요시하고 사회적 공공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최대한 정부 방역지침에 협력하여 왔다.

방역 당국이 1월 18일부터 교회에 대해 정규예배만 수도권의 경우 좌석 수의 10%, 나머지 지역은 20% 내 대면예배를 허용하기로 했다. 2021년 1월 넷째 주일인 24일 전국 교회는 새해 들어 처음으로 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주일 대면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 조치는 교회 편에서 볼 때 만족스럽지 못한 미흡한 조치이긴 하지만 사회적으로 덕을 세우기 위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방역수칙을 거부하며 대면예배를 고수하고 있는 교회에 대해선 예배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복음적 충정에선 충분히 공감한다. 그럼에도 감염병 상황에서 공교회가 방역지침을 거부함으로 일반 시민들의 우려와 사회적 파장을 확산시켜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훼손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복음 전파를 위하여 사회적 감수성과 공감을 보여주어야 한다. 바울이 가졌던 약함으로 강해지는 신앙이 이럴 때 필요하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이러한 약함을 자랑하게 될 때 개신교 단체들은 서로를 존종하고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단합된 의사를 정부에 겸허한 태도로 건의할 수도 있다.

정부의 시책이 미흡할지라고 교회는 정부를 적(敵)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최대한 인내를 갖고 공동선을 이루도록 힘써야 한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사회적 감수성, 공감과 신뢰성을 각인시키는 중요한 자산(資産)이 될 수 있다. 보수와 진보 진영 교회 연합체가 이러한 겸허한 태도로 하나의 창구가 되어 정부를 설득하여 대면예배를 위한 최대한의 허용을 받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2021년 1월 25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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