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성 사무총장
전혜성 사무총장

얼마 전 일본 출신 방송인인 사유리 씨가 정자 기증을 통해 비혼 출산을 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여당과 정부 일각에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즉각적으로 '비혼 임신 합법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중에게 친숙한 연예인들을 통해 해당 이슈를 법제화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사유리 씨는 언론을 통해서 “한국에서는 모든 게(비혼 상태에서의 임신과 출산) 불법이고 결혼하는 사람만 시험관이 가능하다.”고 발언함으로써 한국 사회가 마치 국제적 흐름에 뒤떨어지는 폐쇄적 사회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을 통해서 사유리 씨는 한국에도 ‘비혼 출산’에 대한 의식 변화와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우리나라는 모자보건법에서 인공수정과 같은 보조생식술을 받을 수 있는 '난임' 상태를 부부인 경우에만 한정하여 인정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비혼 상태에서의 보조생식술은 법적으로 허용되는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 제 13조 3항은 상업적인 생식세포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자 공여와 난자 공여, 대리 출산 등은 지금까지 엄격한 생명윤리에 입각하여 시행되어 왔다. 이 보조생식술은 어디까지나 난임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부부들을 돕기 위해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허락되어 왔다.

그러나 소위 서구 선진국이라는 몇몇 나라에서 이 보조생식술은 비혼 상태인 개인 뿐 아니라, 레즈비언 커플이 아기를 갖도록 하는 방법으로 법제화되고 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혼인과 자연스러운 성관계를 통해서 자녀를 얻는 인간 사회의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매우 인위적인 방식으로 자녀를 만들어내고 있다. 더 나아가 ‘맞춤형 아기’에 대한 논쟁도 이미 시작되었다. 우생학적으로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정자와 난자를 사고파는 행위와 이를 통해 인간은 유전적으로 계획되고 조작되고 생산될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내 몸은 내 맘대로

임신과 출산은 여성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이며 고유한 영역이다. 그동안 수많은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성행위, 임신과 낙태, 출산과 같은 생식과 관련된 일련의 행위를 여성 자신의 독자적인 결정에 따라 행사할 권리를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그들이 자기결정권과 함께 말하는 것이 재생산권이다. 재생산권이란 쉽게 말해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낳을 수도 있고 아이를 죽일 수도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아이를 죽일 수 있는 권리를 ‘임신 중지’ 혹은 ‘임신 중단’ 말로 포장하지만 이는 사실상 지금 이 아이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죽일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말하는 재생산권에 또 한 가지가 포함되는데, 그것은 비혼 상태에서 아이 낳을 권리이다. 이른바 번식의 권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마치 이들이 생명과 출산의 가치를 중히 여기는 사람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생명의 시작과 종기를 자기 스스로 결정함으로써 생명의 가치를 무참히 짓밟고 있다.

‘낙태’와 ‘내 맘대로 임신’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런 정신분열적 사고의 기저에는 급진 페미니즘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흐르고 있다. 급진 페미니즘의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은 모든 여성들이 권위적인 가부장적 제도 아래서 억압받는 상태이다. 반면에 그들이 추구하는 유토피아는 가부장적 헤게모니를 와해시키고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완전히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해방의 상태이다. 그들에게 전통적인 결혼 관계 안에서의 임신과 출산은 일방적인 희생과 고통을 짊어지는 불평등 속으로 들어가는 지옥문과 같다. 그들은 결혼과 가정을 거부하고 노동하는 개인의 삶을 추구하도록 충동질하고, 결혼과 상관없이 자발적, 주체적으로 행하는 임신과 낙태, 출산을 모두 자신의 권리로 인식하고 행사하고자 한다. 사유리 씨의 출산은 이 재생산권의 행사인 것이다.

해체되어가는 가정

한국여성연합에서 발표한 『21대 총선 젠더정책 자료집』에는 우리 사회가 가정을 ‘이성애 혈연 중심 정상가족 모델’로 규정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배제하고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역시 ‘정상 가정’의 굴레에서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말한다. 페미니스트들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이루는 자연적 질서에 따르는 ‘전통적 결혼과 가정’을 거부하고 다양한 가족을 얘기한다. 여기에 젠더 이데올로기까지 가세하여 아예 생물학적인 성을 인지하는 성으로 대체함으로써 가정에 대한 도전과 해체 작업은 더욱 혼란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움직임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동성 동거와 동성 결혼의 문을 열어주는 건강가정기본법을 개정하려는 시도로 가시화되고 있다. 이 건강가정기본법은 남인순 의원과 정춘숙 의원에 의해 주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을 대립, 갈등하게 만들고 이 갈등은 이혼과 비혼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결혼과 성을 분리시켜 매우 배타적인 결혼 안에서의 성을 자유분방한 쾌락으로서의 성으로 변질시켰다. 페미니즘은 결혼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한다. 아버지는 권위를 잃고 한남충으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정말 그들의 주장처럼 아버지라는 존재는 필요하지 않은 것인가? 부성이 결핍된 가정을 생각해 보았는가? 심리학에서는 아버지로부터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일어나는 아이의 정신적 발달 장애를 부성 실조 상태로 표현한다. 가정에서 아버지를 없애는 것은 참으로 사악한 일이다. 아버지가 없는 아이가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아이에게 아버지를 주지 않을 권리를 엄마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일까?

늘어가는 비혼주의

또 다른 문제는 이 땅의 많은 젊은 여성들이 결혼 생활과 육아에 뒤따르는 불평등을 거부하며 자발적으로 ‘비혼주의자’가 되어가는 현실이다.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힘들지만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만 20~39세 6천3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생애전망 인식조사에서 청년 여성들은 ‘결혼’과 ‘자녀 갖기’를 노동자로서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젊은 여성들은 가정 대신 노동하는 개인의 삶을 기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기의 남녀 모두 ‘파트너십’이나 ‘자녀’보다 ‘일’과 ‘개인생활’을 중요시한다는 조사 결과가 놀랍다. 우리 젊은 세대는 더 이상 가정을 원하지 않고 자발적 독신을 택하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결혼을 불평등한 관계를 초래하는 적폐로 인식하며 이것은 비혼과 저출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아이에게 생물학적 아버지가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결혼 없이 자율적인 개인의 삶을 누리면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사유리 씨의 사례에 뜨거운 호응을 보내고 있기도 한다. 비혼을 추구하는 세대가 늘어나면 비혼 출산의 법제화 요구는 앞으로 더욱 거세어질 것이다.

훼손되는 인간의 존엄성

자발적 비혼, 비혼 상태에서의 임심과 출산의 권리, 그리고 낙태의 권리로 이어지는 일련의 경사진 사고방식 안에서 과연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말은 어디쯤 있을까?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가능성이 극대화되고 자연 질서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시대에 우리는 자연계에서 가장 천박한 상태로 추락하고 있다. 그동안 인간이 침범할 수 없었던 생명의 영역을 돌파하고자 하는 끈질긴 도전 덕분에 인간 생명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되고 점점 물질화되어 간다. 낙태와 비혼 출산, 자살과 안락사. 자신의 생명과 타인의 생명에 대한 결정권을 거머쥔 인간의 손 안에서 생명의 가치는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우리의 생명이 어디로부터 왔는지에 대한 여러 형이상학적 논의는 제쳐놓고라도 분명한 것은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남자인 한 아버지와 여자인 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적 법칙이며 이 법칙 아래 모든 생명은 동등하며 존엄한 가치를 갖는다. 자신의 생명도, 타인의 생명도 함부로 다룰 권리가 인간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정은 가장 작은 사회의 단위로서 인류 역사를 통해 건강한 가정은 건강한 사회와 국가를 이루는 근간이 되어왔다. 그런데 오늘날 과도하게 고양된 인본주의와 물질화된 정신세계 안에서 가정을 해체하려는 시도들이 가열 차게 이어지고 있다. 이 시도들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세상의 흐름에 맞추어 새로운 법과 제도를 만들기보다 건강한 가정의 가치와 중요성을 더욱 강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이 부부가 되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삶을 회복하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갖고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가정의 가치를 알리는 일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입법자들이 국가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평범하고 건강한 이 땅의 수많은 가정들을 지키는 일에 힘을 모아 주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전혜성(바른인권여성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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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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