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케직 성화론에 대한 개혁신학적 평가

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

패커는 1875년 영국 북서부의 호수 지방에 위치한 휴양 마을 케직(Keswick)에서 작하여 매년 열려 영국 복음주의자들에 큰 영향을 끼친 “영적 생활의 심화(深化)를 위한 사경회”(Convention for the Deepening of the Spiritual Life)의 강점과 문제점을 제시하였다.

1940년대 말 무렵 ‘영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케직의 가르침을 복음주의 신앙의 특징적인 요소로 보았다. 그래서 ‘성화’에 대한 케직 사경회의 가르침이 정확할 뿐 아니라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고 생각하였다. 케직 교사들은 죄에 대한 승리, 예수 안에서 누리는 행복, 하나님으로 충만한 삶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에게 속해서 믿음으로 사는 비밀을 배운 사람들에게 약속한 가장 풍성한 유산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케직 교리를 공격하는 것은 곧 복음주의를 공격하는 것이었고, 복음주의 운동의 주류와 좋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모험을 거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이는 종교개혁자들의 주장하는 성화 교리와 차이점이 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패커는 영국 복음주의자들에게는 아주 당연시 여겨온 케직 교리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강점과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1) 케직의 ‘승리하는 삶’ 교리와 패커의 신앙경험 사이의 괴리

패커는 옥스퍼드 학생시절에 ‘승리하는 생활’에 대한 ‘케직’의 가르침에 접하였다. 케직 사경회의 접근방법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간절히 바라던, 죄로부터의 완전한 해방과 예수 그리스도와 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등을 제공해 주었다. 케직의 가르침에 의하면, 신자들이 승리의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삶을 전적으로 그리스도에게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패커는 학생 시절 케직 교사들의 주장처럼 지속적으로 죄에 대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갈망하였다. 그래서 패커는 ‘전적 헌신’의 삶을 살기위해 자기 자신과 매일 고통스러울 정도로 싸워보았지만, 마음에서 일어나는 죄의 충동과 불만과 좌절을 떨치지 못하는 미성숙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뿐이었다.

이러한 패커에게 능력 충만한 승리의 생활은 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도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먼 이야기처럼 보였다. 패커는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고, 기독교 신앙의 진리에 대하여 어떤 의혹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케직의 가르침과 패커의 개인적 경험 사이에는 심각한 긴장과 간격이 있었다. 이 문제로 고민한 패커는 그 해답을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2) 패커가 제기하는 케직 교리의 문제점들

패커는 처음에는 케직의 가르침에 대한 의심이 생겨난 것은 케직의 가르침이 자신의 영적 상태와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패커는 리버풀(Liverpool)의 성공회 주교 제이 시 라일(J. C. Ryle)이 그의 저서 『거룩』(Holiness, 1877)에서 19세기에 성화에 대한 케직의 가르침에 대하여 했던 명확한 복음주의적 비판에 접하게 되었다.( J. C. Ryle, Holiness(Ⅱ), 정원태 역, 『성숙한 생활』(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9-58을 참조하라.)

이것이 계기가 되어 패커는 ‘청교도의 글들’과 ‘청교도들에 의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케직의 가르침에 대하여 훨씬 더 근본적인 비판을 하기에 이르렀다. 즉, 케직의 가르침은 일련의 신학적 오류들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았다. 패커가 케직 교리에 대하여 깨달은 신학적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성결에 대한 편합한 견해다.

케직 교리가 성결을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이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이러한 케직의 시도는 도덕주의적 갈등에서 벗어나는 어거스틴적 전망이나 웨슬리적 열정도 없다. 단지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는 소극적인 이상에 집중할 뿐이다. 케직이 목표로 하는 지속적 기쁨과 마음의 평정은 의로움을 달성하기 보다는 도덕적인 면에서 실패하는데 관심이 있다.

패커는 다음같이 비판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은 하나님이나 이웃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적이며, 도덕적 영적 민감함을 오히려 둔하게 만든다. 만약 현재의 행복을 목표로 삼는다면, 성경적 성결의 길이 아니다.”(J. I. Packer, 『성령을 아는 지식』, 216)

<2> 성령의 성화 활동을 약화시킨다.

고범죄를 이기는 완전한 승리 주장은 우리의 수준을 넘어선다. 이는 영적으로 비현실적이다. 그러면서 우리 부패성이 이 세상에서 변화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은 실수다. 이러한 관점은 성령의 성화하는 사역을 믿지 않는 처사이다. 패커는 성령의 성화 사역을 강조한다: “성령께서 신자들의 삶에서 역사하셔서, 그들의 신령한 소원과 분별력은 점점 더 강해지며, 악한 욕망와 습관은 눈에 뜨게 약해져 간다.”

<3> 케직 성화교리는 정적주의의 수동성 개념의 틀에 갇혀 있다.

케직 교리는 정적주의(Quietism)에 빠져 수동성에 빠졌다. 정적주의는 흠 없고 완전한 신자가 되는 길이 인간의 경건한 노력 곧 ‘능동적 행위’에 있기보다는, 자기를 완전히 하나님께 맡긴 가운데서 이뤄지는 영혼의 정적상태 곧 ‘완전한 수동성’의 상태에 있다고 보았다. 정적주의의 맥락에서 볼 때에, 무언가 적극적인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것은 사람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고자 하시는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케직교리는 정적주의에 따라서 성결을 위하여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시도록 자신의 무위를 주장한다. 퍠커는 정적주의를 비판한다: “정적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수동성이 성령을 자유롭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성령을 거스르고 소멸시킨 뿐이다.”

패커는 자신이 노력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넘기는 성결의 수동성을 추구하는 케직 교리를 비판한다: “케직 교의에서 연상되는 수동성(‘그 문제로 당신 자신이 몸부림 치지 말고 다만 하나님께 넘겨 드려라’)은 그 자체가 비성경적이며, 그리스도의 성숙에도 해롭다.”

<4> 케직 교리가 내거는 “완전한 행함, 승리의 삶” 구호는 실제 신앙생활과 맞지 않다.

패커 자신이 1945년-46년 옥스퍼드에서 중생한 후의 영적 승리를 위한 과정에서 케직 교리가 말하는 승리의 삶이 자신의 헌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의 사실과 일치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패커는 당시 자신의 영적 상태를 3인칭으로 말한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바치려고 노력했지만, 번번히 자신이 있던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 자신에게 일어나는 그 모든 것들은, 자신을 온전하게 헌신하고 바운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누려야할 승리의 삶, 능력으로 채워진 삶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러한 영적 몸부림 가운데 패커는 청교도 존 오웬의 전접 6.7권과 라일의 『성결』(Holiness, 1877)을 읽고 영적 좌절의 어려움에서 탈출했다.

<5> 로마 6-8장은 내적 수동성에 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케직 학자인 모울(Moule)은 로마서 8장을 승리하는 삶(성령이 충만하고 성별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테그닉을 통해 모든 고범죄에서 벗어난 완전한 해방을 누리게된다)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는 신자의 죄와 싸우는 내면적 투쟁을 외면하는 것이다. 패커는 로마 6장-8장은 죄와 싸우는 신자의 내면적 투쟁을 그리스도인의 보편적 체험으로 해석한다. 이것이 이 구절에 대한 올바른 어거스틴적 해석이라고 본다. 어거스틴주의는 죄의 속성이 계속 남아 있으나 죄인임을 강조하여 영적 변화의 기대를 가볍게 여겼다.

그래서 패커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형상을 더욱 선하게 바꾸어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성령의 능력으로 더욱 예수님을 닮아 가게 해달라고 간구할 때 하나님은 그들의 신학에서 어떠한 결함이 나타나더라도 괘념하지 않으시고 응답하신다...그분은 가장 자비로우시고 관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3) 케직 성화 교리의 개혁신학적 수정

1952년에 발간된 스티븐 바라바스(Steven Barabbas)의 『이토록 위대한 구원』(So Great Salvation: The History and Message of the Keswick Convention)이라는 책은 케직 사경회의 역사와 메시지를 소개한 것으로 그 저술 방식이 케직 교리의 모든 오류들을 재생시키고 있는 것 같은 책이었다. 패커는 이 책에 대하여 반박하려는 결심을 하고 복음주의의 주류 저널인 <계간 복음주의>(Evangelical Quarterly, 1955년 7월호)에 그 저서에 대한 서평을 기고하였다.

패커는 케직의 ‘성화’ 가르침에 대하여 무슨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케직 교리의 ‘승리하는 삶’은 하나님의 역할을 강화시키고 인간의 의지는 약화시킨 것같이 보인다. 하지만, 사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너무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므로 일종의 몽매한 펠라기우스주의”에 빠졌다. 오히려 “하나님의 역할을 약화시키고 인간의 의지와 자유의 역할을 거짓되게 추겨 세웠”다. 또한 성경과 어긋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 “매우 얄팍하고 힘없는 하나의 구원관”을 제시한다고 패커는 강력히 반박하였다. 결국 “펠라기우스주의는 열심은 있지만 신학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이단”이라고 맹렬히 공격하였다.

패커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을 변화시키는 일이 성화(聖化)이고, 이렇게 변화한 사람의 생활방식이 성결(聖潔)”이라고 한 존 오웬의 정의를 수용했다. 패커는 “성결의 주체는 성령”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성결은 “삶을 구별하게 해 주는 자질이며,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자기 존재의 표현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진 내면이 드러난 결과”라고 말한다. 패커는 다음같이 개혁주의 성화론을 표명한다: “눈꼽만큼도 자기 중심이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동기에서 나오는 완전한 사랑은 천국에서 약속된 삶이다. 신자가 하나님가 사람을 사랑하는 그 어떠한 경지에 이른다 해도, 여기 이 땅에서는 그러한 완전함을 결코 달성할 수 없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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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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