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케이퍼 무비로서의 재미

 

도굴 노재원 목사

영화 <도굴>은 직설적인 제목이 말해주듯 전문적인 도굴꾼들의 한탕을 다룬 영화입니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도굴꾼들이 의기투합해서 선릉 내 부장품인 전설 속 보물을 훔쳐낸다는, 전형적인 ‘케이퍼 무비’(Caper movie, 각 분야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범죄자들이 팀을 꾸려 무언가를 훔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의 형식을 따르지요.

 

이런 류의 범죄영화는 이미 여러 차례 만들어져 왔기에 새롭지는 않습니다. 헐리우드 영화로는 <이탈리안 잡>(2003),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 등이 유명하고, 한국영화로는 <범죄의 재구성>(2004), <도둑들>(2012) 등을 꼽을 수 있지요. 대체로 이런 범죄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인데, 절도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각자의 독특한 역량을 뽐내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볼거리일 뿐 아니라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합니다.

이는 <도굴>도 예외가 아닙니다. 리더 격인 주인공은 흙 맛만 봐도 땅속 보물을 찾아낼 정도로 도굴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고, 고분 벽화 전문가는 전 세계 고분 지도가 머릿속에 있다는 식이며, 굴 파기의 달인은 올림픽 종목에 땅굴 파기가 있었다면 금메달감일 거라고 너스레를 떱니다. 거기에 판을 짜는 역할을 하는 고미술계 큐레이터는 겉으로 드러난 직업과 달리 사실은 장물을 큰손들에게 팔아치우는 어둠의 세계에 몸담고 있지요.

케이퍼 무비에서는 대상물이 훔치기 어려울수록 극적인 재미도 커집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물을 기어코 훔쳐내고야 마는 주인공들의 활약은 관객에게 시각적 쾌감을 제공하지요. 오락영화로서 <도굴>이 노리는 지점도 바로 거기에 있을 겁니다. 훔치려는 물건이 금고나 보석이 아니라 왕릉 내부에 감춰진 부장품들이라는 것이지요. 게다가 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선릉이 목표물이라니!

욕망이 이끄는 도굴

종종 보도되는 문화재 발굴에 대한 뉴스를 보면, 도굴꾼들이 훔쳐 가다가 남긴 유물만 간신히 찾아냈다는 내용이 많습니다. 이는 도굴이 성행했음을 뜻하겠지요. 그런데, 도굴에는 유난히 특별한 능력이 요구될 것입니다. 무덤 내 부장물의 존재 여부와 그 가치를 사전에 알아내기도 어려우며 분업을 위해 팀을 꾸리는 것도 쉽지 않겠지요. 어느 지점을 얼마나 파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지식과 기술이 요구되는 데다가 굴을 파고 사람이 들어가서 부장물을 꺼내오는 일과 그것을 원하는 값에 파는 일 또한 예사롭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들을 ‘몰래’ 해야 한다는 점이 더욱 그러하겠지요.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도굴이 한탕을 노리는 ‘꾼’들에게 매력적인 일감인 까닭은 무엇일까요? 두말할 것도 없이 무덤 내 부장물은 곧 ‘보물’이기 때문일 겁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이나 부유층의 무덤은 부장물을 노리는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어 왔음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귀중한 우리 유물을 도굴해 갔음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요. 도굴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이 끊이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인간들의 욕망이 투영된 도굴이라는 소재와 보물을 차지하려는 인간들의 암투가 한데 어우러지면 흥미진진한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질 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남의 것을 가로채고 싶어한 적이 있을 것이기에, 이런 류의 영화는 그러한 인간의 본성을 오락으로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셈입니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도굴이라는 범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나,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도굴된 적이 있는 선릉에 대한 진중한 태도 등을 기대하는 것은 과한 요구일 겁니다.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오락영화로서의 목적에 충실하면 될 테니까요. 영화는 도굴 과정을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냄으로써 보물을 탐하는 관객의 본성을 충족시키는 한편, 역사적 유물을 훼손하는 데에 따르는 죄책감은 최소한으로 줄여 줍니다. ‘절도’는 저열하고 흉악한 범죄이지만 ‘도굴’은 왠지 세련되고 지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까닭도 케이퍼 무비 특유의 인물들 간의 합이나 과시적인 대사 덕분일 것입니다. 관객은 역사적 유물이 도굴당하는 장면에서도 감정이입을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죠.

모세의 무덤과 언약궤의 공통점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바라본 후 홀연히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죽은 후 묻힌 곳의 위치를 정확하게 언급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신명기 34:5-6). 만약 모세의 무덤이 알려졌다면 여지없이 도굴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경에 등장하는 모세의 지팡이는 신통력을 발휘하는 신령한 물건으로 취급받고 있겠지요.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무덤을 숨기심으로서 당대와 후대의 사람들이 모세와 그의 물건을 미신이나 우상처럼 섬기지 못하도록 하신 겁니다.

익히 알려진 ‘인디아나 존스’ 박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레이더스>(1981)는 도굴을 직접 다루지는 않았지만 도굴 영화와 맥을 같이 하는 모험극인데요, 구약에 등장하는 언약궤가 현재 어디에 감춰져 있는지 알게 된 독일 나치군이 이를 차지하기 위해 달려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나치군이 기를 쓰고 언약궤를 차지하려는 이유는 언약궤를 열면 전지전능한 신의 힘을 빌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제패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유물을 두고 아귀다툼을 벌이게 한 것이죠.

이렇듯 도굴은 여러 측면에서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데요. 그 욕망이란 ‘감춰져 있는 옛것’에 대한 인간의 강력한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해서 ‘옛것’이 지닌 환금성, 즉 부귀영화에 대한 욕망으로 귀결되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도굴이란 인류가 매장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범죄행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모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언약궤가 어떻게 되었는지 인류가 알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탐욕을 사전에 제어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가 아닐런지요.

노재원 목사는 현재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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