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균 목사
홍석균 목사

본문 : 요한복음 6장 16-21절

인간은 불안한 존재이다. 그 이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감정의 변화가 심하기 때문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이 인간은 자신의 마음도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인간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둘째는 환경의 변화에 심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예측불허의 삶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오늘 본문도 같은 맥락인데, 먼저 이 사건 앞에 있었던 사건을 봐야 하는데 오병이어 사건이다. 예수님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가 남겼다. 제자들은 열광했다. 그런데 이내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변화에 사로잡혔다. 왜냐하면 본문에 보면 급격한 환경의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본문은 제자들이 배를 타고 바다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다. 한 십 리쯤 왔을 때, 갑자기 큰 바람에 파도를 만났다. 그들은 이미 십 리, 즉 4km로나 가까이 왔을 때였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었다. 배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더구나 파도를 만난 시간은 마태복음 14장 25절에 보면 밤 사경쯤이었다고 한다. 사경은 새벽 3-6시를 말하는 시간대로 가장 춥고 어두운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파도까지 쳤으니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 사건은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일만 생길 거로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예수를 따르다 보면 어두운 밤과 무서운 파도와 같이 우리를 집어삼키려고 할 때가 더 많다. 그러면 인간은 한없이 작게만 보이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 두려움 속에 누군가가 물 위로 걸어오는 분이 계셨는데, 예수님이셨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병행 구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몰라보고 유령인지 알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러한 현상들이 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이렇게 두려워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나? 물 위를 걸어오시는 분이 예수님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신앙생활의 출발점을 알 수 있다. 신앙의 출발점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신앙생활의 방향을 잡을 수 없다.
성경을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예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달란트 비유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마태복음 25장에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첫째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 둘째 종에게는 두 달란트, 셋째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다. 첫째 종과 둘째 종은 열심히 장사해서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더 남겼다. 그래서 주인의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셋째 종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가 주인이 왔을 때 드렸다. 그러자 주인은 엄청난 저주와 책망을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셋째 종은 주인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마 25:24). 여기서 셋째 종은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굳은 사람은 ‘hard man’으로 ‘인색한 사람’, ‘가혹한 사람’으로 여겼다. 주인은 열심히 장사해서 남기지 않으면 가혹한 형벌을 내린다고 사람으로 오해했다. 셋째 종은 오랫동안 주인과 지내 왔지만 주인을 잘 몰랐다. 이 비유는 하나님을 잘 모르는 자들에 대한 책망한 내용이다. 우리가 정말 열심히 주를 위해 살았는데 결과를 남기지 못했다고 하나님이 가혹한 형벌을 내릴까? 아니다.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아신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몰랐다. 오병이어를 통해 5,000명을 먹이시는 분으로만 이해했지, 모든 자연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몰랐다.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영혼의 구원자로만 여기고 있지 않나? 우리의 삶의 문제도 다스리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확신하는가? 예수님을 제대로 몰라 두려워 떠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니 두려워 말라.” 마치 구약에 모세가 떨기나무 앞에서 두려워 떨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자연만물까지도 다스리는 자이니 안심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의 삶의 질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따라서 결정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깊어져 가면 깊어져 갈수록 큰 풍랑이 몰려오고, 비바람이 쳐도 요동하지 않는다. 우리가 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이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그렇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 하나님을 아는 것은 힘써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신앙생활 10, 20년 연수만 채우면 되는 게 아니다. 성경을 펴고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가지고 깊은 기도의 자리로 나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그 바른 앎이 바른 삶으로 나가게 만든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면서 어떻게 하는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21절) 즉시 영접하는 삶으로 이어졌고, 종착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비록 우리의 인생에 풍랑이 인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향한 바른 앎으로 목적지까지 이르길 축복한다.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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