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인문학연구원 채영삼 교수(백석대)
채영삼 교수(백석대) ©기독일보DB
백석대 채영삼 교수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생각을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나눠 관심을 모으고 있다.

먼저 그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요?’ 오늘 강의 중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민한다. 특히, 청년들의 고민이 많다. 나 역시 아직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힌 후, “포괄적 차별법의 문제는, 좌파 우파의 이념의 문제도, 진보와 보수의 대결도, 네오-맑시즘과 자본주의의 대결도, 친정부-반정부의 문제도 아니다. 이 문제를 이러한 프레임 안에서 다루는 것은 왜곡”이라 주장했다.

백 교수는 “‘법 제정’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동성애, 성정체성, 성적지향의 이슈는, 차별, 평등, 인권의 문제도 아니다. 차별을 없애고, 평등을 조장하고, 인권을 신장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어느 쪽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차별, 평등, 인권의 프레임에서 다루는 것은 착시현상”이라 다시금 말하고,“‘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법’으로서의 핵심 문제는, ‘자유’의 문제이다.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 동성애, 성정체성, 성적지향의 문제에 대해 ‘찬성’하고 ‘옳다고 믿는’ 신념, 그런 사상을 가질 자유,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할 ‘자유를 보장’하는 것처럼, 그것을 ‘반대’하고 ‘틀렸다고 믿는’ 신념, 그런 사상을 가질 자유, 그것을 말로 행동으로 표현할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백 교수는 “동성애 등을 찬성하는 논리로서, “동성애자를 사랑한다면, 동성애를 죄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일부 현실적이나, 상식적이지도 성경적이지도 않다”고 지적하고, “어떤 사람의 의견과 그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상식이다. 어느 쪽이든 생각이 다르다고 그 사람의 입을 막거나 차별할 수 없다”면서 “성경적으로,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동시에 사랑이시다. 죄를 심판하시며 죄인을 구원하신다. 십자가는, 죄를 심판하고 죄인은 사랑하신 지혜의 나타남의 절정이요 증거”라 했다.

또 “동성애를 찬성하는 논리로서, 보수교회는 ‘모든 죄를 지으면서 굳이 동성애만 최악의 죄처럼 말하는 것은 자격 없는 일’이라는 비난이 있는데, 이 논리는, ‘동성애는 죄’라는 것을 전제한다”면서 “동성애자를 사랑한다면, 동성애를 죄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과 공존할 수 없다”고 했다.

백 교수는 “동성애, 성정체성, 성적지향에 대한 개인의 자율성 문제는, 단지 성윤리에 그치는 것이 아닐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문제가 서구 기독교 사회에 닥친 ‘성 혁명’의 문제일 때, 이 문제는 결혼, 가정, 교육 등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문제이며, 무엇보다 기독교 전통, 성경의 권위와 가르침에 대한 도전으로서 간과할 수 없는 이슈”라고도 했다.

더불어 “‘성경은 동성애를 모른다’는 주장, 즉, 성경에서 정죄하는 것은 ‘동성 성행위’이며, 19세기 이후 동성 인격 간의 애정을 포함한 성행위로서의 ‘동성애’는 성경이 ‘몰랐다’는 주장이 있다”고도 밝힌 후,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동성애’에서도, 블랙수면방이나 게이클럽처럼, 단지 ‘동성 성행위’로서 동성애를 행하기도 한다.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고대의 노예제도에서 노예는 ‘재산’이지 ‘인격’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어떤 노예들은 주인이나 주인의 자녀들의 선생으로 존경받기도 하고, 가족 이상의 대우를 받기도 했다”면서 “성경이 정죄하는 것은 ‘동성 성행위’이지 ‘동성애가 아니라는 주장은, 예컨대 ‘과식은 했는데 음식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주장처럼 추상적이고 현실성이 떨어진다. 성경이나 기독교 전통에서 ‘성정체성이나 성적지향의 자기 결정권’이나 ‘동성애’ 등은 명백히 부정적이며 인정되기 어렵다”고 했다.

한편으론 “‘동성애는 죄이나, 차별금지법은 찬성한다’는 의견은, 교회를 공적 영역에서 축소시킨다. 교회를 위한 법은 세상을 향한 양심의 법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도 백 교수는 말했다. 세상 역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영역이고, 일반 은총의 영역에서도 교회는 할 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는 “더구나, 현재 차별금지법의 핵심이 ‘신념, 사상의 자유’라고 할 때, 그것은 단지 차별, 평등,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의 문제이기 때문에 교회가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의 문제를 법의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하고, “하지만 이 문제를 정치적 세력과 권력의 힘으로 풀려 하는 것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교회는 그런 방식이 전부라고 믿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더 나아가, ‘성 혁명’에서 ‘성’(gender)이라는 주제는, 단지 ‘성’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도대체, ‘몸’이란 무엇인가? 개인의 권리인가? ‘나의 자궁은 내 것이기 때문에, 임신은 병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성경이 ‘몸’을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라고 할 때, 남편과 아내를, 그리스도와 교회로 비유할 때, 아니, 동양이나 서양 고대 사상에서 한 인간의 몸을 ‘소우주’(小宇宙)라고 했을 때, ‘몸’이란 무엇인가? ‘베네딕트 옵션’(Benedict option)의 저자, 로드 드레허는, ‘성(性)의 형이상학’을 제안한다. 교회는, 이 기회에 이 문제를 신학적으로, 교회적으로 고민하여 다루고, 다음 세대에게 성경적인 ‘육체의 신학과 신앙’의 전통을 물려주어야 할 것”이라 했다.

더불어 “만일, 동성애, 성정체성, 성적지향 등의 문제가 서구를 휩쓴 ‘성 혁명’의 일환으로서, ‘다원주의’의 폭넓은 도전 가운데 하나라면, 그 배후에는 불가피한 ‘영적 싸움’이 있음도 자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원주의의 사회적 모토는,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란, 이제 정상(正常)은 없다’는 것이다. 누가 감히 ‘정상과 비정상’을 결정하는가? 교회가 뭔데, 우리에게 정상과 비정상을 이야기하는가? 정상과 비정상은 사회적 학습의 결과이고, 결국 사회적 권력의 도구라는 것이다. 그것도 이제 각각의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정상-비정상이 없다는 새로운 정상’은, ‘정상-비정상이 있다’는 ‘하나의 비정상’(예컨대, 기독교의 전통)만큼은 인정하지 못한다. 논리적 말장난이 아니라, 그것이 다원주의의 자기모순이며 독재성이다. 여기에 이르면, 이것은 영적 전쟁”이라 했다.

또 그는 “권위주의는 나쁜 것이다. 폐해가 많다”고 지적했지만, “권위 자체를 없애버리면, 권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권위를 없앤 권력이 새로운 권위가 된다”면서 “역설적이지만, 창조질서, 중세인들이 ‘합리적 직관’으로 알았고,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적 직관’은 정상이 있고 비정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원주의자들도, ‘옳고 그름이 있다’는 그 사실, 틀렸다고 말할 때는 옳다고 믿는 기준이 있다는 그 사실, 기준, 곧 정상은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질서 자체는 파괴할 수도 없고, 하려 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냐면, “남성 중심의 지배체제가 낳는 폐해가 심하다. 아직도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참으로 그러하다.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남성 지배체제의 폐해가 심각하다고 해서, 남자와 여자의 구분 자체를 없애는 것은 더 큰 폐해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는 “세상이 어둠인 이유는, 분별이 어렵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컨대 창조질서로 표명된 그 기준, 성경의 가르침을 선명하게 지켜야 한다. 그리고 그 질서의 남용, 악용의 폐해를 바로 잡는데 역시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그는 “법적인 해결도 중요하다. 하지만, 상대를 ‘악마화’하지 않고,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고 찾아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진리가 없이 사랑은 사랑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이다. 하지만, ‘사랑 없이 진리를 말하는 것도 진리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랑 안에서’ 해야 한다. ‘진리를’ 말해야 한다”면서 “그리고 ‘말하고 행해야’ 한다. 셋 중 어느 하나가 빠져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온전한 사람이 어디에 있으랴. 함께,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고 찾아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 했다.

한편 백 교수는 이러한 설명들 중간 “교회는,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심판하시고, 동시에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십자가의 공의와 긍휼의 복음을 견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단지 이론이 아니라, 동성애자들이나 성정체성이나 성적지향에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큰 어려움 없이 찾아올 수 있는 ‘품’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중국 신학교에서 가르칠 때, 한 학생에게 아들이 있었다. 부모의 이혼 후에, 그 아들은 동성애에 빠졌다. 그 소문이 교회에 돌았고, 그 아들은 더 이상 교회에 갈 수 없었다. 그 어머니 학생이 한 말이 마음이 남아 있다. ‘그러면, 내 아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고 물었다)면서 “죄라고 정죄하고서, 그 죄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디에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가? 하나님은 죄인인 당신과 나에게 그렇게 대하지 않으셨다. 교회에 동성애 커플이 들어온다면, 두 번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우리의 죄를 한 번에 다 깨닫고 회개하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죄들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며, 더 큰 죄들을 깨닫고 회개하지 않는가? 동성애자,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청년들이 그저 머물 수 있는 교회의 품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죄라고 말하기만 하면, 그것은 무책임하지 않은가”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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