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시 전도사
장영시 전도사(탈북민, 거룩한빛비전교회) ©에스더기도운동 유튜브

매주 화요일 오전 진행되는 ‘탈북민센터 북한구원 화요모임’의 지난 6월 30일 모임에선 장영시 전도사(탈북민, 거룩한빛비전교회)가 간증했다.

장 전도사는 “저는 북한에서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왜 내 인생은 어려서부터 남들이 겪지 못하는 고생을 겪었는가 하는 의구심 때문에 무거운 짐이었다. 그런데 조선족 집사님에게 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신들 위의 신이다. 예수를 믿으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팔자가 바뀐다’는 말을 붙잡고, 그때부터 성경을 봤는데 좋았다”고 했다.

이어 “북한에서는 어릴 때부터 주체사상, 우상화 교육을 매일 한다. 어릴 때부터 교육을 하니까 어머니 아버지 생년월일은 잊어도 김일성, 김정일 생년월일이나 관련 행사는 잊지 않는다. 저도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기에 그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가 하나님을 만났는데, 내가 교육받은 것과 삶의 현장이 판이한 것을 보았다. 간부들은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앞에서는 잘하라고 선동하고 뒤에서는 못된 짓을 다 하는 것이다. 도대체 이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감당해야 하는지, 이때까지 믿고 기대었던 기둥이 무너지는 현실 속에서 나는 무엇인가 의문을 가졌다. 북에서는 삶을 포기한다는 말을 탈망살이에 빠졌다고 한다. 무의미하게 삶의 목적이나 기쁨이 없이 살면서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살지? 왜 살지?’를 물을 때 단지 먹자고 사는 인생이 너무 구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 분들 대할 때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을 것이다. 한국은 법과 질서가 바르기에 법대로 살면 모든 것이 형통하고 삶이 탄탄하다. 그런데 탈북민들은 그런 사회에서 살지 못했다. 그 땅에는 거짓말이 일상이었고, 사기, 협잡, 강도 등 법이 없다. 북한은 권력 위주이기에 상부에 아첨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래서 늘 눈치 보며 그 밑에서 아부하면서 어떻게 이득을 얻을까 살았던 게 어느새 체질이 되고 삶의 방식이 되었는데 자유 대한민국에 오니까 너무 다른 세상인 것이다. 북한분들이 목숨을 내걸고 이곳으로 왔는데, 목숨을 내걸고 오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힘든 삶이 대한민국에서의 삶이다. 모든 것이 부유하고 열심히 살면 되는 세상에서 북한 사람이 정착하기에는 힘들다. 기간이 없고 끝이 없고 어떤 빛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든 이 사회를 따라가려고 발버둥 치고 애쓰지만 안된다. 그 나라 환경·문화 가운데에서 이미 체질화된 사회이기에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왜 탈북자들이 저렇게 사는지 이해가 안 되니 북한선교 안된다고 말한다. 복음만이 가능한데, 복음 안에서 하나 됐다고 해서 예수를 믿는 그 순간 그들의 인격이 변하지는 않는다. 어릴 때부터 살아왔던 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를 이끌어주는 성령의 인도 하심 가운데서 하나님 우리를 이끌어주실 때 대한민국도 깎이고 우리도 깎이는 것이다. 모래가 조개 안에 들어가서 진주가 되기까지는 모래와 진주 서로가 고통을 동반한다고 한다. 자유로운 바다의 모래가 숨 막히는 조개 안에 갇혀 있을 때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그 모래를 품고 있었던 그 연한 조개는 시리고 아파도 뱉어버릴 수도 없고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서로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 시간을 통해 그 안에서 진주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의미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저는 북한에서 왔다. 어떻게 왔겠는가? 여러분들의 눈물의 열매인 것이다. 6·25 때 고향을 등지고 북한에서 내려와서 그 땅을 살려달라고 통곡하며 기도했던 부모세대들, 길고 긴 시간 3만 6천 명의 탈북민들 그 안에 세워진 종들, 열방과 그 당을 위해 기도했던 눈물의 열매들”이라며 ”하나님이 저희를 그렇게 이끌어 오셨기에 하나님은 대한민국과 북한을 복음으로 하나 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장 전도사는 “몇 년 전 6월 25일 평화통일위원회 강사로 통일을 위한 강의를 부탁받았었다. 그때 저는 대한민국 교회도 사회도 통일을 맞을 준비가 전혀 안 됐기에 통일이 되면 안 된다고 했었다. 그때 서운한 감정도 있었고 마음이 추웠다. 지금에서는 이해한다. 그 땅에서 살아보고 접촉해야 상대방을 아는 건데,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는 게 당연한데 그때는 힘들었다. 한국에서 자살률 1위가 북한 사람들이다. 생명을 내걸고 바득바득 애쓰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부유한 사회에서 왜 죽는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이 사회가 탈북민들을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이들이 없다는 것이다. 그 땅에서 살아보지 않았기에 하소연을 해도 담벼락에 이야기하는 것이고 아무것도 모른다. 에스더기도운동본부가 한 많은 탈북민들과 함께 신앙생활, 기도생활, 교제하면서 조금은 알 수 있지만 다는 알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탈북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온지 20년이 됐는데, 정착 기간이 10여년 걸린 것 같다. 정착이란 건 내가 이 사회를 알고 이 문화를 받아들이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정착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대한민국 교회, 권사님, 집사님, 한국분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마음에 거부감과 가려움 없이 자유롭지만 여기 오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한국에 와서 교회를 갔는데 신앙생활과 문화가 우리와 달랐다. 북한은 인사문화가 아니고 자기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쑥스러워한다. 지내다가 내가 너를 알고 네가 나를 알게 되면 그다음 마음을 여는데, 한국은 교회 오니까 ‘안녕하세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라고 하는데 달아나고 싶었다. 나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언제 봤다고 사랑한다고 하는가? 예절이고 문화 차이인데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고 과정 가운데 있었다”고 했다.

장 전도사는 “중국 성경통독 사역장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났었다. 기도할 때마다 응답하셨던 하나님인데 한국땅에 와서 기도하는데 뭔가 해답이 없었다. 남편은 한국에 와서 탈북 회장을 하며 사회에서 찢기고 오해받고 욕먹고 외롭고 힘든 북한 분을 위로하기 위해 매일 저녁 식사하고 위로하고 같이 술을 마셨다. 그것을 보며 이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갔다가 걸어서 돌아오는데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바람에 날려서 상처가 난 길가에 심어진 꽃이 보였다. 그 꽃이 내 신세 같아서 하나님께 저 꽃이 나 같다고 했더니 잘 보라고 하셨다. 꽃잎은 찢기고 볼품은 없는데 그 꽃잎 안에 씨가 꽉 찬 것을 보게 하시고 ‘낙심하지 마라 때가 되면 거둔다’는 말씀을 주시면서 위로해주셨다”고 했다.

이어 “북한 형제들에게 데어서 아파서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서 하나님께 북한선교 안 하고 미전도종족을 선교하겠다고 하고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이스라엘에 쌓여 있는 돌 장벽이 3.8선 콘크리트와 오버랩되어 보이게 하셨지만 괴롭고 감당이 안 되어 지나쳤다. 팀원들과 팔레스타인 가정집을 방문했는데 중풍 병에 걸려 누워 있는 할머니가 계셨다. 알라를 믿는 분인데도 너무 힘드니까 기도를 요청하셔서 아픈 몸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할머니를 통해서 이것이 탈북민의 마음이라고 하셨다.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니고, 아파도 문드러져도 그 아픔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도 모르는 이것이 탈북민의 마음, 탈북민이라고 하셨다. 울면서 하나님께 탈북민들을 받아 주고 섬겨줄 수 있는 요만큼의 틈도 없지만 그것이 탈북민의 모습이고, 내 자리라 하니까 그 자리에 있겠다고 울었다. 선교가 끝나고 돌아와서 사역자 몇 명과 모여 북한기도모임을 만들어서 2년간 기도회를 했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셔서 공부를 더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와서 지금은 거룩한 빛 비전교회 다민족공동체교회를 담임하고 있다”고 했다.

장 전도사는 “북한 분들 보면 복음 안에서 변화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잘 변화되지 않는 것 같고, 더딘 것 같을 때도 있다. 이 모든 사역이 감당이 안 되어서 새벽마다 나가서 통곡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고 영적 전쟁을 하다가 탈진하기도 했다. 좋아지는 것 같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었다. 마지막엔 녹다운이 되어서 기도하고 싶은 의욕조차도 없고 다 내려놓고 싶었다. 이 모든 과정을 겪게 하시면서 알게 하신 것이 있다. 내 안에 계신 이는 이 세상이 신보다 크다는 것이다. 내가 깨끗하고 의로워서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내 안에 사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니 그 새 생명 안에서 걸어가고 바라보고 선포하라’는 이것이 아픈 기간 지나오면서 좌절과 절망과 고통과 어두운 그늘 가운데, 죄책감과 조바심 가운데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셨던 은혜”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나태함도 있고 어떤 때는 의욕도 없고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다. 기도했으면 열매가 있어야 하는데 여리고성과도 같은 것들, 될 듯하다가 변화되지 않는 상황들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저에게 주시는 은혜가 있다. ‘넌 내 안에서 행하라. 연약한 것 이미 다 알고, 네가 어떻게 할 것까지도 안다. 그러나 네가 사는 것은 내 안에서 사는 거다. 네 안에 계신 이가 이 세상 신보다 크다. 환경과 사건 풍파에 놀라지 마라. 네 안에서 너를 부르신 그 부르심 안에 거하라.’ 그런 은혜로 하나님이 이끌어가셨다”고 했다.

이어 “작년에 하나님께서 다민족공동체 안에 놀라운 일들을 많이 이루셨다. 북한사역자들이 러시아에 세운 교회와 같이 선교해야겠다는 마음을 주셔서 20일 동안 선교를 갔다 왔다. 선교현장에 가라는 마음을 주셨을 때 재정이 없었는데, 기도할 때 바자회를 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바자회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러시아 지역을 돌면서 선교하고 교회 기둥에 울타리를 쳤다. 12~13명 정도로 성도가 많지는 않지만 작고 보잘 것 없는 우리가 이 일들을 감당할 수 있게 하셔서 감사했다. 교회에서 탈북민 초청잔치도 했다. 하나님께 이들을 복음 안에서 날마다 만져주시고 새롭게 해 주시는 것을 본다. 저희 교회는 탈북민이라고 끌어안기만 하기보다는 말씀 안에서 말씀을 붙잡고 스스로 일어나도록 한다. 복음만이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생명이요 해답이라는 것과 부르심의 정체성을 알고 북한 사람, 한국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마음을 갖고 세워가고 있다”고 했다.

장 전도사는 “제 안에 있는 북한선교는 한국교회 안에서 교회와 함께 숨 쉬는 것이고, 내가 무엇을 만들겠다 해서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만큼 그 안에서 순종하며 함께 해 나갈 때 우리 안에서 크고도 놀라우신 일들을 이루실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