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국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6년간 한의사로서 왕자의 주치의로 살았다는 김승학 박사가 자신이 직접 찾은 자료들을 통해 모세가 출애굽한 것은 역사적인 사실일 뿐만 아니라 출애굽한 장소가 시나이반도가 아닌 아라비아반도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던 과거 영상이 이목을 끌고 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시내산도 우리가 알고 있는 시나이반도가 아닌 아라비아반도에 있는 것으로 확실시 되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이곳을 그동안 폐쇄시켰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쪽 사람들은 이스마엘의 자손들이고 출애굽은 자기들이 싫어하는 이삭의 자손들에게 기적을 베푼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싫어하는 이삭의 자손들에게 기적을 베푼 고고학적 증거들이 드러나면 자신들의 정통적인 종교(이슬람)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랍 사람들이 이곳을 폐쇄시켰다는 것.

이런 곳을 김승학 박사가 우연히 탐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김 박사는 처음에는 국내에서 한의학 의사로 진료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사우디로 갔다. 그때 최초로 사우디 정부 허가를 받아서 한의원을 개설하고 침술로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줬다. 이게 소문이 나서 방송에도 나가고 사우디에서 유명인이 되고 사우디 초대 왕의 아들이며 이슬람교의 총수가 목에 디스크가 걸려서 김승학 박사를 찾았다. 김 박사는 그 왕자를 치료해줬는데 효과가 매우 좋아져서 왕국의 주치의로 들어가게 되고 왕족들을 16년 동안 치료하면서 끈끈한 유대관계가 생겼다. 이 계기로 사우디 왕자와 친해지면서 아라비아 땅을 탐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김 박사는 그 기회를 살려 평소에 매우 궁금해하고 있던 시내산의 위치를 6년 동안 12번을 탐사하며 많은 증거들을 찾게 된 것이다.

실제 탐사를 하고 증거물을 갖게 된 김승학 박사에 따르면 시내산이 시나이반도에 있는 것은 로마 카톨릭의 잘못된 결정 때문이라고 한다.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뉘어 있을 때 콘스탄틴 황제와 막시무스 황제가 전쟁을 해서 콘스탄틴 황제가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래서 로마 전체를 다스리게 된다. 그런데 콘스탄틴 황제는 예수님을 안 믿는데 어머니 헬레나 여사가 예수를 믿는 분이셨다. 이 헬레나 여사가 아들 황제를 만날 때마다 예수를 믿는 자를 박해하지 말고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래서 AD313년도에 로마에 기독교가 공인이 된다.

그러면서 로마가 원래 갖고 있던 우상숭배와 다신교 사상이 기독교와 이상한 형태로 통합이 된다. 출애굽에 관한 로마의 기록도 그래서 오류가 많다고 김 박사는 말하고 있다. 기존의 로마 카톨릭이 임의로 정한 시내산은 시나이반도 남쪽에 있는 시내산으로 정해버렸다고 한다.

김 박사는 시내산을 시나이반도로 정하게 된 과정에 대해 조사한 바를 설명했다. AD303년도 디오클레티안 황제 때는 예수를 믿다 잡히면 산채로 사자굴에 던져졌다. 애굽에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를 피해서 시나이반도로 숨어들어갔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로마 군인들이 이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를 지켜주면서 이곳이 성역화 되었고 AD527년도에 시나이 반도에 있는 산을 시내산으로 공식적으로 정해버려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곳이 시내산으로 전해져왔다고 김 박사는 말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진짜 시내산은 아라비아반도의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라오즈산이다. 라오즈는 아랍 말로 아몬드란 말이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 거기에 살구꽃이 피었다고 번역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원문을 번역하면 아몬드이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아몬드가 자생하지 않는데 라오즈산에만 아몬드가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아론의 싹 난 지팡이에서 꽃이 핀 것을 심어서 싹을 틔웠을 것이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김 박사는 홍해를 건넌 장소가 시나이 반도가 아닌 아라비아 반도인 이유에 대해 집결지의 넓은 장소를 언급했다. 장정만 60만명이고 다 합쳐서 200여만명이 되는 광역시 규모의 인구가 홍해를 건너려면 넓은 장소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박사는 미디안 홍해바다 건너편에 있는 누웨이바 무자이나(모세가 물을 가른 곳이라는 현지 명칭)이 홍해를 건너기 전 이스라엘 백성이 집결한 지역이라고 한다. 그곳은 200만명이 평지에 밀집해서 다 천막치고 살 수 있는 크기이다. 또 그곳은 명칭도 모세가 물을 가른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매우 신뢰를 주고 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광야 근처의 홍해를 건넜다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고 했다. 이 장소의 이름을 누웨이바라고 하는데 물을 가르는 곳이란 뜻이다. 이 홍해의 깊이가 평균 1천미터 정도 된다. 그런데 누웨이바 앞에 있는 바다만 해저 연륙교(Sea Bed)로 바다 깊이가 매우 낮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건너간 다음에 이집트 군대가 뒤쫓아 들어왔다고 되어 있다. 이집트 병거수가 60승 정도 된다고 했다. 그 병거 달리기를 어렵게 하사 바퀴가 벗겨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 고고학자는 비록 이집트와 아라비아 쪽 홍해가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그 이집트 병거 흔적이 이곳에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누웨이바 앞바다에 내려가봤다. 그랬더니 그곳에 많은 수의 이집트의 병거와 바퀴, 인골, 말뼈 등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집트와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땅에 이집트 병거 바퀴가 발견되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히 이상하고 미스테리한 일이다.

김 박사는 사우디쪽이 진짜 시내산이라는 것에 대한 가장 확실한 근거는 성경에도 있다고 했다. 갈라디아서 4:25절에 사도 바울이 아라비에 있는 시내산이라고 정확하게 표현해놨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는데 미디안 광야는 아라비아쪽에 있다. 여기서 양을 치면서 호렙산으로 가서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나는데 그래서, 미디안 광야 어딘가에 호렙산과 시내산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일단 시내산은 아라비아에 있어야 하며 모세가 도망간 곳은 미디안이다. 그래서 호렙산은 미디안 땅에 있는 어느 산이어야 한다. 먼저 사우디아라비아 옛 지도를 보면 시내산 옆에 호렙산이 정확히 쓰여 있다. 모세가 광야 서쪽으로 호렙산으로 인도했다고 되어 있다. 즉, 호렙산 동쪽에 광야가 있어야 한다. 로마카톨릭에서 정해놓은 시나이반도의 시내산 동쪽에는 큰 광야가 없다. 그런데 미디안의 동쪽에는 광야가 있다.

또한 김 박사는 아라비아의 시내산이 모세가 머물렀던 진짜 시내산이란 증거로 시내산 꼭대기에 불로 그을린 자국을 증거로 말하고 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 불과 함께 강림했다고 나와 있다. 김승학 박사는 미디안에 있는 시내산에 직접 올라가 보니 여전히 그곳이 검게 그을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 돌들을 깨보니 돌 속은 하얀데 겉만 검게 그을려 있었다고 한다. 화산폭발로 검게 된거라면 이런 모습일 수가 없다고 한다.

김 박사는 시내산이 어디 있든지 그것은 우리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출애굽은 역사적인 사실로 그 증거들이 아라비아 반도에 넘쳐난다고 한다. 그는 하나님이 이 산을 3,500년동안 감춰놓고 보호해 둔 것 같다고 한다. 그러면서 마지막 때에 이 산을 통해 하나님의 엄청난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며 간증을 마쳤다.

(서울에스라교회의 과거 영상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