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일상의 삶을 하나씩 지워가면 무엇이 남을까?

박동식 교수
박동식 교수

중세 신 중심 시대를 지나 등장한 것은 근대 인간 중심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로 들어서면서 인간 이성을 중시한 나머지 역사는 진보한다고 확신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 양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낙관론적 사고에 급제동이 걸리게 되었지요. 이런 역사 인식에 반대할 이는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계 대전도 사실 지금의 코로나19사태에 비해서는 전 지구적 이슈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코로나19는 어느 곳도 예외 없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야말로 말 그대로 예측할 수 없는 미증유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미래(未來)"의 글자 뜻은 "아직 오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뜻 자체는 우리가 보통 이 단어를 사용할 때 갖는 어떤 희망과 설렘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김빠진 콜라를 마실 때처럼 밍밍합니다. '아직 오지 않은' 그 시간에 대해 미리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면 더 그러하며, 모르는데 전망해야 하니 사실 난감하기도 합니다. 더욱이 코로나19의 시대를 살면서 지금 상황도 설명할 수 없는데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모습이 어떨까를 이야기하는 것은 '눈 감고 어두운 산길을 가라'고 명령하는 것처럼 무모한 듯도 합니다.

지금처럼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적이 있었을까요? 미래학자들이나 트랜드 분석가들의 진단을 들어봐도 불투명합니다. 다만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기보다는 그동안 해 오던 무엇인가를 줄이거나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고, 교회에 가지 않고, 식당에 가지 않고, 큰 쇼핑몰에 가지 않고, 미용실에 가지 않고, 영화관에 가지 않고, gym에 가지 않고, 여행을 가지 않고, 서점에 가지 않고, 등등 수많은 곳에 가지 않고 수많은 것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언컨텍트(Uncontact) 사회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러한 진단을 부정할 분은 없을 겁니다. 역사적 좌우 이념을 떠나, 신앙의 진보 보수 이념을 떠나, 눈앞에 드러난 팩트는 모두 공감할 것입니다.

인기 강사 김미경이, 자신이 운영하는 김미경TV 유튜브에서, 컨설턴트 전문가인 김용섭 씨가 쓴 『언컨택트』라는 책을 소개하더군요.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을 세상이 도래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과 접촉하던 것을 하나씩 하나씩 줄여가면 무엇이 남을까요? 또 그런 와중에 우리는 무엇 하고 있는가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언컨택트 시대에도 기존에 해 오던 것을 여전히 하고 있지 않은가요?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공부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교회에 가지 않는다고 예배드리지 않는 것이 아니며, 식당에 가지 않는다고 밥 먹지 않는 것은 아니며, 쇼핑몰에 가지 않는다고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미용실에 가지 않는다고 이발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고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이 아니며, gym에 가지 않는다고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여행을 가지 않는다고 여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서점에 가지 않는다고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동안 해 오던 대면과 접촉의 방식 아닌 것으로 그 모든 일을 하고 있지요. 형식은 바뀌어도 내용은 놓치지 않고 있으니 바뀌어 가는 형식에 어떻게 적응하며 살지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어떤가요? 코로나19 이후 교회의 미래 또한 아직 오지 않은 교회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 미래의 교회 모습은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교회의 미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여기서 만들어 가는 것이지 싶습니다. 미래는 늘 미래에 있습니다. 그 미래의 교회 모습을 우리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본다 해도 교회의 미래는 여전히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만들어 가는 교회가 내일의 교회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다시금 질문합니다. 포스트 코로나19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중앙일보 보도(2020년 6월 7일)에 따르면, 개신교는 흔히 "6만 교회, 15만 성직자, 1000만 성도'"라 합니다. 그런데 이들 6만 개 교회 중 80% 가량이 10-20명 정도의 교인이 있는 미자립 소형 교회라 합니다. 평소에도 월세 내기가 힘든데 온라인 예배로 모이지 않으니 더 어렵게 된 것이지요. 대형 교회도 물론 상당한 헌금이 줄었으니 힘든 것은 마찬가지 일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 해야 하나요?

교회를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 구분 정의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이러한 정의를 약간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모였기에 "모였었던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흩어졌으니 "흩어진 교회"라 할 수 있고요. 그리고 현재는 몇몇 교회들은 조금씩 모이고 있다는 점에서 "모이는 교회"로, 그리고 앞으로 완전히 모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모여야 할 교회"로 이름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였던 교회는 과거 완료형이고, 흩어진 교회는 과거형이고, 모이는 교회는 현재형이며, 모여야 할 교회는 미래형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현재 흩어진 교회와 모이는 교회 그 어디 즈음에 있겠지요. 그러면 우리의 고민과 질문은 자연히 '어떻게 흩어진 교회에서 모여야 할 교회로 옮겨갈 수 있을까'일 겁니다. 아니면 그냥 흩어진 채로 있는 것이 좋은지요, 모여야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건지요?

다시금 모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모습이 과거 교회 모습을 완전히 회복할 것이라고 보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겁니다. 상당히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모였던 교회"와 "모여야 할 교회"는 결코 같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그사이에 교회가 흩어져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경험을 무시한 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금 모일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 스스로가 그 아픔을 경험했기에 결코 같을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시 모여야 할 교회의 모습은 어떨까요? 한국교회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계속)

박동식(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교수)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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