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파고, 머신러닝과 딥러닝의 경계선에서

김광연 교수
김광연 교수

전 인류를 대표해서 바둑을 가장 잘 두는 이세돌 9단을 능가했던 사람은 누굴까? 김철수, 박지영이가 아니라 알파고(AlphaGo)였다. 성은 알파고 이름은 고, 한국인이 아니라 서양인의 이름을 가진 친구는 바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을 가진 장치였다. 알파고는 우리에게 너무 친숙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알파고와 같은 지능형 컴퓨터인 인공지능의 개념은 1955년 다트머스 대학의 존 매카시(John McCarthy) 교수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인공지능은 수 백만개의 중앙처리장치와 기억장치를 가지고 서로 독립된 연산을 통해 인간의 지능을 닮아 계산하고 추론하는 능력을 가진다.

현재 인공지능 기술은 자연어 즉 각 나라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변신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인식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어서 저장된 알고리즘으로 모든 대상을 인식하는 능력을 선보이고 있다. 우리가 영화에서 얼굴인식(안면인식)으로 보완장치를 설치하고 해제 시키는 기술들을 보았을 것이다. 이제 이 기술을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자. 지금 진행되는 기술은 이미지나 대상을 인식하고 스스로 알고리즘의 작용으로 판단하고 추론하는 기능까지 변모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공지능 기술은 머신러닝(Machine learning)과 딥러닝(Deep learning)이다. 일명 기계학습이라고 불리는 머신러닝은 엄청난 자료와 데이터(data)를 축적한 알고리즘을 통해 과거의 누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이다. 우리가 흔히 빅데이터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 기술은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분석하여 실수를 줄이고 개선할 부분을 미리 계산하여 분석하는 것이다. 기계가 통계와 빅데이터를 통해 공부하고 학습하여 분석하는 것을 머신러닝이라고 부른다. 이런 기술은 앞으로 주식이나 일기예보 등 미래를 예측하여 소득을 얻거나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머신러닝과 달리 딥러닝은 빅데이터를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과 달리 인공지능이 스스로 사물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기억들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말한다. 사람처럼 추론하고 생각하여 무언가를 결정할 때 인공지능은 스스로의 학습으로 주도한다. 알파고가 이세돌과 바둑을 둘 때, 딥러닝의 기술을 바탕으로 스스로 수를 두고 이세돌의 수를 읽으면서 학습하여 어떤 수를 두어야 할지 스스로 결정했다.

머신러능과 딥러닝의 차이를 좀 더 부연 설명해볼까? 머신 러닝은 알고리즘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판단이나 예측을 한다. 인공지능의 의사판단의 기준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통해 이뤄진다. 좀 더 다른 형태의 딥러닝은 사람처럼 어떤 대상의 사물을 인지한 뒤, 뇌에서 반응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딥러닝은 사람처럼 뇌에서 회로가 켜져 여러 신경망들이 충돌하여 반응하는 것처럼 데이터의 신경망들이 서로 연결되어 분석하고 추론하여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사람처럼 뇌의 활동에서 일어나는 추론의 능력을 인공지능이 이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인공지능 기술, 인류에게 많은 것들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사람의 능력이나 추론의 한계를 극복해 줄 기술이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인류를 대신해서 수많은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여 최대한 오차를 줄이면서 인류에게 기술의 진보를 맛보게 해 줄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 과연 인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 희망인가? 공포인가?, ‘이미’와 ‘아직’의 경계선

2017년에 개봉된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는 가까운 미래에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무너지는 모습을 그려낸다. 주인공 스칼렛 요한슨은 인간과 인공지능이 결합된 특수 요원이다. 메이저(스칼렛 요한슨)은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는 범죄 조직을 소탕하는 임무를 맡았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조직을 막기 위해 스칼렛 요한슨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헤친다.

원래 이 영화는 오래 전 1989년 시로 마사무네의 만화로 출간되고 나서 이후, 1995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으로 극장에 등장했다. 원작에서 재탄생된 공각기동대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선에서 어쩌면 사이보그가 인간일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긴다. 사이보그, 그들은 생각도 하고, 감정도 가진 존재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사이보그가 어떠한 존재인지 중요하지 않다. 그럼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래 어느 시간 휴머노이드 시대가 오면 그때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가 중요하다.

휴머노이드가 실현되는 시간은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우리가 그들의 존재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것 뿐만 아니다. 아직은 우리가 그 존재에 대해 미리 준비할 수 있다. 그들이 영화 속 공각기동대처럼 인류를 해치거나 범죄조직과 손을 잡고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는 것을 미리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이미’ 그 시간이 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미 영화 속 이야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일 당장 휴머노이드, 즉 사이보그 로봇이 등장하여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행동하는 자아라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아직’과 ‘이미’ 사이의 경계선에 서 있다. ‘이미’라는 시간은 우리에게 ‘아직’이라는 기회를 주고 있다. 더 이상 늦지 말라는 신호의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아직까지 ‘이미’의 시간이 오지 않았다고 해서 주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Kairos)의 외모는 남다르다. 앞머리는 풍성하고 뒷머리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대머리이다. 왜 그렇게 생겼을까?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 카이로스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래서 카이로스가 지나갈 때, 우리는 머리카락으로 얼굴이 가려져 있는 카이로스를 쉽게 알아볼 수 없다. 그리고 앞에서 카이로스를 붙들어야만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지나가면 뒷머리가 없기 때문을 뒤에서는 그를 붙잡을 수 없다. 이미 기회는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카이로스는 왼쪽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고 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기회가 와서 카이로스를 만나게 되면, 순식간 지나가는 시간에 저울을 달아 신중히 재어보고, 칼로 자르듯 순식간에 결단하라는 의미이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의 카이로스적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더 이상 주저할 시간이 없다. 순식간에 ‘아직’의 시간이 지나가고 이미 우리에게 카이로스의 시간,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아직’ 그리고 ‘이미’의 경계선에서 인공지능 시대를 보내고 있다. (계속)

김광연 교수(숭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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