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삼
▲백석대 채영삼 교수

들여다보면, '탐욕'이다. 그것이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이다. 세상은 이 정신을 배신하지 않으려 애쓴다. 부끄러운 것도 잠깐이다. 탐욕에 '이긴 자'가 되는 것이 성공한 자이다. 명예도 평판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탐욕'에 이긴 자가 되는 것, 그것이 이 시대가 받아 주는 영웅이다. 그래서 오늘 날 교회가 '탐욕'을 숭배하고 실행하면, 그것은 참된 풍요이신 '그 아들'의 복음이 아니라 이 시대정신을 충실히 따르는 증거가 된다.

보라. 세상에서는, 가진 자들이 더 갖기 위해 정치와 법을 주무른다. 탐욕이 시대정신이고, 여기서 승리한 자로 남으려면 시대정신을 예배하고 순종하는 일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도리어 더 쥐어짜기 위해 말 잘 듣는 꼭두각시들을 내세워 법을 주무르려 한다. 더 싼 노동력을 취해 더 많이 가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백성이 힘이 없다. 몰라서 당하고, 알아도 당한다.

이런 시대에, 교회가 전하고 따르는 복음이 얼마나 순전하며 또한 세상을 이기는 복음인지를 가늠하려면, 그 복음이 '탐욕'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를 보면 된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탐욕'과 관계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 믿고 부자 되세요'는 복음을 빙자하여 세상의 시대정신을 섬기는 거짓 교사들의 구호이다. 복음은 여러 가지 특징들을 가지지만, 세상을 이기는 복음의 진정성은 정녕 탐욕을 이기는 모습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탐욕은 가진 것을 두고 더 가지려는 것이다. 가지는 것 자체를 자랑삼아 숭배하고, 이웃이 가져야 하는 것마저도 빼앗는 것이다. 그래서 우상숭배요, 이웃을 죽이는 일이다.

탐욕 하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을 잃고 이웃을 잃게 된다. 공동체는 파괴되고, 약자가 먼저 그리고 가진 자가 나중에 함께 몰락하게 된다. 탐욕은 파괴의 수단이다.

내게 탐욕은 없는지 물어본다. 혹시 탐욕을 생활화하고 있지는 않는지. 탐욕은 이 시대가 날마다 우리에게 주입하고 가르치는 신앙이요 습관이다.

필요한 것 이상을 욕심내기. 남 보다 더 가진 것 자랑하기. 내 곡간에서 썩어도 필요한 이웃에게는 내어주지 않기. 결정적으로, '동정심'과 '긍휼' 잃어버리기. 환난을 만난 이웃에게 마음 닫아걸기. 절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그런 것이다.

신앙과 탐욕은 함께 갈 수가 없다. 탐욕은 우상숭배요, 이웃을 죽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탐욕을 이겨낸 교회, 탐욕을 이겨낸 신앙이 이 시대를 이긴 신앙일 것이다. 다른 것들도 이겨내야 하지만,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특별히 탐욕을 이겨낸 증거를 드러내야 한다.

'그 아들'은 부요한 자로서 자신을 주사, 가난한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다. 불행한 이웃을 동정(同情)하여 '긍휼'에 한없이 흔들리는 것이, 오늘 날 복음을 가진 자의 특징일 수밖에 없다.

이 시대의 정신은 확실히, '탐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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